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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잉 Jun 15. 2024

기자가 될 자격

김: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기자가 될 자격이야. 기자가 이 만명이 넘는데. 


이: 자격이 없어도 될 수는 있지. 본인도 힘들고 주변도 힘들고, 사회에도 도움이 안 될 뿐이지. 자격이 없으면 자격을 갖추던가. 그만 둬야지. 


김: 그럼 무슨 자격이 필요하다는 건데? 글을 잘 써야 되나? 진실에 대한 타협 없는 추구? 


이: 방금 말한 게 사회에 도움이 될만한 기자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자격이라면, 본인이 만족하기 위해 필요한 자격은 따로 있어. 그건 바로 꽤 높은 수준의 도덕적 유연성이지.


김: 도덕적 유연성이 뭔데?


이: 예를 들면 보통 사람이라면 '그건 거짓말 아니에요?' 라고 말할만한 상황에서 '그건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 '거짓말이라도 필요한 일일 수 있다.' 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지.


김: 에? 그게 뭐야. 기자가 거짓말을 하는 직업이라는 거야?


이: 예를 들면 기업으로부터 광고나 다름 없는 보도 자료를 받아서 거의 그대로 게재하면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능력이 필요하다는 거야. 아니면 배포 자료를 받았거나 혹은 다른 곳에서 가져온 자료를 보고 기사를 쓰면서 직접 취재한 것처럼 포장하는 정도는 아무렇지 않아야 되지.


김: 그건 도덕적 유연함이 아니라. 도덕적 타락 아니야? 


이: 너처럼 생각하면 기자가 될 자격이 없는 거야. 우리 같은 사람들은 비행청소년을 보면 '어휴 어린게 벌써부터 못돼 쳐먹어서는...소년법이고 뭐고 감방에 쳐넣어라.' 라고 말하겠지만. 도덕적 유연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적절한 행동양식을 배우지 못해 충동적으로 행동했구나.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청소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났고 본인에게도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계기가 됐을거야. 그러니 그 일은 일어나야 할 일이었고, 의미가 있는 일이었어.' 라고 말할 수 있지. 


그러니까 도덕적 유연함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더 깊은 차원에서 이해함으로서 포용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말하는 거야. 


김: 나도 기자를 몇 명 아는데 말이야. 딱히 그런 도덕적 유연함을 가진 사람은 본 적이 없어. 


이: 뭐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 그들 중 일부는 마음 속으로는 갈등을 겪고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일부는 너에게 설명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나름대로 도덕적인 유연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거야. 


김: 도덕적인 유연함을 가졌다고 하기엔 너무 별 것도 아닌 일에 욕을 많이 하던데. 


이: 도덕적인 유연성이라는 건 말이야. 지성이 만드는 것도 아니고. 경험이 만드는 것도 아니야. 도덕적인 유연함을 가지는 데 가장 필요한 건 자기 확신이야. 자기 확신만 있으면 뒷받침 해줄 논리도 필요 없고, 경험적 사실도 필요 없지. 자기 확신이 부족한 사람들만 논리적인 근거를 찾고 경험적인 근거를 찾는거야. 말하자면 어떤 일에 대해 누군가는 '이건 잘못된 일이야' 라고 말하고 같은 일에 대해 누군가는 '이건 이런 면에서 납득할 수 있는 일이야.' 라고 말하지만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은 항상 옳다' 고 말하는 거지. 자기 확신이 있다면 내가 하는 일은 항상 옳은데, 기사 쪼가리 뭐 어떻게 쓰든 무슨 문제가 있겠어?


김: 그럼 자기 확신이 기자가 될 자격이라는 건가? 


이: 자기 확신만 있으면 기자가 문제겠어? 뭐든 할 자격이 있겠지. 다만 자기 확신은 도덕적 유연함을 포괄하는 거고. 기자가 되는데는 엄청난 자기확신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도덕적 유연함은 필요하다는 거지. 


김: 좀 이상한데. 그럼 자기 확신 넘치는 사람들이 기자가 되서 광고 같은 기사를 쏟아내고 어디서 베낀 기사나 적당히 타협한 기사를 쓰는게 좋다는 거야?


이: 그런 기자가 일면만 보면 나빠 보이겠지. 광고는 광고란에 확실히 구분해서 싣고, 저작권을 철저히 존중해서 똑같은 기사가 수십 개 나오는 행태를 고치고, 검증된 팩트만으로 드라이한 기사를 내고,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상사나 모기업 임원 등의 압박이 있으면 그에 맞서 윤리적 언론을 주장하는 기자가 좋은 기자처럼 보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내 나름대로 언론계와 산업계 나아가서 사회나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생각보다...그렇게 좋고 나쁜게 단순하지가 않은 것 같아. 솔직히 말하면 단면만 보고는 알 수가 없다고 느껴. 잘못된 것처럼 보이던 일이 좋은 일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좋은 일처럼 보이던 일 때문에 사람들이 힘들어지기도 하고...그런거지. 


그런 면에서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야.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은 적어도 지금의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 미래는 아무도 모르지. 지금의 일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다른 면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아무도 몰라. 다만 현재의 내가 느끼는 것. 그것만이 확실할 뿐이지. 그리고 자기 확신이라는 건 현재의 나에게 최선을 다해 살 수 있게 해주는 힘이지. 


기자가 될 자격이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은 살아갈 자격의 문제도 똑같은지도 몰라. 자기 확신이 없다면 살아갈 자격을 갖추기가 어려워지지. 세상에는 너무 많은 죄와 잘못이 있고 해야할 일과 모범이 있는데, 하나하나에 발목 잡힌다면 얼마나 힘들겠어. 그냥 '나는 항상 옳다!' 고 말할 수 있다면 적어도 나 자신은 스스로를 돕는 셈이지. 그리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이 있잖아? 나는 거기에 '스스로 돕는 자는 하늘을 돕는다'는 말도 더하고 싶어. 


김: 그렇다고 해도, 내가 항상 옳다는 생각은 안드는데. 


이: 네가 옳아서 옳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야. 그게 살아갈 자격이기 때문에 옳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 생각이 안든다면, 그런 생각을 가지도록 노력해 봐.


김: 생각이 내 마음대로 바뀌는 건 아니잖아.


이: 생각을 바꾸는 팁을 줄게. 사람이란 건 단순한 면이 있어서. 그냥 반복하기만 하면 거기에 맞춰서 변하기도 하거든. 그러니까 그냥 매일 반복해서 말해 봐. '나는 항상 옳다'고. 생각만하는 것보다 직접 소리내서 말하는 게 더 효과가 좋지. 


그리고 당연히 너 스스로도 할 수 있는 한 옳은 사람이 되야겠지. 


김: 나는 항상 옳은데, 어떻게 더 옳은 사람이 돼?


이: 그럼 너 다운 일을 하면 되지. 네가 최선을 다할 수 있고,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 항상 옳더라도 더 옳은 일이 있을 수도 있잖아.


김: 그런데 말이야, 항상 옳다고 생각하면 좀 오만해지거나 독선적이 되지는 않을까?


이: 너만 항상 옳은게 아니라. 자기가 옳다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옳다는 걸 잊으면 안 돼. 만약 서로 생각하는 옳음이 다르더라도 그건 말 그대로 다른 것이지 한 쪽이 틀린 게 아니야.


그리고 너는 네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을 때 항상 옳은 것이지.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무슨 일을 할 때, 쾌락을 위해 무슨 일을 할 때, 다른 누군가의 요구나 사회적 압박에 따라 무슨 일을 할 때 항상 옳은 게 아니야. 


김: 하루의 대부분이 습관적인 일이고, 도파민 나오는 취미고, 회사에서 시키는 일인데. 그럼 대부분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게 되버리잖아. 


이: 무슨 일을 하고 있든, 네가 마음 속으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옳은 일이야. 만약 도저히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드는 일이 있다면, 그건 그 일을 바꾸는 게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보다 빠를지도 모르지. 


김: 야동을 보더라도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옳은 거고, 마음에도 없는 말로 하루종일 문서 작성을 하고 있어도 옳다고 생각하면 옳은거란 말이야? 


이: 그래. 하지만 마음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을 걸.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옳게 만들기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네 생각과 변화된 행동이 접점을 찾을 수도 있겠지. 


너는 항상 옳아야 해. 너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든 항상 옳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살기가 너무 힘들어지니까.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말을 하는 사람은 많으니까. 나는 반대로 네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옳다고 말하고 싶어. 무엇이 옳은지 말하는 사람들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너한테 무엇이 옳은지는 너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으니까. 만약 네가 옳지 않더라도 나는 네가 옳다고 말할 거야. 사람은 자기가 옳지 않다고 믿으면서는 무엇도 제대로 하기가 힘들거든. 옳지 않은 일이라도 끝까지 밀고 가다보면 그 끝에서 옳은 일을 보는 시야를 가질 수도 있지 않겠어? 스스로 잘못됬다고 믿으면서 멈춰서는 것보단 훨씬 낫지. 


그리고 결국 너는 옳을 수 있어. 어떤 일을 하건 어떤 사람이건 말이야. 왜냐하면 부처가 말했듯이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거든. 다만 나는 네가 어설프게 옳은 사람이 될게 아니라 아주 전적으로 한 점 의심도 없이 옳은 사람이 되면 좋겠어. 


그러기 위해선 너의 생각과 말, 행동 모두 거기에 맞춰서 변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만약 전적으로 옳을 수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겠어? 노력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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