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출산기 6주 차
6월 22일 아침, 우리는 호산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사실은 전날 밤부터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두근거림은 크게 두 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커다란 설렘과 작은 불안함
어쩌면 그 불안감은 결코 작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감정을 아내에게 보일 수 없어, 내 눈빛과 손가락 끝으로 표현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누구보다 불안해하는 아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완벽하게 감추고 있어야 했습니다. 평소처럼 행동하고 평소처럼 말해야 했으며 평소처럼 표정을 지어야 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시동을 켜면서 즐거운 이야기들로 출발했고 좀 더 일상적인 기분을 느껴보려 했는지 스타벅스에 들렀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하나,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하나 주세요."
처음 주문해 보는 디카페인 아메리카노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멋쩍은 웃음, 뭔지 모를 행복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아마도 이미 아내에게 들켜버린 불안함이었겠지만 최선을 다해 일상적으로 보이려는 내 모습에 아내가 웃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병원에 도착하고 주차요원분들께 차를 맡기고 로비에 들어섰습니다. 산부인과는 2층이라는 안내를 받고 올라갔지만 분주한 병원의 모습에 잠시 멈칫했던 것 같습니다. 어딘가 새로운 곳에 가면 아내보다 앞장서서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착착 해결해 나갔었는데, 뭔가 버퍼링에 걸린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마도 남자에게 산부인과의 경험은 그런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남자가 섣불리 먼저 목소리를 내어 물어보거나 자신 있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달까요.
2층 중앙 즈음에 있는 데스크에 문의하고 예약자 이름을 말해, 초진 문진표를 받아 작성했습니다. 아내가 작성하는 동안 핸드백과 커피를 들고 잠시 병원을 둘러봤습니다. 간호사와 많은 직원들, 입원복을 입고 있는 산모들, 진료를 보러 온 사람들은 이미 배가 불룩하게 나와있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많았죠. 남성 보호자와 함께 온 분들은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진료실은 어디인지 초음파실은 어디인지를 잠시 둘러보는 동안 아내는 문진표를 완료했고, 안내에 따라 체중과 혈압을 체크하고 잠시 기다렸습니다.
15분 정도 기다렸던 그 시간 동안 우리는 평소보다 대화가 적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병원 특유의 분위기, 사람들의 목소리, 공기와 냄새만으로도 우리의 긴장감을 증폭시켰던 것 같습니다.
"들어오세요."
중앙의 넓은 소파에서 일어나 안쪽 진료실 문을 여는 그 몇 걸음 동안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마음을 가질 여유도 없을 만큼 말이죠. 진료실 안쪽은 입구 쪽 왼편에 의사의 테이블이 있었고 오른편에 침대, 그 넘어 커튼으로 가려진 안쪽에 부인과에서 쓰는 진료 침대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의사 앞에 앉았고, 나는 아내의 왼쪽에 앉았습니다.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편안한 인상의 의사를 보고는 살짝 안정을 찾았습니다. 인상 때문만은 아닐 것이, 아마도 환자가 의사를 보면 안정을 취하는 정도의 느낌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몇 가지 문진을 하고는 아내는 안쪽 커튼 안으로 들어갔고, '아빠는 이쪽에 앉으세요.'라며 오른편에 있던 침대 옆 동그란 의자로 이동해 앉았습니다. 아내가 옆에 없습니다. 손이 덜덜덜 떨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Featured image source : 호산여성병원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