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말뿌리 찾기(6) : 농단(壟斷)과 망나니
2017년 그때도 연구년 중이었다. 그때 태평양을 건너온 한 단어가 있었다. 농단(壟斷), 이 말이다. 7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이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대통령이 이 말의 뜻이 잘못되었으니 국어사전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7년 전 국내 소식을 들으며 쓴 글이 있다. 다시 가져와 본다.
요즘 국내 사정이 참 말이 아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나랏일을 일개 여염집 여인네가 좌지우지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분노한 민심은 100만의 촛불로 일어섰다. 비정상이 정상을 극(克)한 상황, 언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단어가 있다. ‘농단(壟斷, 隴斷)’. 나라를 사랑하는 소시민의 마음으로 걱정스럽게 시국을 바라본다.
옛날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맹자(孟子)가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던 때의 일이다. 제나라에 머물던 맹자는 도무지 자신의 진언을 받아주지 않는 제나라 선왕(宣王)에게 실망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자 선왕(宣王)이 사람을 보내 높은 녹봉을 줄 테니 떠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러자 맹자가 말했다. “전하, 제 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제가 어찌 복록(福祿)에 빌붙어 재물을 독차지[壟斷]하겠나이까?”라고 하며 ‘농단(壟斷)’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옛날에는 자기에게 남는 물건을 가지고 와서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과 바꾸었는데 이런 시장을 다스리는 관리가 있어서 부정한 거래를 단속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장사치가 높은 언덕[壟斷]에 올라가 시장 전체를 한 눈에 내려다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이익이 날 만한 것을 모두 독차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장사치를 비난하고, 시장의 관리도 높은 세금을 징수하여 부당한 이익을 빼앗았습니다. 그것이 상인들에게서 세금을 징수하게 된 시초였습니다.”
『孟子』 「公孫丑下」에 나오는 고사이다. 여기에 나오는 ‘농단’은 ‘언덕 농(壟)’에 ‘끊을 단(斷)’자로 구성된 말로서 원래는 ‘깎아지른 듯 높은 언덕’이 본래의 뜻인데 그 장사치의 매점매석(買占賣惜) 행위를 빗대어 ‘재물을 독차지하다’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말이 ‘국정(國政)’과 함께 쓰이면 정확히 작금의 국내 정치 현실과 딱 들어맞는 말이 된다.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기업체와 병원, 심지어는 중고등학교와 대학까지도 마음대로 주물렀다는 것이니 기가 찰 노릇이다. 최고 권력자를 허수아비 삼아 우리나라의 모든 이익과 권력을 독차지하였다니…….
한 여인네의 분탕(焚蕩)질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분탕질’에는 세 가지 뜻이 있는데, 첫째, 집안의 재물을 다 없애 버리는 짓, 둘째, 아주 야단스럽고 부산하게 소동을 일으키는 짓, 셋째, 남의 물건 따위를 약탈하거나 노략질하는 짓이 그것이다.
사사로이 국정을 농단하여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니 글자 그대로 분탕질이고, 온 나라를 들쑤셨으니 분탕질에 틀림없고, 공공의 국가 권력을 사사로이 주물렀으니 이것이야말로 분탕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국정을 농단하고 온 나라를 분탕질한 이 여인네를 가리키기에 알맞은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망나니’. 이 말은 ‘언동이 몹시 막된 사람’을 가리킨다. 옛날에 죄인을 참형에 처할 때 칼로 목을 베던 일을 하는 사람을 ‘망나니’라고 했는데, 이들은 주로 사형을 당할 만한 중죄인 중에서 사형을 면하게 해 주는 대가로 뽑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대개 그들은 성격이 매우 포악하고 막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망나니’라고 하면 일반 사람들은 도저히 상종 못할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망나니’라는 말은 ‘마구’의 뜻을 가진 ‘막[粗]’에 ‘나다[出]’가 결합하고, 여기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이다. 즉, ‘막 + 나- + -ㄴ + 이’로 분석할 수 있는데, ‘막나니 > 망나니’의 변화를 거쳐서 지금처럼 쓰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17.01.17, 네이버 블로그)
7년이 지난 지금 읽어봐도 어쩌면 이렇게 딱 들어맞을까? '농단(壟斷)'은 사전의 의미를 바꿀 이유가 하등 없어 보인다. 정확히 들어맞지 않은가? 망나니 같은 한 여인네가 온 나라를 분탕질해 놓고 있으니 어찌 국정 농단이 아닌가?
(사진 출처: 국립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