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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s Oct 30. 2022

스트리밍 시대

변화의 문화

"우리  문화는 물건으로 전해지던 것이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中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영화 속에 나왔던 한 장면에서, 한 동안 머무르며 생각했다.


남자는 사회 비평이 담긴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였다. 40이 조금 넘은 나이에 그는 문득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죽음을 앞두고 있었고, 그의 오랜 옛 연인이 찾아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였다.


만져보고 비교도 해보고 그렇게 서점 혹은 음반 판매장을 돌아다니며 그것들을 모으고 만드는 것이 그의 일생이었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얼마 전까지 우리는 좋아하는 가수들의 음악 앨범을 모았고 좋아하는 영화가 담긴 비디오나 DVD를 모았다. 소유했기 때문에 애정과 애착도 있었고 우리의 방은 좁아졌지만 쌓여있던 문화들을 보며 남모를 뿌듯함과 만족감을 가질 수 있었고, 관심을 이어갈 수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은 파일이란 형태로 내 컴퓨터에 저장되었다.

지금은 완전히 흥미가 떨어진 편이지만, 어린 시절 한 동안은 애니메이션에 빠져있었다. 드라이브가 파일들로 넘쳐 가끔은 컴퓨터가 먹통이 되는 날도 있었다. 컴퓨터를 살리기 위해 그것들을 골라 지우는 것은 정말 뼈를 깎는 고통 이기도 했다.


컴퓨터 한편 엔 수많은 노래 파일들이, 그리고 한쪽에는 애니메이션과 영화들이 가득 차 있었다.


20대 중반, 멜론의 등장은 사실 놀라웠다. 음악을 받지 않아도 그냥 편하게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편리하고 획기적인 것이었다. 멜론에 가입해 특정 금액만 지불하면, 쉽게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내 방 서랍 하나에 담겨 있던 노래 테이프와 CD들이 치워지고 파일 한 칸에 자리 잡혀 있던 음원 파일들이 싹 사라졌다.


멜론의 등장처럼, 몇 해전 ‘넷플릭스’의 등장 또한 그와 같았다.

영화를 이제는 어디서나 편하게 틀어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지방에 가도, 전철을 타도 쉽게 기기 하나만 있으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편리함을 느꼈고, 비디오 대여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영화관 마저 어느 정도 위협을 받고 있다.


2022년, 우리의 방과 컴퓨터는 가벼워졌다.


우리는 ‘스트리밍의 시대 살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로만 한정해 이야기해서 그렇지 더 넓게 보면 소유의 시대에서 대여를 지나 공유의 시대를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집도 차도 심지어 자전거도 이제는 공유하면서 탄다.

내것은 사라지고 내가 필요한 것은 필요할 때만 쉽게 이용하고 다시 보낼 수 있다.

가볍고 편리한 시대다.


그러나 가끔은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약간의 아쉬움을 동반한다.


음악이든 영화든 앨범 및 DVD를 소유하고 있을 땐, 사기 전부터 사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과정 중에도 그리고 내 것이 된 이후에도 수 없는 애정과 관심이 현상화되는 것을 체험한다. 듣고 싶고 보고 싶어 그것에 대한 궁금증과 강한 관심들 끝에 사기로 결정하면 값을 위해 돈을 모으는 행위 혹은 가격을 비교하는 행위 등의 과정들을 거치고 사게 된 후에는 성취감과 더불어 물론 되팔거나 버릴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평생을 기반한 오랫동안 이어질 사랑을 약속해 본다. 그리고 이어 기대에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이제 내 것이 된 만큼, 만져도 보고 다른 것들과 비교도 해보고,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본다. 더 자유롭게 그것을 들어도 보고 수시로 본다. 값을 지불한 만큼, 내 것으로서 더 자주, 더 열심히 본다. 마음에 들지 않더래도 값을 지불했으니 일단 본다. 약간의 책임감 또한 느껴진다.

그러다 어느 정도 흥미가 떨어져 서랍 구석으로 옮겨져 먼지가 쌓일 때까지 찾아지지 않더래도 우연한 계기로 다시 보게 되면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기록이 된 순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지금은 멜론, 혹은 넷플릭스에 널리고 널린 콘텐츠들 사이에서 무엇을 볼지 먼저 방황한다.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채널 또한 계속 생겨나고 있다. 그중, 흥미 있어 보이는 것을 몇 개 골라 틀어보고 기대 이하라 판단되면 바로 꺼서 다음 추천작을 틀어버린다.

하나의 영화나 음악을 고르기 위해 5개에서 6개의 영화를 틀었다 꺼버리는 것도 부지기수다.

제작자들은 또 하나의 고민에 빠진다. 이제는 초반에 음악이든 영화든 사람을 사로잡아야 그다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유하지 않게 된 사람들은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도 같다. 손가락 한 번만 튕기면 다음으로 넘길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자극적인 것들을 제공해 떠나지 않게 해야 할 때도 있다. 오래 제작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스몰 토크를 하며 시작해 분위기를 풀고 천천히 이유부터 시작해 본론부터 이야기하는 구조를 답답해하는 사람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내 것이 아닌 만큼, 대충 듣고 대충 접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대충 보면 대충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의 생각은 더 가벼워지고 있고 사람들의 방식은 조금은 더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다.


물론, 스트리밍 덕에 무언가를 더 자주 듣고 수시로 보고 수 없이 접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겠지만, 이런 경우들도 상당수 생긴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을 해봤다.


소유의 시대에도 분명, 수많은 문제점들이 있었겠지만, 스트리밍의 시대의 가벼움과 자극적인 것을 제공하고 찾는  또한 굉장히 아쉽다. 점점  우리가 듣는 노래는 절절함 보단 화려함이, 우리가 보는 영화는  동안 머물러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서 여유 있게 여행하고 있는 느낌 보단  짧고 자극적인 테마파크 같은 시각적 체험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머무르는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아닌 이제는 언제든 떠날 사람을 붙잡을 이야기를 한다.

애정도, 관심도, 기다림도, 깊이도, 책임감도, 관계도 시대에 맞게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또 좋은 것도 많이 생기겠지만 이상하리만큼, 예전이 그리워 최근 느닷없이 DVD 파는 곳에 가서 가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시대에 맞게 바뀌는 와 중에도 우리가 사랑했던 문화예술 들이 더 낭만적인 형태로 이어지길, 사람들이 단순히 그저 소비해버리기보다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마음 한편에 오래 간직할 수 있게 되길.

나 또한, 지금의 애정에 계속 머무르며 이어가길.


느닷없이 오늘 신세계 백화점 음반매장에서 50% 세일 하고 있는 '바닐라 스카이' DVD를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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