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스럽다.
평일 저녁 집에 도착을 하면 자연스럽게 안방으로 가서 침대 위에 라디오를 켜곤, 외투를 옷걸이에 걸친다. 제법 이제는 나의 일상 속 루틴처럼 되어가고 있다. 기계조작이 서툰 나는 처음 잡히는 FM89.1을 쭉 틀어 놓고 있다. 라디오를 켜기 시작한 이유를 되돌아 생각하면 결혼생활을 하고 나서다.
경기도로 생활터를 잡고 나서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고 집에 늦게 도착하게 된 나는, 그만큼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자야 한다. 아무리 정시퇴근을 하고 집에 와도 집에 와서의 온전한 시간은 한 시간이 될까 싶다.
그 시간을 잘 활용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한편으로는
온몸을 소파에 누워서 늘어지게 핸드폰을 보고 싶어 진다. 그러니깐 허영 부영 하게 쓰고 싶다. 하루에 해야 하는 집중력과 판단력을 회사에 다 쓰고 나면,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어지지 않고 바다 위에 떠 있는 해파리처럼 시간이 흘러가는 데로 유영하는 객체가 되고 싶어 진다.
그런데 집에는 집만의 일들이 또 있다. 하나하나씩 해체 나가는 그 시간이 때때로 적적하다. 독립 전 부모님 밑에서 형제자매들과 살아갈 때는 하루에 단 한 시간이라도 집안이 온전히 조용하기를 바라왔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내 머릿속에 박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가 한쪽에 귀를 쫑긋하게 되었다. 예민했던 나에게는 맞지 않는 가정환경이라며, 오랜 시간 약간의 원망을 품고 나만의 고요한 공간을 가지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런데 독립을 하고 나서,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데 사람 소리가 없는 것이 적적하다. 요리를 하고 밥을 먹고,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하는 동안 텔레비전을 켜 넥플릭스를 킨다. 그런데, 또 막상 켜 놓으면
듣는 것을 넘어 보고 싶어 진다.
'설거지를 해야 하는 데, 씻어야 하는 데, 내일 회사 갈 준비 해야 하는 데...'
이 마음들이 자꾸 쌓이다가 하루를 마무리하게 될 때도 있다. 이 마음의 문턱을 넘어가기 위해 라디오를 켠다. 적적하지 않게 사람소리가 나지만 정작 엉덩이를 주저앉아 보게 되는 그런 콘텐츠는 아니어서 자연스럽게 켜 놓고 이런저런 살림살이들을 한다. 그래야지, 하루에 한 시간이나마 다음을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회사에 가서 라디오를 요즘 들으면서 살림살이를 한다는 이야기를 하니 제법 아줌마 같아졌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의미는 살림살이를 챙기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세대들은 드라마를 켜놓고, 야채를 손질하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것들이 딱 어제 내가 영화를 보면서 양파껍질을 벗기고, 마늘을 다지면서 시청한 태도와 동일했다.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나의 행동에서, 여느 살림살이하는 사람의 모습이 내비치기 시작했다는 것이 기분 나쁘지만은 않다. 결혼 후 절대적인 나의 시간을 늘었지만,
그 안에서 다음을 위한 도약의 시간이 늘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하루하루를 연명한다는 느낌으로 이어가고 있고, 이 느낌은 언제쯤 덜 들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커리어적으로 시간 투자를 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결혼 전 막연했던 기대와는 달리 커리어를 위한 도약의 절대적인 시간은 비슷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생존과 관련된 살림살이를 하면서, 요즘은 이것으로 지쳐갈 때도 있지만, 머리를 굴려 재고를 파악해 보고, 레시피를 찾아 직접 요리를 해보는 시간이 꽤 흥미롭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귀찮은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처럼 나를 위한 관리라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나름의 더 나아가는 삶의 형태 같기도 하다.
이제는 주말에 나름 평일에 먹을 저녁거리를 조금 미리 해놓는 패턴으로 자리를 잡아 볼까 한다. 아침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나는 시리얼 먹는 것 초자 시간에 쫓기면서, 매일 시리얼을 먹는 것을 질려한다. 그래서 때때로 주먹밥이라는 것을 사 먹기도 하고, 회사로 가는 길에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먹을 때도 있다. 일찍 일어나는 만큼, 보다 빠르게 배가 고파지는 것이 현실이다. 동그란 주먹밥이나 이런 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고민을 하면서 주먹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보고 있다.
왜냐하면 남편은 유당알레르기가 있어 시리얼을 원하지 않고, 밥에 대한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먹밥을 만드는 연습을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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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거리는 역시 따뜻하게 갓 프라이팬에서 나온 음식과 비견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안다. 아직도 신혼초반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초반에는 집 와서 요리를 해 먹을 생각을 했던 것이지라는 생각마저 든다. 남편은 너무 힘들여 생활하지 말라고 했었다. 이 말은 역시 자취생활을 길게 해 본 남편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 말이었다. 이제는 집에 와서 아무리 빠른 요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걸리는뿐더러 그런 정신적 에너지가 부족한 것 같다. 지금은 반찬으로 밥 한 끼를 먹는 것이 가장 빠른 식사라는 생각이 된다. 집에 있는 몇 가지 반찬에다가, 김과 계란을 올리고, 주말에 만든 밥을 데우고, 국 블록 풀어 먹는다. 슬슬 추워지는 계절이 다가오자 따뜻한 국물 생각에 들고 쉽고 간단한 라면이 당긴다.
이 또한 아이러니한 일 중에 하나인데, 라면을 결혼 전에 일주일에 2-3번을 먹을 때도 있을 정도로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이 처럼 완벽한 식품이 있단 말인가 라면 찬양가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 와 생각하면 마음에 드는 음식이 없다는 것을 항의하는 나의 표현 방법 중 하나였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해준 밥이 싫어요. 반찬은 별로예요.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유난히 따뜻한 밥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했던 작은 언니의 밥실랑이에 지쳐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내색하는 것이 귀찮고 싸움의 발단이 되는 것 같아, 그냥 라면을 먹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살림을 하면서는 라면을 점차 멀어지게 되는 것이 라면은 나에게 약간의 바항적 아이콘이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집반찬을 꼭꼭 챙기는 것이 결혼을 해서 달라진 것인지, 독립을 해서 달라진 것인지 모를 이 다름이 나는 꽤나 피곤하고 하나하나 겪는 것은 인생의 다채로움을 겪는 것 같다.
게임을 하고 피곤한 것처럼, 이 비유가 적당한 것일지는 모르나, 인생의 다채로운 변화에 피곤하고, 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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