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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s Dec 27. 2022

영화와 경청

대충 보면 대충 생각한다.

사람을 매력 있게 보이는 가장 중요한 습관 중 하나는 경청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누군가의 눈을 바라봐주며 그의 단어들에 홀려 속에서 의미 없는 논쟁을 시작하지 않고 그의 말에 의도와 뜻에 내 온 신경을 집중한다.  우리 언어의 특성상 우리는 더 말의 끝을 확인해야 그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사실 브리핑등의 특수한 상황이 아닌, 사람들과 나누는 담소 안에서 상대방의 말이 아무리 길어봤자 한 호흡에 보통 1분 내지 2분. 길어도 4분을 넘기긴 힘들 것이다.

그 호흡이 끝나면 한 번 리액션. 잠시 환기되었다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고 듣고 혹은 청자와 화자가 바뀌기도 한다. 이것이 유기적으로 잘 되면 수다가 지치지 않고 길어진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특히 더 경청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집중력도 짧아졌고 말의 의도나 뜻보다 단어들에 더 혹한다. 3~4분 안의 첫 호흡을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다.

대충 보면 대충 생각한다.

우리는 점점 상대방에 대해 대충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다.

상대방을 오해하기도 하고 과한 기대를 하기도 하고. 현실과 실제의 괴리감에 상대와 가까워지기 어렵다. 혹은 상대와 멀어진다.


사람들과 잘 지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청을 잘한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 보다 듣는 것을 잘하는 사람들이 더 주변에서 호평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청에 대해 생각했을 때, 나는 문득 영화를 떠올렸다.


요즈음 영화는 점점 더 짧아지고 유튜브 등의 짧고 자극적인 영상들의 유행에 외면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영화관에는 사람들이 줄고 있고 유튜브에 결말포함 영화 요약본의 조회 수는 나날이 늘어간다. 우리는 과거보다 더 빨라지고 효율적인 기기들과 생활패턴을 누리게 되었지만 어째 이상하게 시간은 점점 더 없어졌다.

우리는 급하고 빨리 핵심 사안만 알고 싶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꼭 감독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2시간가량. 감독이 들려주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을 듣는다. 좋은 영화 일 수록 말하는 방식, 꺼내는 단어, 이야기의 방식 중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어렵다. 요약본이 담지 못하는 더 디테일하고 의도된 침묵이나 느슨한 템포까지 꽉 채워진 언어들에 푹 빠져 이야기를 듣는다. 중간에 나는 리액션만 할 수 있다. 웃기도, 놀라기도, 울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다. 그의 말을 다 들었다. 그제야 영화에 평을 매기며 코멘트를 단다. 처음 그 이야기에 대답한다.

2시간가량. 경청했다.


영화가 외면받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경청이 줄고 있는 것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떠올려 봤다.


나도 참 고집 있고 남 말도 잘 듣지 못하고 늘 급한 성향이었는데 영화에 빠지고 영화를 미친 듯이 보기 시작하면서 남의 말을 듣는 것이 익숙하고 재밌어졌던 것 같기도 하다.

영화를 보는 것이 의도치 않은 경청의 훈련이 되었던 것일까.

조금 지루하더라도, 혹은 어렵더라도 중간에 끊지 않고 마지막까지 봤을 때, 미칠 듯한 감동을 받았던 영화들이 있다. 특히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 같은 영화가 그랬다. 꽤 길고 흑백의 영화라 보는 중간에 하품을 많이 날렸다. 그래도 중간에 나가지 않고 그 영화들을 끝까지 다 봤을 때. 나는 인생 최고의 영화 한 편을 또 만났다. 정말 미칠 듯한 겪어보지 못했던 감정을 겪었다. 왜 우는지도 모르고 그냥 울었다. 눈물이 파도처럼 쏟아 내렸다. 중간에 듣는 것을 포기했다면 별거 없는 영화라 오해했을 것이고 평생 느끼기 힘든 감정의 체험 또한 하지 못했을 것이다.  


끝까지 들어야 알 수 있다. 제대로 봐야 이해할 수 있다. 다 듣지 않으면 모른다. 대충 보면 대충 생각하게 된다. 오해하고 멀어지고 자신은 가벼워진다.

우리는 경청해야 한다.


문득, 영화를 보는 것이 경청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알폰소 쿠아론, 로마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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