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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수 Jan 03. 2020

내 자리 9

'잘 지내'

작년이라고 쓰기엔 아직 익숙하지 않은 2019년 마지막 날 밤, 한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흔한 새해 인사말이었다. 전에는 꽤 친하게 지냈던 친구라 답 인사 끝에 ‘올해는 얼굴 좀 보자’라고 남겼다. 그걸 놓치지 않고 답변이 이어왔다.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한 해의 끝자락이었다. 결국 전화가 걸려왔다. 내 기억으로는 이 친구와 3년이 넘도록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지금 1_minisu


익숙한 목소리에 세월은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의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몇 번이나 ‘내가 이 얘기를 왜 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훈훈한 마무리 인사를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무엇이 불편했는지 나는 마지막 말투를 유난히 다정하고 따뜻하게 포장했다. 친구도 덩달아 끝음을 길게 빼면서 ‘복 많이 받아’라고 빌어주었다.

@지금 1_ㅡminisu


전화를 끊고 잠시 멍하게 서있었다. 3년이 넘도록 서로 궁금하지 않던 친구와의 대화에서 의미를 찾고 싶었다. 이 대화로 인해 내가 늘 한발 빼고 말아 버리는 관계를 마주하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곳에 무엇이 있기에 나는 지금 제자리에 있는 느낌인지 알아야 했다.


내가 지닌 생각들과 이 친구의 강점은 이성적으로 잘 맞는다. 그런데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그냥 불만 많은 제멋대로인 인간인가…

잠시 후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5,4,3,2,1… 2020 새해다.


답을 찾기 위해 책을 봐야 했다. 한 달 정기권을 구입해 e북을 보고 있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골라서 대충 보다가 말기를 여러 권이다. 또 그렇게 책을 한 권 골랐다.


‘나는 타인과의 관계가 어렵다.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는 내가 외부의 타인에게 닿을 수 있는지를 의심한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세계와의 관계 문제를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계와의 관계 문제에서 지금까지 내가 도달한 잠정적인 결론은, 자아 밖에 외부세계가 존재하는지 매우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만약 외부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의 실체에는 결코 접근할 수 없다. 눈앞에 드러나는 세계는 내 마음에 의해 재구성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계의 ‘실체’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각기관과 뇌가 그려주는 세계의 ‘그림자’를 본다.’

채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중에서


전화를 끊고 결심한 내 세계를 관찰하기에 적절한 책이다. 종이책을 주문했다. 복잡한 실타래 속에서 한쪽 끝을 발견한 느낌이다. 풀리진 않겠지만 적어도 친구와의 대화를 곱씹거나 히스토리를 되짚지는 않게 되었다. 그랬다. 나는 나의 세계에서 떠들고, 친구는 친구의 세계에서 떠들었다. 우리가 긴 세월 만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어쩌다 만난 세계에서는 잘 훈련되어 능숙해진 새해 덕담을 나눈다. '(너의 세계에 갈 일이 없으니) 잘 지내...'


@지금 1_minisu



어젯밤에 텔레비전에서 하는 토론회를 지켜보았다. 4명의 토론자가 각자 의견을 말한다. 상대의 말에 어이없어하면서 분노를 하고 얼굴이 벌게진다. 하지만 몇 차례 설전 후, 상대의 세계에 접근금지를 당한 채 체념한 듯한 토론자의 표정을 보았다. 처음부터 자기의 세계에서 나오지 않은 또 다른 토론자는 자신의 판타지 속에서 상대의 세계를 장악했다고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또 나의 세계에서 그들을 마음대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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