남자의 출산기 6주 차
ㅡ 띡띡, 삐삐
나는 까만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커튼 안쪽에서 들릴 듯 말듯하게 기계음이 들렸습니다. 주변을 둘러볼 수도 있었고, 뒤에는 커튼도 쳐져 있었기 때문에 궁금한 듯 돌아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어색함을 감추려 옷매무새를 다듬는다던가 잠깐 휴대폰을 꺼내어 볼 수도 있었겠죠. 아닙니다,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까만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뒤편의 기계음이 몇 번 울리는 그 몇 초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그 까만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ㅡ 좌라락
모니터에서 소리가 나진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화면에 펼쳐지는 모양새를 소리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그랬을 겁니다. 둥글게 말아 올려지는 듯한 영상이 순간적으로 몇 번, 검은색과 회색, 흰색으로 빠르게 형체를 잡아가더니 이내 안정적으로 화면에 표현됐습니다.
ㅡ 저게 뭐지?
눈의 기능을 최대한 집중해 영상 내에 어떤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했지만, 역시나 잘 모르겠습니다. 가운데 부분에 강낭콩 같은 모양새가 있고, 그 안에 다시 좀 더 작은 강낭콩...
ㅡ 아, 저건가!
아마도 30초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는 여기서 화면 보시면 됩니다.'라는 안내에, 동그란 의자에 앉아 시선을 떼지 못한 순간부터 30초도 되지 않는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시각과 청각이 최대로 예민해져 있어, 평소보다 더 많은 정보들이 뇌로 전달되었을 거라고 상상해 봅니다. 곧 의사의 말이 뒤에서 들려왔습니다. 아내는 가까이서 듣고 있겠죠.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위치와 크기, 지금 시기에 평균은 어떠한지, 그에 비해 현재 상태는 어떠한지 아주 상세하고 알아듣기 편하게 설명하셨지요. 그 말씀 모두를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그때에 다시 내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던 건 확실히 기억합니다. 느낌상으론 요동치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네요.
ㅡ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그땐 어땠을까... 시험을 보곤 최고의 성적이 나올 줄 이미 알고 있지만 공식적인 점수가 아직 나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을 때. 회사의 사활이 걸린 90억짜리 비딩(경쟁 입찰)을 마치고는, 영업 루트를 통해 내가 이긴 걸 이미 알았지만 아직 발표는 안 났을 때. 아내에게 처음 사귀자고 말했던 날, 아내도 나에게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물음과 아내의 대답 사이에 흐르던 몇 초 그때. 그때도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을까.
ㅡ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여기에요, 보이시죠?"
의사가 말했습니다. 의사가 기계를 통해 화면에 보이는 강낭콩 안에 강낭콩을 가리켰는데 조금씩 조금씩 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눈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고, 목을 주욱 빼고는 화면으로 빨려 들것 같이 온몸으로 다가갔습니다. 작은데, 아주 작은데 강한 힘으로 뭔가 움직였습니다. 희고 작은 무엇이 오므렸다 펼쳤다를 반복하는 모습. 아주 작은 불씨가, 절대로 꺼지지 않는 작은 불씨가 강렬하게 피어오르는 모습.
아기 심장이에요, 아주 잘 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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