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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더 Feb 28. 2020

플랜 B의 위험성: 밧줄 없이 뛰어라

플랜 B가 주는 안정감과 익숙함에 중독되지 말아야 한다.

플랜 B는 위험하다. 플랜 B는 기존에 전념해야 할 문제에 들일 에너지와 시간과 생각할 힘을 앗아 간다. 과연 플랜 B는 진정한 희망일까, 아니면 그저 희망 고문에 불과한 것일까.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원형 감옥

배트맨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3편인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주인공인 브루스 웨인은 베인에게 패배한 뒤 이름 모를 지역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웨인가의 비서이자 집사인 알프레드는 그 감옥을 보고 “제3세계의 원시적인 감옥이자 죄수 대부분이 구덩이에 갇혀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그 감옥은 천장이 개방된 원형의 지하 감옥으로서 간수도 없고, 자물쇠도 없으며, 자유를 위한 길은 항상 열려있다.


"진짜 절망은 헛된 희망을 동반하지"  

- 베인, 다크나이트 라이즈 中


그러나 지하 깊숙이 위치해있기 때문에 나가는 방법은 오직 기어 올라가는 것뿐이다. 벽면의 돌출된 부분을 잡고 어느 정도 기어 올라갈 수 있지만, 탈출 직전 길이 끊기고 뛰어야 하는 곳이 있다. 떨어지면 죽는 높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밧줄을 몸에 묶고 시도한다. 조금만 더 뻗으면 될 것 같다는 희망이 이곳에 갇힌 이들을 절망에 빠뜨린다. 점프 하나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에 수많은 이가 시도했으나 오래 전 한 꼬마 아이 빼고는 모두 실패했다.


브루스 웨인은 본인이 배트맨이고, 육체적인 노력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몸을 회복하고 두 번 시도하지만, 두 번 다 실패하고 만다. 실패하고 무기력하게 절망에 빠져 있던 브루스 웨인은 옆에 있던 늙은 죄수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한다.


죄수: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군. 그게 자네를 강하게 만들지는 않아. 약하게 만들지. 

브루스 웨인: 왜죠? 

죄수: 누구보다도 빨리 움직이고, 누구보다도 오래 싸우는 게 무엇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지. 

브루스 웨인: 죽는 게 두려워요. 저는 여기서 죽고, 도시는 잿더미가 되는 게요. 도시를 구할 사람이 없어요. 

죄수: 그럼 올라가. 

브루스 웨인: 어떻게요? 

죄수: 그 꼬마처럼. 밧줄 없이. 죽음에 대한 공포가 힘을 줄 거야.


밧줄을 메고 뛰면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 뛰었다가 떨어져도 목숨은 안전하기 때문이다. 위 대화 이후 브루스 웨인은 밧줄 없이 뛰기로 결정한다. 밧줄 없이 뛰는 것은 목숨을 건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존재한다. 바로 플랜 B가 없다는 것이다. 플랜 A가 실패할 경우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플랜 A에 모든 집중을 하게 된다. 플랜 B를 만들면 플랜 C, D, E..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현재의 계획이 틀어지더라도 본인에게는 또 다른 대비책이 있다는 점을 되새기게 된다. 그 안정감에 중독이 되고, 그 익숙함에 중독이 된다.


인간의 행동에는 크게 두 가지 동기가 존재한다. 희망에 대한 동기와 절망에 의한 동기이다. 희망에 대한 동기는 무엇을 성취하고 싶을 때 생긴다. 모든 사람은 부자가 되길 희망한다. 하지만 부자가 되기 위해 진정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경우는 매우 보기 드물다. 부자가 되고 싶다 하며 회사만 열심히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희망에 대한 동기는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절망에 의한 동기는 강하다. 지독한 가난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태생적으로 인간이란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일을 경험하고 싶지 않은 욕구가 더 클 수밖에 없다.


"두려움은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친구이다."  (Fear is a friend who’s misunderstood.) 

- Heart of My Life 中, by John Mayer


플랜 B는 희망에 대한 동기를 확장할 뿐이다. 플랜 B를 만드는 이유는 실패가 두렵기 때문이다. 실패 가능성에 의한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위함이다. 다른 대비책이 존재하여 안전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도록 한다. 플랜 B는 자신을 보호해줄 무엇인가가 항상 존재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고, 이는 현재 집중해야 할 일에 전념할 수 있게 하지 못한다. 빠른 포기를 유도한다. 도전은 두려움과 공존해야 한다. 그 두려움이 자신을 더욱 간절하게 만들고, 더욱 절박하도록 지켜주기 때문이다. 간절함과 절박함 없이 성공한 사람이 과연 누가 있는가. 이는 브루스 웨인이 탈출에 성공한 이유일 것이다.


콘텐츠 프로토콜의 사업 종료 공지. 출처: HTTPS://CONTENTSPROTOCOL.IO/

최근에 화제가 된 콘텐츠 프로토콜을 포함하여 과거 수많은 프로젝트가 암호화폐를 통한 모금 이후 사업을 갑작스럽게 중단하는 경우가 존재했다. 콘텐츠 프로토콜은 사업을 접은 이유로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가치 변동성 및 복잡한 이용 절차, 그리고 규제 불확실성을 들었지만, 이러한 이유들은 본격적인 시작 이전에 행해질 기획과 설계 단계에서부터 충분히 예상 가능한 요소들이다. 콘텐츠 보상 플랫폼이라는 슬로건으로 나온 국내 프로젝트인 유니오 역시 베타 출시 6개월 만에 잠정 중단을 공표하고 클렛이라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이유는 전자와 비슷하다.


기존 ICO와 리버스 ICO 프로젝트는 애초에 갚아야 하는 대출도 아닌 남의 돈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간절함과 절박함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플랜 B로 시작하거나, 플랜 A 서비스에 완전히 전념하지 않은 채 플랜 B를 구상한다는 점이다. 콘텐츠 프로토콜은 왓챠라는 플랜 B가 있다. 콘텐츠 프로토콜이 실패하더라도 그냥 다시 왓챠에 전념하면 될 일이다. 유니오는 유니오라는 기존 서비스에 전념하기보다는 클렛이라는 플랜 B를 함께 진행했다. 규모가 작은 초기 스타트업이라는 성격상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존 서비스가 잘 될 리가 없다. 방향성 자체가 달라지는 플랜 B는 더욱 위험하다.


물론 세상 모든 플랜 B가 위험하진 않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플랜 B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플랜 B를 구상하기 이전에 본인이 플랜 A에 진정으로 전념했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본 콘텐츠는 블록체인 인사이트 미디어 '노더'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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