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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꼰대다

일을 하루종일 해도 좋다는 사장딸의 말에서, 자격지심을 마주하였다.

by SHOOT

퇴근을 하고 운동을 하러 가는 길, 우연히 사장 딸과 사장 친척과 함께 퇴근길을 가게 되었다. 사장 사촌은 퇴근을 하고도 '운동을 하러 가는 것이 대단하다'면서 은은한 칭찬을 해준다. 사장 딸은 본인은 '일을 하루종일해도 좋다.'라고 문맥과는 다소 떨어진 말을 한다. 목구멍까지 순간 반사적으로 나온 속마음을 꾹 눌렀다. '최저 임금을 받으면서 2시까지 일을 하고도 저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겉으로는 약간의 의아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다행스럽게도 갈림길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날 나는 그 말을 잊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스치듯이 지나가던 불쾌감을 붙잡고 그 마음을 키우고 있다. 사장딸의 직업 경력을 알고 있기에 커질 수밖에 없는 반감이다. 다른 회사를 경험해보지 못한 채 오직 이 회사가 전부인 사람이다. 그러니, 취업난의 경험도, 최저임금과 야근에 대한 노동의 가치도, 그 무엇 하나 제대로 경험하지도 못한 채 '하루종일 일을 해도 좋다.'라는 그 말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라고 한 말처럼 우스꽝스럽다.


추측건대, 비교적 나의 비교적 말라 보이는 체형을 칭찬을 하는 사장 친척 앞에서 동갑의 과체중인 사장 딸은 마음 한쪽에 자리 잡아져 있는 자격지심을 감추기 위한 방법으로 우월성을 드러내고 싶었나 보다. 그것은 아마 '일에 대한 열정, 워커 홀릭 이미지'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한 열정이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반대로 나의 개인적인 직업경력 때문일 것이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중에 한 때는 해고에 크게 마음을 다쳐, 해고가 없는 세계 공직에 관심이 생겨 공시공부를 약 2-3년 하기도 했었다. 그랬기에 해고도 정년도 없는 자신의 아버지 회사에 들어온 일하는 그녀의 모습이 나에게 질투 일으켰다.


사장딸에 대한 일을 친한 우리 팀 상사에게 이 말을 하자, 사장딸이 '회사경험이 없어' 그렇다는 말과 함께 바로 을로서의 공감을 해주었다. 그렇기에 나도 속마음을 조금 더 꺼내 목구멍까지 올랐왔던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후임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꼰대'라는 주제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친구에게도 말을 했더니 친구는 나에게 꼰대라고 한다.


그렇다. 나는 꼰대다. 나보다 많은 실패를 해보았는지, 많은 노력을 해보았는지, 성실이 임했는 지를 두루 보게 된다. 너무 어렵게 와서 쉬이 온 사람들을 보면 내 안의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마주하였다. 거칠고 모난 마음이다. 사장딸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힘, 권위도 없으니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글을 쓰면서 해소를 한다. 근데 이마저도 생각하면, 주변사람들에게 꼰끼를 보인 것이니, 다음부터는 말을 삼가여야겠다. 그리고 이제와 조금 더 생각을 해보면 나의 비교적 마른 몸을 칭찬했을 때, 근육은 볼품없이 적다며, 사장 딸을 향해 훨씬 근육이 많아 보인다고 역으로 칭찬을 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장 딸을 직원으로 생각해서 문제가 된 것이다. 사장 딸도 사장이라고 생각을 하자.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공감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젊고 직원의 복지를 그나마 더 생각하는 사장으로서는 꽤 괜찮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조금 더 경제적으로 독립적이고자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의 월급에 만족을 하지만, 기질이 예민하고 갇혀있는 것에 힘들어하는 스타일이다. 오랜만에 파이팅이 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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