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마담들이 아오자이 사러 가는 곳, 반푹 실크 마을
베트남 하노이 하면, 유명한 것이 무엇일까. 베트남에 놀러 왔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 사 갖고 갈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G7이나 다람쥐똥 커피?! 말린 망고?! 노니?! 베트남 전통모자?! 다 맞다.
하지만 이것 말고 베트남에서 유명한 것이 또 있다. 바로 실크.
베트남 사람들은 실크 옷을 정말 많이 입는다. 특히 여자들에게 실크는 나이를 불문하고 1년 내내 사랑받는 재질인 거 같다. 실크로 만든 베트남 전통 옷인 아오자이뿐만 아니라, 화려한 스타일에 실크 드레스는 물론, 출근을 할 때나 일반 평상복으로도 실크 원피스를 입은 여자들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중, 실크를 많이 사용하는 건 아마 아오자이일 것이다.
베트남 전통 옷인 아오자이(Áo dài)는 긴 옷이라는 뜻인데, 상의는 긴치마처럼 어깨부터 바닥까지 내려오는 형태로 되어있고, 보통 안에는 바지를 입는다.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허리 아래는 양 옆으로 갈라져 있지만, 상의는 몸매가 거의 다 드러나도록 상체에 붙기 때문에 체구가 작고 마른 베트남 여자들에겐 잘 어울린다. 참고로, 난 아직까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다. ^^
덧붙이자면... 아오자이는 베트남 전통문화에 중국과 프랑스 등 외래문화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새로운 스타일로, 15세기 이전 베트남 여성들이 입었던 옷은 허리 아래가 네 부분으로 갈라진 긴 드레스를 입고 상체 안에 바지를 입지 않는 형태였다고 한다. 그 후,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상의 안에 바지를 입게 되었고, 그 후, 디자이너들의 손을 거치며, 지금처럼 통 넓은 바지와 화려한 색상, 몸의 곡선이 드러나는 오늘날의 아오자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어쨌든 베트남 여자들은 아오자이를 참~ 즐겨 입는다. 우리나라에도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복 입고 사진 찍기' 같은 기분 좋은 유행이 번지며, 평소에도 '한복을 입자'라는 운동이 일고 있지만, 베트남 여자들의 아오자이 사랑은 그것과는 좀 다르다.
호안끼엠 같은 관광명소에는 아오자이를 입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는 여자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이건 젊은 사람들만의 이벤트가 아니다.) 명절은 물론, 결혼식, 크고 작은 파티는 기본이고, 심지어 학교 행사나 학부모 상담 등 조금이라도 격식을 차려야 하는 곳에 갈 때는 그들은 거의 아오자이를 입는다. 우리로 치면 한복을 입고 선생님을 만나러 오는 격이랄까~ ^^
흔히 입는 옷이다보니 사는 것도 어렵지 않다. 아오자이를 파는 상점은 거리 곳곳에 있지만, 관광객들은 대부분 호안끼엠에서 구입한다. 호안끼엠에는 아오자이를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대여를 해 주는 곳도 있다.
실크 얘기를 하다, 아오자이 얘기가 길어졌는데... 이 아오자이를 실크로 만든다. 아오자이 덕에 실크가 유명해졌는지, 실크가 좋아 아오자이가 생겨난 건지, 전후 관계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하노이에 오면 꼭 사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실크'가 인 것이다.
물론 '없는 게 없다'는 호안끼엠에도 실크제품을 파는 '실크 거리'가 있지만, 하노이에서 질 좋은 '실크'를 살 수 있는 곳을 꼽자면, 예부터 실크 장인이 모여 살았다는 반푹 실크마을 (Vạn Phúc SILK VILLAGE)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하동'이라는 동네에 속하는 이곳은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택시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언제 한번 가봐야지~' 했던 곳이었는데, 며칠 전부터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해, 지인과 약속을 잡아 두었다.
하노이 대부분이 그렇듯, 이 곳 또한 차와 오토바이가 가득한 대로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는 정문은 마치 특별한 역사 유적지의 입구처럼 성문으로 되어 있는데, 오토바이가 가득한 번잡한 도로와 달리,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신세계가 펼쳐진다.
사람이 걷는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실크를 파는 가게들이 쭉 늘어서 있는데, 그것보다 더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알록달록한 색깔의 작은 우산들이 파란 하늘밑에 마치 지붕처럼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처음엔 날씨까지 좋아서 그런지, 하늘색 하늘과 어우러져 골목 가득 늘어져 있는 우산들이 나도 모르게 내 기분을 들뜨게 만들어 주었는데... 한참을 걷다 우연히 고개를 들어 보니, 이 우산들이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며 제법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모처럼 선선하고 맑은 날씨에, 오토바이 걱정 없이 하노이 시내를 이렇게 한적하게 걸어 다닌 것이 얼마만이었던가. 우리는 느긋하게 산책하듯 마을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로 했다.
천년의 세월을 자랑하는 실크 마을답게, 이 곳은 실크를 파는 가게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실크를 생산하는 곳이 여럿 있었다. 그 중 한 곳에서는 누에코치에서 실을 뽑는 것과 배틀 같은 것으로 천을 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단순히 관광지 차원에서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아직도 실제로 전통적인 방식으로 실크를 생산하고 있단다. 옷감을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색감이 고급스럽고 촉감 또한 부드러워 여타의 값싼 아오자이와는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한인회 잡지에 따르면...
예부터 실크 장인이 모여 살던 반푹실크 마을은 '반푹 실크로 옷을 해 입으면 노인은 회춘한 것이요, 추녀는 미녀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품질이 좋기로 유명했다. 매끄러운 표면에 양각 무늬가 새겨져 구름처럼 보이는 패턴이 특징인데, 특히 내구성이 뛰어난 데다 여름에는 통기성이 좋고, 겨울에는 보온성이 좋아 대대로 왕실에 납품을 해 올 정도로 명성이 뛰어났다고 한다.
어쩐지~ 더운 날이나 추운 날이나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사람들을 보면서 여름엔 덥지 않을까, 겨울엔 춥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나의 쓸데없는 걱정이었나 보다.
어쨌든... 이렇게 만들어진 실크는 가게에서 원하는 길이만큼 잘라 판매를 하기도 하고, 원하는 옷감을 골라 맡기면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아오자이뿐만 아니라,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다양한 옷들도 판매를 하는데, 특히,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옷들이 많았다. 실제로 이 날은 평일 오전인데도 상점 안엔 관광객보다 옷을 사고 주문하러 온 하노이 여자들이 많았다.
색깔이 화려한 것도 있었고 색깔은 무난하지만 화려한 프린트를 가진 옷들도 있었는데, 보는 내내 나는 한국에 계신 엄마 생각이 났다.
예전에 옷장에 걸려있는 화려한 스타일의 엄마 옷을 보고, 왜 이렇게 화려한 옷이 많냐고 엄마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엄마가 나에게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화려한 옷이 좋아진다'라고 답한 것이 떠오르며 지난 여름 부모님이 오셨을 때 '이 곳에 함께 모시고 왔었으면 참 좋아하셨겠다',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담에 부모님이 다시 오신다면, 꼭 모시고 와야겠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자신의 부모님께서 우리 엄마와 같은 취향을 갖고 계시다면, 이 곳에 꼭 한번 와 보시길...추천한다.
마을엔 옷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통모자인 '농'과 스카프, 가방 등 실크를 이용해 다양한 스타일로 만든 아기자기한 소품도 많았다. 특히 실크를 붙인 '농'은 너무 예뻐서 단숨에 구매 의욕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내가 지금까지 본 '농'과는 차원이 달랐다.)
예쁜 색감에 푹 빠져 마을 안쪽까지 걷다 보니, 안쪽 한 켠에 작은 부스가 설치된 것이 있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실크를 이용해 간단한 그림이나 소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실크스크린 수업을 하는 곳이었는데 우리가 간 날은 평일이다 보니, 수업은 없었고 몇몇의 사람들이 모여 하얀 에코백에 알파벳 모양으로 자른 실크천을 붙여 예쁜 에코백을 만들고 있었다. 다음엔 아이들과 꼭 아이들과 함께 와서, 실크스크린 수업을 한번 들어봐야겠다~
몇 번의 충동구매의욕을 다스리고 시원한 바지를 하나 사서 돌아서 나오는 길, 우리는 잠시 마을 입구에 위치한 '반푹 사원'에 들렀다.
하노이엔 이런 크고 작은 사원들이 많아,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이곳은 천 년 전, 마을 사람들에게 뽕나무를 재배하고 누에를 길러내며, 실크를 짜는 방법을 가르쳤던 한 여인을 기리는 곳이었다. 사원안엔 작은 사당과 작은 연못이 있는데, 연꽃이 피는 7월에 오면 이 작은 호수에 연꽃향이 가득해 더 멋지다고 한다.
7월이 아니라, 비록 '그윽하다'는 연꽃향은 나지 않았지만 고즈넉한 곳에서 우리도 잠시나마 여유로운 한때를 가졌다.
점심을 먹기 위해 마을을 나오는 길, 어~ 저게 뭐지? 하며 눈을 들어보니, 알록달록 차려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어 아오자이가 아니네?" 그들은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베트남 학생들이었다.
자신들의 전통옷을 판매하는 실크 마을에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은 베트남 사람들이라니~ 잠시 서서 구경하고 있는데 사진 촬영을 마친 그들이 먼저 나에게 다가 오더니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라며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더니 근처에 있는 한국어 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란다. 공통점이 있어서 잠시 얘기를 주고받다 헤어졌지만, 짧지만 기분좋은 그들의 웃음은 꽤 오래갔다.
형형색색의 우산을 배경 삼아 추억을 남기는 베트남 사람들, 아오자이랑은 다른 색감을 가졌지만, 곱기로 따지면 전 세계에서 어느 옷 못지않은 우리의 한복도 그곳의 분위기와 참 잘 어울렸다.
(어느 곳이든 안 어울리랴~ ^^)
고즈넉한 베트남 고택과 아기자기하고 형형색색의 영롱하고 화려한 색감이 가득한 곳, 요즘은 쉽게 볼 수 없는 '오래된 것들의 낡은 매력'이 가득한 곳. 사진 찍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도 연신 핸드폰을 꺼내게 만드는 곳, 화소가 그다지 좋지 않은 내 핸드폰 카메라를 오랜만에 '열일하게' 만든 곳.
하노이에서 인생 사진 찍을 곳을 찾는다면?! 바로 이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