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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잉 Sep 01. 2024

인생의 전반과 후반에 필요한 철학

사회자: 철학의 위상은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로 쭉 내리막을 이어와 요즘 들어서는 돈 안되는 전공이라던가 지적 허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이 흔한 것이 현실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철학의 필요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토론회를 주최했습니다. 각자 발언 부탁드립니다. 


동: 철학의 인식이 좋지 않은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들어보시죠.


사람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철학을 접하는 세 가지 경로가 있습니다. 교과서, 대중 매체, 말 많은 사람입니다. 교과서는 길게 말할 것도 없습니다. 철학자 한 명의 철학을 다섯 문장으로 요약해서 암기합니다. 철학자 한 명을 이해하는게 김치볶음밥 요리법을 배우는 것보다 쉽겠습니까? 교과서는 어릴 때부터 철학에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게 만드는 주범 중 하나입니다. 


대중 강연이나 대중 서적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그 분야에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옛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철학에도 통용됩니다. 꼭 그렇진 않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철학적인 이해가 부족하면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쇼펜하우어가 이렇게 말했고~' '칸트에 따르면~' 같이 철학을 끊임없이 들먹입니다. 반대로 철학적인 이해가 충분하면 그냥 일상적인 언어로 철학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인식도 들지 않게끔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철학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기 전에 철학자들의 1차 저작을 먼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과서와 대중 매체, 그냥 들은 이야기로 철학에 대한 편견을 가져선 안 됩니다. 


사회자: 일반적인 인식은 그런 영향이 있다 치고, 그래도 철학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원전 몇 개쯤은 읽어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철학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많은 것 같은데요.


구: 거기에 대해선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철학에 적절한 나이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전반기에 있는 사람에게는 사실 철학이 필요 없습니다. 아직 제대로 뭘 해본 것도 없는데 왜 인생무상의 철학을 알아야 하겠습니까?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마음 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염세주의 철학을 20대 때부터 받아들이면 니체처럼 사회부적응자가 되는 것이고 꼬맹이 때부터 인생무상의 철학을 주입받으면 인도처럼 활력 없는 나라가 되는 겁니다. 물론 인생의 전반기에 도움이 되는 철학도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이라는 분야에 발을 들이는 순간 염세주의적 철학에 물들고 지적인 측면으로만 과잉되어 유약해질 위험이 존재합니다. 철학이 없어도 인생의 전반기를 잘 살 수 있지만 철학을 잘못 접하면 불필요한 짐덩어리를 얻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인생의 후반기에는 철학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생의 후반기에 필요한 것은 전반기와는 다릅니다. 인생의 전반기에는 세상이 자기 뜻대로 돌아간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뜻하는 바도 이뤄봤고 생활이 안정된 인생의 후반기에 필요한 것은 세상과 조화롭게 사는 법에 더 가깝습니다. 세상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세상을 알아야 합니다. 젊었을 때는 긍정적이고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부분만 알았다면, 인생의 후반기에는 염세적이고 기존의 가치관을 뒤엎는 사실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철학은 겉으로 드러난 세상 아래의 진면모를 이야기하는 분야입니다. 세속적 필요성이 아닌 인간적 완성을 추구하는 분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피상적인 면을 충분히 경험했고 세속적 욕망보다 내면적 안정이 중요한 인생의 후반기에는 철학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입니다. 젊었을 때 밀도 높은 공부를 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아예 공부와 연을 끊기도 하고, 지성이 좋은 것이고 멋있는 것이라는 트렌드를 따라 MZ세대가 철학을 공부하고 교회와 절을 찾고, 인생의 후반기에는 돈이 적으면 노후 대비를 위해 돈이 충분하면 딱히 다른 할 일이 없어서 그냥 세속적이고 피상적인 것들에 몰두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이러니 철학이 제대로 평가 받는 일이 요원할 수 밖에요. 남자한테 브라를 주고 여자한테 사각 팬티를 주는 것 같은 일이 지금 철학의 현실입니다. 


사회자: 그럼 전반기에 필요한 철학과 후반기에 필요한 철학이 뭐가 있을지 정리를 좀 해주시죠.


구: 명확히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가지 철학이 여러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각자 상황에 따라 각기 필요한 것이 다를 테니까요. 그러니 그냥 가볍게 참고만 한다는 생각으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알프레드 아들러의 철학은 인생의 전반기를 위한 철학이라고 할만합니다. 인생의 전반기에 겪을 수 있는 흔한 문제들을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온 힐과 네빌 고다드의 철학 역시 인생의 전반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목표지향적인 삶을 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런 삶의 방식이 분명히 도움이 될 때가 있고 특히 인생의 전반기에는 목표를 성취하는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전직 대통령이나 역사 속 한국의 위인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알아두는 것도 좋습니다. 한국인으로서 공동체 의식을 마주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을 포함한 한국인의 무의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유명한 한국의 위인들은 대체로 목표지향적이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더 인생의 전반기에 적합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랄프 왈도 에머슨과 조던 피터슨도 추천합니다. 에머슨은 미국 사상의 아버지라 불릴만한 사람으로 지금의 미국을 만드는 데 사상가로서는 가장 크게 일조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던 피터슨 역시 인생의 전반기에 마주할 수 있는 문제들을 주로 다룬다는 점에서 추천할만 합니다.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 유명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철학이 세분화되고 현학적인 면이 끼어들기 전의 철학자입니다. 그만큼 인생의 전반기와 후반기를 떠나 누구에게나 와닿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인생의 후반기에는 어떤 지식이든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경험해보고 와닿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것을 찾으면 되고요. 물론 기본적으로 고전을 위주로 지식을 쌓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굳이 추천한다면 칼 융 그리고 노자와 장자의 철학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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