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말뿌리 찾기(4) : '떡볶이'란 말의 유래
한국의 대표적인 스트리트 푸드(길거리 음식), '떡볶이'. 어릴 적 학교 앞 문방구를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한 그것, 10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면 작은 접시에 밀가루떡 딱 두 개를 올려주었었다. 그 두 개를 내키는 대로 그냥 홀랑 삼킬 수 없었으니...그 감질나는 맛이 더 맛을 돋우지 않았을까?
떡볶이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인이 즐기는 글로벌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매운 맛에 끌린 세계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대표적인 한식으로 즐기는, 간식이 아닌 고급 한식으로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니 이는 떡볶이의 신분 상승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떡볶이는 왜 볶는 음식이 아닌데도 '떡볶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떡볶이'를 풀이하고 있다.
가래떡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여러 가지 채소를 넣고 양념을 하여 볶은 음식. 양념은 간장으로 하기도 하고, 고추장으로 하기도 한다.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
이 풀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왜? 우리가 늘 먹는 그 떡볶이는 기름에 볶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사실이 이러한데 왜 한 나라의 언어 정책을 총괄한다는 국립국어원에서 이렇게 '틀린', '말이 안 되는' 뜻풀이를 해놓았을까? 이유가 있지 않을까?
'떡볶이'는 명사 '떡'에, 동사 '볶다'에 접미사 '-이'가 붙어 파생된 '-볶이'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이다. 그러니까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떡을 볶은 것>, <떡을 볶은 음식>인 것이다. 그러면 이 의미는 실제와 괴리되는 풀이가 되고 만다. 이름으로는 '떡을 볶은 것'이지만 사실은 떡과 여러 재료를 넣고 물을 부어 끓이고 조려서 만든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괴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다음의 기록을 보자.
전복, 해삼을 무르게 삶아 썰어 냄비에 담고 흰무리떡을 한 치 기장(한 치 길이)으로 썰어 넣고 녹말과 후춧가루 기름 석이채 제종(여러 종류)을 장물 풀어 냄비에 볶는다. 볶을 때 너무 되게 볶지 말고 자연 지적지적하게 볶는다.
연세대학교 소장 『규곤요람(閨壼要覽, 1896)』(한국민속대백과사전)(현대어 표현: 필자)
다른 찜과 같이 하되 잘된 흰떡을 탕무처럼 썰어 잠깐 볶아쓰되 찜 재료 다 들되 가루즙만 아니 한다.
『시의전서(是議全書, 19세기 말)』(한국민속대백과사전)
흰떡을 썰어 숙육(수육)과 양깃머리, 등심살을 풀잎같이 저민다. 유장(油醬; 기름과 장)을 맞추고 파, 표고, 석이를 가늘게 썰어 달군 솥에 볶다가 익을 만하거든 떡과 양념을 넣는다. 유장을 더 넣어 다시 볶아 흠씬 익힌 후 펴서 잣, 소금, 후춧가루 등 온갖 것을 많이 넣는다.
『부인필지(婦人必知, 1915)』(한국민속대백과사전)
양념에 재운 쇠고기를 볶다가 흰떡 삶은 것과 볶은 채소를 함께 버무려 볶은 것을 떡볶이라고 한다.
『조선요리법(조지호, 1939)』(한국민속대백과사전)
이쯤 되면 아마 짐작이 될 것이다. 그렇다! '떡볶이'는 원래 기름에 볶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1936년 1월 11일자 동아일자 4면에는 '조선 요리 성분 게시표'로 떡볶이 재료가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요즘 떡볶이의 필수 재료인 고추장이나 고춧가루가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 떡볶이가 근대기에 등장하는 가요가 있어 흥미롭다. 박향림(朴響林, 1921~1946)이 부른 「오빠는 풍각쟁이」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떡볶이는 불고기와 함께 오이지, 콩나물에 대비되는 고급 음식으로 제시된다.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구 오이지, 콩나물만 나에게 주는 오빠는 욕심쟁이, 심술쟁이, 깍쟁이"라고 투정을 부린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머.
오빠는 심술쟁이야, 머.
난 몰라이 난 몰라이 내 반찬 다 뺏어 먹는 건 난 몰라이.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구
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오빠는 트집쟁이야, 머.
오빠는 심술쟁이야, 머.
난 시려 난 시려 내 편지 남몰래 보는 것 난 시려.
명치좌 구경 갈 땐 혼자만 가구
심부름 시킬 때면 엄벙뗑허구
오빠는 핑계쟁이, 오빠는 안달쟁이, 오빠는 트집쟁이야.
오빠는 주정뱅이야, 머.
오빠는 모주꾼이야, 머.
난 몰라 난 몰라이 밤늦게 술 취해 오는 건 난 몰라
날마다 회사에선 지각만 하구
월급만 안 오른다구 짜증만 내구
오빠는 짜증쟁이, 오빠는 모주쟁이, 오빠는 대포쟁이야.
그러면, 요즘의 떡볶이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신당동 떡볶이'에서 기원을 찾는 해석이 유력하다. 1953년 광희문(일명 시구문) 밖 신당동에서 마복림 할머니가 떡과 채소를 고추장과 춘장에 버무려 만든 것이 현재의 떡볶이의 원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냄비에 재료를 넣고 끓여 먹는 일종의 전골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리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재료를 넣고 직접 조리해 먹는 즉석떡볶이 형태로 판매되었는데 이것이 유명해지면서 신당동 일대에 떡볶이 골목이 형성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이후,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 파는 떡볶이가 일반화되었다는 것이 대체적으로 인정하는 떡볶이의 역사다.
이렇게 정리해 보면, '떡볶이'는 이름 그대로 볶아 먹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떡볶이가 '볶는' 방식에서, 새롭게 '끓이는' 방식으로 만드는 음식으로 탈바꿈했지만 떡, 그것도 가래떡으로 해 먹는 음식이라는 공통점에 근거하여 전통적인 이름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신미래 가수의 「오빠는 풍각쟁이」를 듣다가 문득 써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