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 오늘은 싸이코패스와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 사이의 대화를 마련했습니다. 먼저 싸이코패스님부터 왜 본인이 싸이코패스라고 생각하는지 얘기해주시죠.
기: 얼마전 헤어진 여자친구한테, 너는 싸이코패스가 확실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화나서 한 말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생각할수록 그 말에 설득력이 있더라고요. 학생 때부터 감정이 없는 것 같다던가, 감정적으로 동요할만한 상황에 너무 차분한 반응을 보인다던가 하는 말을 종종 들었고요. 주변에서 불쌍하다던가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할 때 전혀 공감되지 않았던 경험도 많습니다.
사회자: 좀 부족한데요. 뭐 동물을 죽였다던가, 의학적 판정을 받았다던가 그런 건 없나요?
기: 글쎄요. 저는 서울에서만 살아서 딱히 동물을 볼 일도 없고. 뭐 좋은 거라고 싸이코패스 감정을 받으러 병원까지 가겠어요? 아무튼 사람을 백명 놓고 보면 제일 싸이코패스 같은 사람이 100이고 제일 싸이코패스 같지 않은 사람이 1이라고 치면 90이상은 될 거에요.
사회자: 아무래도 부족한데, 어쨌든 토론은 이어가야 하니 다음 분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태: 저는 매주 유기견 봉사활동을 다니고, 슬픈 영화를 보면서 울어본 경험도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얼마전에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매달 아프리카에 기부도 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흔히 싸이코패스가 많다고 알려진 직업군이 CEO, 변호사, 외과의사 등인데 본인도 좀 잘나가는 편인가요?
기: 우선 말하신대로 CEO는 신라시대로 치면 성골, 로마시대로 치면 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사회의 진정한 사회 고위층인데요. CEO는 백프로 혈연으로 계승되는 것도 아니고 자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직책이라는 점에서 성골이나 귀족보다 개인의 자질을 더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 고위층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은 무엇이냐? 바로 페르소나의 활용입니다. 손오공이 털을 뽑아 변신하듯이 상황에 따라 필요한 모습을 내보일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다양한 페르소나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이야 말로 사회 고위층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 고위층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페르소나가 바로 싸이코패스, 즉 동정심 없이 결단을 내리는 페르소나입니다.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서 형제를 죽이듯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기 조카 집안을 멸문시키듯이 말입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실제로 사람을 죽일일은 없습니다만 해고를 한다거나, 거래를 끊는 식으로 경제적 피해를 주거나 인격 모독을 하거나 화를 내는 식으로 심리적 피해를 주는 일은 그 성격에 있어서는 같다고 할 수도 있겠죠.
이방원이 싸이코패스냐? 백프로 그렇게 보기는 힘들죠. 왜냐면 이방원도 자기 자식이 막나가고 대들 때는 나름대로 감싸줘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제 새끼는 함함합니다. 역사속 고위층들은 싸이코패스라기보다는 싸이코패스의 페르소나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봐야죠. CEO도 마찬가지로 싸이코패스라기보다는 싸이코패스의 페르소나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대부분일테고요.
변호사나 의사는 약간 성격이 다릅니다. CEO가 싸이코패스의 페르소나를 활용한다면, 변호사나 의사는 싸이코패스를 만드는 사회에 희생당한 면이 더 큽니다. 두 직업의 공통점은 오랜 시간 공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의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고 말이죠. 싸이코패스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당연히 자기 자신의 감정에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루 12시간씩 6년간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즉, 싸이코패스가 되는 게 낫다는 말이죠. 영어 속담에 fake it until make it.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될 때까지는 된 척하라는 거죠. 그러면 결국은 될 거라고. 그 말을 적용해보면 싸이코패스가 아닌 사람도 싸이코패스처럼 살다보면 싸이코패스가 된다는 말이겠죠? 그리고 젊은 시절의 그 혈기왕성한 욕구와 감정을 눌러놓고 개인적 목표에만 몰두하는 것은 싸이코패스 같은 일입니다. 그것이 내면에서 일어나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의 욕구와 감정을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CEO와 변호사 의사가 다른 점은 변호사 의사는 대부분 자각이 없다는 점입니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감정과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익숙해져서 그것을 페르소나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고정된 성격으로 이해해요. 그리고 변호사 의사가 특별히 나쁘다는 게 아니라 사실 공교육과 사회화를 거친 사람이라면 다 어느정도는 겪는 일이죠. 다만 변호사 의사는 그 공교육과 사회화를 누구보다 빡세게 해온 사람들이니까 대표적으로 이야기 하는 거고요.
저는 그냥 일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싸이코패스적인 면모를 도구적으로 공공연히 드러내겠다거나, 감정을 억누르고 목표지향적으로 살겠다거나 이런 생각은 없어요. 그보다는 싸이코패스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싸이코패스라 그러면 괜히 무섭고, 누가 나를 싸이코패스라고 낙인찍을까봐 착한 척하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태: 저는 페르소나를 말하시는게 이해가 안 되네요. 그게 마음먹은대로 되나요? 애초에 감정이 들면 드는거지 그걸 참고 숨기고 연기하듯이 다른 성격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싸이코패스적이에요.
기: 그렇게 치면 싸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지겠군요. 딸 앞에서 슬픈 감정을 숨기고 괜찮은 척하는 아버지도 싸이코패스인가요?
물론 사람이 손오공이 아닌만큼, 머리카락 뽑듯이 쉽게 페르소나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타고난 것보다는 의지의 문제고, 훈련하고 숙달되면 나아집니다.
태: 여전히 싸이코패스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 대체 뭘 믿을 수 있고, 어떤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건가요?
기: 당신이 요괴라면 손오공을 믿을 수 없겠지만, 삼장법사라면 손오공을 못 믿을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재밌는 점은 요괴는 손오공을 믿고 못믿고를 따지기도 전에 이미 속아 있다는 점이죠. 삼장법사는 손오공을 못 믿겠다고 난리치지만 막상 손오공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고 결국은 손오공과 함께 목표를 이루죠.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냥 대부분은 그냥 믿는게 낫다는 것입니다. 진짜 믿어서는 안 될 것은 믿고 못믿고를 따지기도 전에 당신을 속일 것이고, 당신이 믿을까 말까 고민하는 것은 어차피 당신이랑 한 배를 탔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 믿는게 결국은 잘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페르소나라는 것은 말그대로 공적인 자아입니다. 집에 오면 벗는 양말 같은 겁니다. 페르소나 때문에 사람을 못 믿을 일은 없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 집에까지 따라들어갈 마음이 있다면요. 아니면 술취해서 양말을 벗고 놀거나, 사우나라도 같이 가도 되고요. 물론 하루종일 양말을 신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양말을 벗었을 때 발냄새가 걱정될 수도 있고 당신을 못 믿을 수도 있죠. 그런데 그건 그 사람의 문제지 양말의 문제는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페르소나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페르소나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죠.
태: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그런 사람은 못믿어요. 어쨌든 기본적으로 내 감정이나 자기 감정보다 중요한 판단 기준이 있다는 건데, 내 감정을 상하게 할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진 않아요. 그리고 그 기준이라는 건 결국 대부분 개인적인 야망이죠. 야망을 이루기까지 인내가 필요한 것은 둘째치고, 막상 야망을 이룬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경우도 별로 못봤어요. 다음 야망을 찾는 경우가 많고 더 최악은 목표가 없어져서 공허해지는 거죠. 내가 보기엔 야망에 끝은 없어요. 야망을 가지기 보다는 그냥 지금에 충실하게 살면 그뿐이죠.
기: 야망이 큰 사람은 지금에 충실하게 살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지금 너무 행복하고 걱정이 없으면 야망을 가질 동기도 없겠죠. 부정적인 마음이나 외부적인 어려움에 영향 받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게 살기 위해 목표를 가지고 야망을 가지는 겁니다. 만약 그 같은 어려움을 직접 겪어봤거나 혹은 이해할 수 있다면 야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뭐라고 할 말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죠.
태: 세상에 어려움 없는 사람도 있나요? 다 각자 몫의 힘듬이 있죠. 100억을 벌고 싶다는게 어려움 때문에 생긴 욕망인가요? 십분의 일만 있어도 풍족하게 살 수 있고 백분의 일만 있어도 경제적으로 궁핍하지는 않을텐데요. 대부분의 야망은 허황된 야망이에요. 외부적으로 무언가를 달성한다고 야망이 끝나지도 않아요 그보다는 자기 마음을 제대로 돌아보고 자기 자신을 알아서 허황된 야망을 버리는 것이 야망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기 인생을 제대로 사는 법이겠죠.
기: 자기 마음을 돌아보고 세속과 욕망을 초월하는 그런 것은 부처나 소크라테스에 가까운 사람이나 가능할 겁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왠만한 야망이 훨씬 이루기 쉬울거에요. 심지어 부처도 세속적인 성취와 즐거움을 누릴만큼 누린 후에 출가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야망도 종류가 여러가지입니다. 김구가 젊었을 때는 독립, 독립이 되고나서는 통일의 야망을 가진 것은 김구 혼자 돌연변이어서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개인적 욕망이 아닌 사명감을 가집니다.
사람은 뭐가 됐든 끊임없이 야망을 가지고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현재를 생각 없이 즐길 수있는 것은 어린아이나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인생의 주도권을 누군가한테 맡긴 사람 뿐입니다. 중세 아낙네는 자신의 인생을 남편한테 맡기고 노자는 자신의 인생을 도에 맡겼고 예수는 하느님에게 맡겼다고도 할 수 있겠죠.
이상한 목표를 가진 사람, 목표에 집착하는 사람, 목표를 가지고 힘들게 살다 간 사람들 때문에 목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범죄자와 히틀러가 있으므로 인간 자체가 잘못됐다는 논리와 다를게 없습니다.
어찌됐든 야망을 가지고 먹이를 노리는 육식동물이 달리듯이 살아야 합니다. 정말로 인생에 여한이 없을 때까지는 달리기를 너무 오래 멈추면 안 돼요.
다양한 페르소나는 다양한 야망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자질이고요. 만약 높은 목표를 가진다면 페르소나의 목록에는 싸이코패스적인 페르소나 역시 필요합니다. 이것을 의식하고 있는 게 좋을 겁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당신의 야망이 커질수록 싸이코패스적인 기질도 자연스럽게 커지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싸이코패스적인 기질을 의식하고 그것을 다룰수도 있고, 자신도 모르게 싸이코패스적인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기사처럼 칼을 칼집에 넣어다니다가 필요할 때만 휘두르는 것과 아무도 모르게 칼을 가지고 다니다가 욱해서 휘두르는 것 중에 무얼 선택해야 할지는 명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