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때마다 새로운 이슈를 들고 와 때로는 폭소를 터트리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듣다가 화가 나 나도 모르게 화를 내게 하는 지인이 있다. 그녀가 나타나 입만 열었다 하면 배를 움켜쥐며 눈물을 찔끔거리기 일쑤고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힘이 있어 그야말로 웃음과 행복 바이러스를 가득 담고 있는 재밌는 여인이다.
그런 친구가 하루는 한 손에는 커피를 다른 한 손에는 베이글을 들고 맛난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는데 얼굴은 잔뜩 기가 죽은 한마디로 죽상을 하고 나타났다.
“얼굴이 왜 이래?”
“미치겠다. 내가 그리 나이가 들어 보이나?”
“왜 무슨 일이야?”
“아니, 커피샾에 가서 커피랑 베이글 주문하는데 굳이 영수증을 확인하라는 거야. 바빠죽겠는데 말이야.”
“근데...”
“그냥 나오려다가 할 수 없이 귀찮은데 확인을 딱 하는데 $2가 디스카운트가 되어 있는 거야.”
“좋았겠네..”
“아니 그게 아니고, 자세히 보니 시니어 디스카운트를 한 거야.”
“엥? 시니어 디스카운트?”
“아니 나를 어디를 봐서 시니어라는 거야?”
“말도 안 돼. 카운터가 젊은 동양 사람이지?”
“아니, 늙은 미국 여자.....”
“그럼 진짜 말이 안 된다. (미국에서 동양사람은 적어도 10살은 어리게 본다) 눈이 잘 안 보여서 그랬나 봐. 누가 널 시니어로 본다니 그것도 미국에서..”
“참나! 누가 디스 카운트 해 달라고 했나. 해줘도 싫다고!!!!”
한동안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시니어 운운하며 그녀의 기분을 달래주느라 진땀을 뺐다. 그것을 계기로 시니어의 기준을 알아보게 되었다. 미국에서도 주마다 시니어 기준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55세가 되면 시니어 시작점으로 봐야 한다. 카페나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 점도 각각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맥도널드는 55세 이상이면 10% 할인을 해주고 버거킹은 60세 이상을 시니어로 할인해 준다.
물론 공식적인 은퇴 나이나 메디케어 건강보험 같은 정부에서 규정해 놓은 시니어 나이는 62세 또는 65세로 그 또한 주마다 조금씩 다르다. 집 구매를 할 때도 55세나 60세 시니어 타운이 따로 있어 일반 타운과 구별하고 회사마다 그 은퇴 시기가 다르지만, 시니어의 그 시작점이 바로 55세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2024년 현재 55세 시니어의 전체적인 모습만을 본다면 누가 봐도 20대 30대의 포즈가 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건강 면에서도 청년 못지않은 신체나이를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아래로 20살 정도는 너끈히 커버할 수 있는 외모와 재력 그리고 신체를 가지고 있어 시니어의 시작이 55세라고 하면 누구도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55세가 아닌 65세만 하더라도 시니어라고 말하기엔 너무 건강하고 노인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특히 한국은 성형외과나 피부과 같은 외적인 미를 추구하기 위한 장소가 대중화되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오히려 신체에 이상이 생겨 진짜 성형이 필요한 사람이나 피부에 심한 트러블이 생겨 진짜 피부과를 찾는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이제는 성형은 이목구비를 더 아름답게 바꾸기 위한 곳으로 피부과는 미용을 위한 피부 관리로써의 병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바뀐 듯하다.
문턱이 낮아져 저렴한 비용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피부를 관리한다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다. 머리 손질을 위해 헤어샾에 가는 것처럼 피부 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피부과에 다니는 것을 기본으로 알고 있으니 오히려 피부과나 성형외과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더 이상 나이 든 중년이 아닌 꽃중년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나마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한국의 유행을 직간접적으로 받아 암암리에 비전문가를 찾거나 피부 마사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신하고 있다. 미국은 화려한 도시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한국처럼 예쁘게 차려입으면 어디 좋은 곳에 가는지 물어볼 정도로 누가 무슨 옷을 입는지 얼굴이 어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신체적으로는 3, 40대에 비해 현저히 몸 상태가 떨어지는 사람도 많다. 일단 폐경기가 되면서 여성 호르몬이 나오지 않음으로 인해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장기 부분의 역할이 그전 같지 않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된다. 남자는 비뇨기과를 찾는 분들이 많아지고 역시 남자 갱년기로 우울감에 빠지는 분들이 많아지는 시기다. 깊은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자는 시간과 수면의 질이 현저히 떨어져 하루 일과 중 상당 시간 잠으로 인한 피로감을 느끼며 생활한다.
신체 중 없어졌으면 하는 뱃살이나 팔뚝 살은 자꾸만 늘어가는데 건강의 적신호인 허벅지살과 근육량은 급격히 낮아진다. 그로 인해 장시간 버틸 체력이 바닥이 나고 소화 능력은 그전 같지 않아 조금만 많이 먹어도 더부룩한 날들이 많아지고 체하기일 수인 날들이 많아 소화 기능의 두려움을 항상 안고 살게 된다. 그로 인해 오뚝이나 ET 같은 몸매가 되면서 외모적으로나 심적으로 우울감을 느끼는 시기가 된다. 그 외 머리숱이 없어져 거울 보기가 두려워지고 눈가 주름을 가리기 위해 눈화장에 집중하게 되고 선글라스 없이 사진 찍는 일을 금하게 된다.
특히 미국은 성형이나 피부과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고 간단한 시술이나 주기적인 피부 미용 관리라는 인식이 낮아 쉽게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일단 대도시가 아닌 일반적인 도시에는 개인 병원이 많지 않고 임상 실험 부족으로 비싼 돈을 들여한다 해도 만족할만한 예후가 나오기 어렵다. 한국의 대중화된 성형은 성형천국이라는 오명을 만들었지만, 그만큼 임상실험으로 인한 데이터가 많은 나라도 없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이유다. 하지만 미국은 의사가 부족한 나라다. 예를 들어 일 년에 성형외과 의사를 미국 전체에서 180명을 뽑는다면 누가 믿겠는가? 평균적으로 미국 한 주에 3명만이 졸업을 하는데 상상이 가는가?
이렇게 어려운 실정 때문에 한국에서는 그리 흔하다는 보톡스 한 번 맞아보지 못한 중년이 태반이다. 그렇지 않아도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을 곱씹으며 젊음의 끄트머리를 간신히 붙잡으며 어떡하면 시니어의 진입에 최대한 늦게 들어가느냐의 관건에서 뜬금없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군가가 '할머니'라 부르며 시니어 대우를 한다면 준비되지 않는 마라톤 시합에 슬쩍 밀어 넣어진 입장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해와 달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24시간, 12달, 1년이라는 시간표를 누가 만들었는가? 우주의 흐름을 인간들이 발견하고 그 규칙을 시간이라 규정하고 그 규칙을 온 지구의 모든 생물이 지키는 것, 시간이란 바로 그런 것이고 시간이 흘러 나이가 되고 나이대로 인간을 구분하는 것, 이것이 나이의 기준이 되었다고 가정해 본다.
오래전 일이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수영장에 갔다. 수영장 내에 있는 스낵바에서 핫도그를 먹고 있는데 아이가 너무 춥다며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먹던 핫도그를 가지고 가려하니 안전요원이 음식물 반입이 되지 않는다며 주의를 주었다. 아이가 추워서 여기에서는 도저히 먹을 수 없으니 이해할 달라고 하자 규칙상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럼 포장을 해서 가지고 가겠다고 말하니 그래도 음식을 가지고 갈 수는 없다며 완강하게 수영장 규칙을 말했다.
누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냐고 물으니 이곳에서 만들어진 규칙이고 고객은 그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해서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핫도그를 휴지통에 버리고 가야만 했다. 자, 여기에서 누구를 위한 규칙이란 말인가. 이는 고객과 주인장의 상호규칙이 아닌 주인장의 원칙을 고객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일방적인 규칙이라고 생각된다.
이렇듯 각자의 생각은 고려하지 않은 채 시니어라는 나이테를 둘러놓고 무조건 따르라는 프레임을 사회적으로 씌워놓았다. 나이가 많아지면 사고하는 머리나 신체에 똑같은 나이대로 나이가 든다고 생각한다. 학교 다닐 때는 학년마다 그 이름을 정해서 부르는데 정작 사회에 나오면 이름이 없어지고, 순간 이동처럼 젊음에서 늙음으로 전환되는 시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잔인하게 단 번에 무 자르듯 잘라 던져버린다. 그것도 사회가 규정해 놓은 메스를 들이대며 55세를 그 시작점으로
라는 경고장을 날리는 듯 불쾌한 생각마저 들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내 나이는 오십 중반을 달리고 있지만 내 마음속 나이는 40세쯤으로 생각된다. 물론 머리카락은 새치가 조금씩 면적을 넓혀가고 있고 얼굴에는 잔주름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눈은 점점 잘 보이지 않아 돋보기 없이는 글을 읽기가 불편하고 가끔 뼈마디가 아파 약을 먹곤 한다. 폐경기에 접어든 나이 든 아줌마라 갱년기가 무섭지 않냐라는 말도 듣고는 있지만, 아직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고 아이와 남편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일을 하는데 게으름이 없다.
시니어는 말 그대로 인생의 후반부를 달리는 나이 든 노인 부류를 규정하는 말인데 내가 인생의 후반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우주의 시간을 규칙으로 삼아 굳이 나이로 인간을 구분한다면 25세 정도까지를 1학년 프레쉬맨, 50세 정도까지를 2학년 서포모어, 75세까지를 3학년 주니어 그리고 75세 이상을 4학년 시니어로 부르는 게 좋을 거 같다. 100세가 넘어야 5학년 즉 대학원생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구분된다면 나는 이제 막 주니어에 들어선 주니어 신입생이라 불리는 게 맞을 것이다. 아! 얼마나 바람직한 인간계 나이 구분인가?
그러한 구분 또한 내가 원하지 않으면 꼭 구분할 필요는 없다. 같은 50대나 같은 60대라도 모두가 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고 환경적인 요인 또한 무시하지 못한다. 신체적 나이도 다를뿐더러 생각하는 마인드 나이는 정말 천차만별이다. 같은 동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맞나? 할 정도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내 신체와 내 마인드는 남이 뭐라든 40대로 살고 있다. 40대에서 50대의 변화는 커가고 있는 내 아이들의 나이가 말해주지 결코 내 몸과 머리가 말해주지 않는다.
이 글을 쓰게 한, 충격을 한참이나 받았던 그 지인은 그 뒤로 외모가 점점 달라지고 있다. 항상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었기에 더욱 놀라운 일이었지만, 이제는 조금 더 어려 보이는 스타일로 꾸미려 신경을 쓰고 마인드 또한, 아줌마가 아닌 미시족 같은 생각을 하려고 은연중에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나뭇가지 끝 작은 봉오리 새싹은 어느덧 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또 다른 세상으로 날아온 모양이다. 그 푸름을 잡고 훌쩍 뛰어오르면 만개한 꽃송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녀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