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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내가 만난 100인

누구나 한 번쯤은

by 이기영

엄청난 재난을 겪은 것도,

큰 병에 걸린 것도,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도 아닌데


너무나도 멀쩡하게 서 있던 그런 날.

돌아보면 정말 별거 아닌 그런 일로 무너질 때가 있다.



식탁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손님들이 흘리고 간 음식물을 치우며 서럽게 우는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불고기집 사장이다.

10년 넘게 꾸려온 식당은 근근이 장사가 잘 되는 편에 속했다.

모두가 어렵다는 코로나19 때도 배달서비스를 도입해 잘 버텨왔다. 이제 코로나시기도 지나가고 잠시 긴 한숨을 돌렸건만 장기적인 경기침체는 잠시 숨 고르기를 할 뿐 더 큰 한숨을 이어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 일대 모든 가게들 또한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만큼 손님이라고 칭할만한 사람은 없었고 오픈 이래 처음 하루매출 0을 찍고 퇴근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어쩌다 가게출입문에 달아놓은 종소리가 울려 반갑게 돌아보면 바람으로 인한 센서 오작동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손님은 하나 없는 가게에 남아있던 부품들이 하나, 둘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나갈 돈에만 쌓여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보다 내일의 행복의 무게를 두며 그렇게 겨우 버티며 서 있었다.


오래간만에 단체예약이 들어왔다. 게이트볼 동호회 회원 16명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다시 생기가 돌았다. 인건비 절약을 위해 주방이모도 부르지 않고 혼자서 아침 일찍부터 출근해 재료손질을 하고 손님맞이 준비를 했다. 요리와 세팅 그리고 서빙까지 혼자서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예약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방금 게이트 볼을 마치고 들어온 어르신들은 허기가 졌는지 앉자마자 세팅된 반찬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리고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아니, 여기는 왜 이렇게 찬이 적어요?"


평소에도 싹싹하게 했던 그녀는 더 상냥하게 대답했다.


"요즘식당들은 드실 만큼 조금씩 드리는 추세라서요. 혹시 더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말씀하시면."


손님들은 그녀의 싹싹한 말 따윈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저 필요한 건 이것뿐이었다.


"전이 맛이네! 전 좀 많이 주고 샐러드도 좀 더 줘요."

"네~"


40도가 오가는 8월의 날씨, 그녀는 에어컨도 없는 주방으로 곧장 뛰어들어가 가스불을 켜고 정성껏 깻잎 전을 부쳐댔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것만큼 구운 깻잎 전도 둔덕만큼 쌓여갔다. 그리고 곧바로 손님들 상에 내놓았다. 손님들은 갓 구워 따끈하고 바삭바삭한 전을 입안으로 넣기에 바빴다. 덕분에 다시 평온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메인 요리인 불고기 전골이 나왔다.


"손님, 뜨거우니 조심히 저어서 드세요."


끓고 있는 전골을 거침없이 휘적거리던 손님이 말했다.


"사장님, 여기는 고기 양이 왜 이렇게 적어요?"

"저희 집고기는 항상 정량인데요? 손님."

"에이~ 아닌데 지난번 왔을 때보다 고기양이 확 줄었는데.... 뭘? 내 눈은 못 속여."


요리와 정직함만큼은 자부하던 그녀였기에 잠시 휘청거렸으나, 이 얼마 만에 맞이한 손님들인데 싶어 심호흡을 가다듬고 웃으며 응대했다.


"손님, 저희는 항상 이렇게 정량을 달아놓고 판매합니다."

"에이~우리께 더 적어 보이는구먼. 그럼 일단 됐고, 그럼 당면과 야채나 좀 더 넣어줘요."


그녀는 심기가 불편한 손님을 얼른 풀어드리고 싶어 야채와 당면을 뜸북 내 왔다. 그리고 음료수와 추가 공깃밥까지 서비스로 드렸다. 식사가 시작되면서 조금씩 불편했던 분위기가 누그러드는 듯했다. 식사가 마치는 시간에 맞춰 디저트로 시원한 수박까지 내어 드렸다.


"사장님, 수박이 시원하니 맛있네. 그런데 양이 너무 작다. 한 개씩 먹으니까 없네."

"한 덩이 더 썰어드릴게요."


그녀는 시원시원하게 수박을 썰어 다시 내 드렸다. 모두 흡족해하시는 가운데 총무로 보이는 한 분이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나 카운터로 왔다.


"사장님! 현금결제할 건데 얼마 더 빼 줄 거예요?"

"현금영수증 없이 결제하면 2만 원 더 빼 드릴게요."

"고작 2만 원? 에이~ 그럴 바엔 그냥 현금 영수증처리할게요."


그녀는 속에서 뭔가가 올라오는 듯했지만 마지막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된다 싶어 꾹 참았다.

"35만 원입니다. 손님"

"네. 35만 원 확인했습니다. 손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받은 돈을 금고에 넣는데 손님의 한마디가 벼랑 끝에 서 있는 그녀를 결국 밀어버렸다.


"에이~ 사장님 진짜! 야박하게 단 돈 1만 원도 안 빼주네!"


결국 그녀는 터졌다.


"손님!! 음료서비스로 다 드렸고 찬도 넉넉히 드리고 추가 공깃밥도 드렸습니다. 이 35만 원이 제게 얼마나 많이 남을 거라 생각하세요? 요즘 같은 시기에 소상공인들이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그날 손님은 사장님의 분노와 소상공인의 설움까지 몽땅 뒤집어쓰고 돌아갔다.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 그녀는 씩씩거리며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너저분한 테이블을 정리했다. 연세까지 있으신 분들이라 바닥이 더 엉망진창이었다. 식탁밑으로 기어들어가 떨어진 음식물들을 마구 닦아댔다. 하필 그날따라 바닥에 달라붙은 음식물들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거기서 그녀의 모든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이런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어젯밤부터 그렇게 좋아하는 자신이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또 그렇게 내키지 않았던 손님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일한 스스로가 억울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날, 그녀는 식탁 밑에서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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