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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Dec 30. 2023

사랑의 이해

오디오 매거진 <조용한 생활>을 구독 중이다. 2023년 1월호의 목록을 보다 보니 <더 글로리>와 <사랑의 이해>를 다루는 에피소드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들어보았다. <더 글로리>를 이미 본 상황이어서 이승한 평론가와 김혜리 기자가 이 드라마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고 역시나 재미있었다. 넷플릭스에 있는 것은 알았지만 시도해 볼 생각도 안 했던 <사랑의 이해>가 왜 <더 글로리>에 붙었는지 궁금해졌다.


드디어 시작된 <사랑의 이해> 이야기. 멜로는 멜로인데, 일반적인 드라마들이 멜로를 하기 위해 계급을 들고 온다면, <사랑의 이해>는 계급 이야기를 하기 위해 멜로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이 팟캐스트를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구독을 중지했던 넷플릭스를 다시 가입한 후 사랑을 이해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이렇게 드라마를 몰입해서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극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할 생각은 없고, 미래의 나를 위해 <사랑의 이해>를 보면서 들었던 몇 가지 생각들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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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은행원들의 이야기라는 점에 흥미가 생겼던 것 같다. 드라마 볼 때 제일 관심이 안 가는 분야가 법조계나 의료계 혹은 재벌 쪽의 이야기인데, 은행이라는 비교적 와닿는 공간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했다. 극 중 은행이 '영포점'인데 이것이 내가 사는 영등포를 모사했을 거란 생각에 이 극의 무대가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두 여자 배우 문가영과 금새록의 캐스팅이 좋았다. 참 개인적인 것인데, 둘 다 내가 모르는 배우라서 전작이 남긴 인상이 없다는 점이 극에 더 몰입하게 해 주었다. 유연석 배우의 얼굴을 보다 보면 이따금씩 수리남이 생각나서 잠시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그래도 두 여자 배우와 함께 서 있는 유연석의 매력적인 외모에는 마지막까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시청자들이 극에 몰입하는 데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어떤 실수는 인연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두 사람의 투샷을 보는 재미가 좋은 드라마.


어디 가서 이런 대접받을 분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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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몰입해서 보긴 했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 중에 개연성이 약하게 느껴지는 지점들이 꽤 많았다. 그런데 그런 부분들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정도로 <사랑의 이해>의 이야기의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지금 시대에,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재미있게 볼 드라마일 것 같긴 하지만, 언어 감각이 뛰어난 이야기꾼의 솜씨가 펼쳐진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적지 않을까. 이따금씩 눈이 번쩍 뜨이는 대사를 들을 때마다 이런 감각을 더 자주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른 걸 떠나서, 사랑의 '이해'라는 제목이 탁월하다. 사랑에서도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세대에 대한 이야기. 그 이야기가 '은행'에서 펼쳐진다는 점까지.


배경음악에 대한 아쉬움은 컸다. 무난하게 극을 보조해 주는 정도의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데 그친 것 같아서. 좋은 드라마는 나중에 OST만으로도 그 감흥을 다시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랑의 이해>도 그렇게 될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메인테마 한두 곡을 제외하면, 배경음악 때문에 오히려 몰입을 깨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어서 더욱 아쉽게 느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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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해>를 보면서 <연애시대>와 <나의 아저씨>의 장면들을 종종 떠올렸다. <초속 5센티미터>나 <언어의 정원> 같은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이나 지금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일본의 청춘 드라마들까지, 내가 어떤 종류의 멜로를 좋아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대체로 주인공들이 내향적이고 말을 아끼는 유형이었던 것 같다. 대체로 사이다보다는 고구마 타입인 것 같기도 하고.


무려 2006년도에 방영된 연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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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었다. 2주 동안 20시간을 보았으니 여가 시간을 거의 다 이 드라마에 쓴 셈인데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을 하겠냐고 물으면 글쎄...라고 답을 하게 될 것 같다. 열심히 만든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화에 있었던 결정적인 편집 오류는 16화까지 이어온 내 몰입을 완전히 깨버렸다. 나도 뭔가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해가 되긴 했지만 걸작이 하는 일은 아니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것은, 만약 당신이 어떤 계기로 이 드라마를 보고 반짝임을 느끼게 된다면, 나는 아마 당신과 <사랑의 이해>에 관해 한없이 떠들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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