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출산기 11주 차
두통이 살짝 느껴집니다. 소화가 안되거나 화장실을 좀처럼 못 가는 아내의 증상을 그대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두통이 느껴지고 컨디션이 좋지 않습니다. 아내를 아침에 회사에 데려다주고 재택근무 중이었는데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납니다. 불안한 마음이 들어 집에 남아 있던 코로나 자가 키트로 코를 헤집어 놓고 잠시 기다렸습니다. 진한 한 줄. 천만다행입니다.
사십 대가 된 이후로 크게 아픈 적도 없으며, 하루 종일 피곤함을 느끼거나 컨디션이 심하게 저하되는 경우는 잘 없었습니다. 항상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고, 가끔 힘든 날이 있으면 주말에 낮잠을 잔다거나 식사조절을 하면 금방 괜찮아지곤 했습니다. 지난 2년간 위생수칙을 잘 지키고 꼬박꼬박 백신도 완료하여 코로나에 걸리는 일도 없었죠.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반응하는데 그 기분이 참 좋지 않았습니다. 얼른 떨쳐내 버리고 영상 작업할 일들이 있어 편집에 몰두하다가 아내가 퇴근할 시간이 되어 픽업을 다녀왔습니다.
낮에 편의점에서 2+1으로 판매하는 코로나19 자가 키트를 사 오기도 했고, 오는 길에 오늘 몸상태에 대해 아내와 얘기하며 온 탓에 함께 검사해보기로 했죠. 둘 다 코에다 꾹꾹. 아내는 선명하게 한 줄. 나는 선명한 한 줄과 아주 흐릿한 나머지 한 줄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둘은 잠시 말이 없었고, 몇 분이 더 지나자 진하게 두 줄이 되었습니다.
ㅡ 망했다...
잠시 머리가 멍해졌지만, 우리는 해야 할 것을 해야 했습니다.
"여보, 일단 마스크부터 쓰자."
나는 서로의 마스크부터 챙겼습니다. 우선 아내와 나의 회사 쪽에 먼저 알렸고 가장 최근의 코로나19 확진자 수칙이 어떤지 찾아봤습니다. 지난 2년간 지겹게도 갔었던 보건소의 PCR 검사도 아직 가능한 것인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또한 각각 회사의 조치와 수칙은 어떤지도 봐야 했죠.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몇 가지 일을 서두르고는 가장 중요한 걸 조금 늦게 깨달았습니다.
아내와 나의 거리두기.
자가 키트로 검사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전화, 메신저로 연락하고 수칙들을 정신없이 검색하다 보니, 차려진 식사가 눈앞에 보였습니다. 아내와 나는 눈만 마주치고 있었지, 사실상 멈추어 있었습니다. 아내는 음성이 나왔지만 이미 픽업해서 함께 왔는데, 아내가 감염된 건 아닐까. 아내와 아이에게 작은 영향이라도 준다면 난 대체 어떻게 살아갈까. 당장이라도 나는 숙소를 잡아 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안 들 수 없었지요. 아내의 얼굴을 몇 초간 바라보았습니다. 정신없이 움직이다가 이제 막 앉은 나를, 아내는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아내의 흔들리던 눈.
"일단 밥 먹자."
아내의 눈을 보고 내가 말했습니다. 아내 식사와 나의 식사를 분리해서 담아 내 것은 주방으로, 아내 것은 거실로 차렸습니다. 지금 밥을 먹는 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위생적으로 식사를 분리할 수 있는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코로나 감염? 지금은 그것마저도 첫 번째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도 나는 곧 알아챘습니다. 아내와 나는 멀리 앉아 마스크를 벗고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먹지 못했습니다. 우리 둘은 잠시 서로를 보다가 결국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숟가락을 든 채로.
"오빠... 나도 지금 그냥... 코로나 걸릴래..."
울음 섞인 아내의 말에 가슴이 둘로 나뉘는 느낌입니다. 지금 아내에게 중요한 것,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임이 명확해졌습니다. 누군가는 우리의 행동이 매우 위험하게 느껴지겠지만 지금 시점에 우리가 분리되는 것이 훨씬 더 우리를 힘들게 만들 것을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감염되게 할 수는 없었죠. 결국 우리는 집에서 함께 격리하며 가족 간의 격리 수칙을 지키며 생활해보기로 했습니다. 수면시간을 포함해서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항상 착용했으며 식사는 따로 하고 화장실도 완전히 구분해서 사용했습니다. 다음날 PCR 검사에서 나는 확진을 받았고, 아내는 그다음 날 PCR 검사에서 음성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격리 7일 후 항원검사를 통해 둘 다 음성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나는 몸도 너무 아팠지만 아내가 감염될까 마음 졸였고, 무엇보다 우리는 일주일간 손도 한번 잡아보지 못하는 고통을 이겨냈죠. (가끔 아내 발을 한 번씩 잡아보곤 했습니다.)
지난 3년여간 일상적인 요리는 항상 내가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7일간은 주방 물건을 만질 수 없었기에 아내가 담당했었죠. 아내가 요즘 그때를 떠올리며 얘기합니다.
"오빠, 난 그때 내가 해야 할 요리를 다 한 거 같아."
고생해준 아내에게 미안하고, 정성스럽게 돌봐주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또 전하고 싶습니다. 요리는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해 줄 생각입니다. 임신한 엄마로서, 위험함을 알면서도 나와 떨어지기 싫어 울어버렸던 아내를 보며 달려가서 안아 주지 못해 가슴이 아팠습니다. 다시는 울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미안하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