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아이구 창피해!
사회자: 뭐가 그리 창피하신가요?
윤: 보수가 없는 한국에서 보수 대표로 토론을 하려니까 창피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지나가는 외국인 보기가 부끄럽습니다.
사회자: 그럴수록 더 보수의 가치를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발언해주시죠.
윤: 경제적인 면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보수적 경제정책이라는 것은 작은 정부를 지향합니다.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기보다는 민간에 맡길 때 가장 효율적이라는 가정에 근거하는 겁니다. 집값 정책을 누구보다 많이 내놓은 지난 정부 5년간 전에없이 가파른 집값 상승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 짓을 하지 말고 수요와 공급에 맞춰 경제가 자연스럽게 돌아가게 두자는 겁니다.
명: 그러한 경제 정책을 자유방임주의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유방임주의의 한계는 이미 몇 차례 경제위기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그럴 때 경제를 회복시킨 건 결국 정부의 개입이었습니다. 케인즈주의에 기초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처럼 말입니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작은 정부를 지향했습니까? 가장 경제 성장 폭이 컸던 시기는 정부 주도 계획 경제체제 아래 였습니다.
그리고 진보적 경제정책이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와 최소한의 경제적 안전망을 늘리는 정책을 포함합니다. 최저임금을 높인다던가, 노인 복지 예산을 늘린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윤: 20세기 얘기는 그만하시지요. 그때랑 지금이 같습니까? 당장 집값을 보세요. 어설픈 정부 개입의 결과가 뭔지. 70년대에는 서양식 경제 체제를 엘리트들이 먼저 배워서 빨리 빨리 이식해야 되니까 정부가 할 일이 많았던 거지 지금 정부가 민간보다 똑똑합니까? 지금은 민간 경제 주체에 발맞추는 식으로 가야지. 정부가 뭘 나서서 할 시대가 아니에요.
복지 정책에 대해서는 저 역시 선진국의 평균 정도는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복지 정책의 수혜는 체감되는 이득이지만 그 안정을 대가로 잃고 있는 것은 쉽게 체감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대로된 정부라면 포퓰리즘에 휩쓸려 복지 정책을 남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자: 정치 측면에서의 보수는 어떤가요?
윤: 정치적으로는 한국적인 보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키워드 몇 개가 있는데요. 경상도, 박정희, 산업화, 이승만, 미국입니다. 사실 보수의 근본 이념이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언뜻 이해가 안가는 키워드일 겁니다. 왜냐하면 박정희 이승만은 급진적인 개혁을 한 사람이고, 경상도나 미국은 보수의 근본이념과는 별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인을 떠나서 현실은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보수라는 사람들은 박정희와 이승만, 경상도와 미국에 호의적입니다.
명: 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보의 키워드는 전라도, 김대중, 노무현, 민주화, 북한입니다. 처음 한국 정치를 접하는 사람은 당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치 성향이 정치적 견해에 따라 갈라지는 것이 아니고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에 따라 갈라지고 지역에 따라 갈라지는 현상이 흔하니까요. 다만 북한과의 관계나 성평등 문제 등 일부 문제에 있어서는 견해에 따라 정치적 성향이 갈리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뭐 모양은 좀 빠져도 두 개의 정당이 수십년간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이어가고 나름의 견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진보다! 나는 보수다! 같은 말은 오해를 사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은 그 말에서 당신의 정치적 성향만 파악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출신지나 배경 등을 근거 없이 유추할 지도 모르고 불필요한 적대감이나 불신을 살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70년대 이후에 출생한 세대는 사실 한국 특유의 정치 문화를 형성한 근현대의 굵직한 사건들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아닌 만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정치문화가 자리잡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