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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토 Jun 10. 2023

미국에서 출산하기 3

고통스러운 힘주기의 과정

(2편에 이어서 씁니다. 2편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로)

https://brunch.co.kr/@mylittlepluto/53



드디어 출산의 마지막 단계인 힘주기의 시간이 왔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간이었다. 진통은 오히려 견딜 만 했다. 무통 주사를 맞았기에 오히려 첫째때보다 참을만한 수준의 고통이었다. 다만, 첫째를 낳는 과정에서 가장 고생했던 부분이 바로 힘주기였다. 남들은 한 두번 혹은 그저 십오분 정도 힘을 주고 나니 아이가 쑴풍 나왔다더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와 달리 나는 첫째를 낳으면서 세시간을 내리 힘을 준 후 병원 측에서 "세시간이 지나면 제왕절개를 해야 합니다"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여 힘들게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다. 


둘째를 낳을 때는 호흡법 공부도 해보고 힘주기 자세도 좀 더 알아보고 가리라 생각했던 마음과 달리 이번에도 별다른 준비는 하지도 못한 채 어느덧 병원 입원실에 누워 있다. 37주에 출산한 전력이 있으면서 만삭이 되도록 미리 공부해 두지 못한 내 탓이 크다면 크다. 


워싱턴 대학 병원의 좋은 점은 모든 의료진이 내 의료 기록과 역사를 숙지하고 있었단 거였다. Birth Plan이라고 하는 출산 계획을 간단하게 제출해둔 덕도 컸다. 분만실엔 남편이 들어올 것이며 최대한 자연 분만을 지향하며 무통 주사를 맞겠다는 계획표였다. 미국에서 아이를 낳으며 느꼈던 것이지만 사실상 의사보다 간호사들이 더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함께 하며 수많은 것들을 도와주고 돌봐주게 된다. 이번에도 나를 담당해줬던 두 간호사 멜리사와 테일러가 있었기에 자연 분만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멜리사는 내가 힘주기를 앞두고 긴장한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초반 몇 분이 흐르자 첫째를 힘들게 낳았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차분하게 나를 격려해주던 멜리사 역시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한창 진통이 진행되며 힘을 줄 때는 산모가 소리를 지르면 질렀지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걸 본 건 의외였을지 모르겠다. 


"진통 때문에 아파서가 아니라 첫째를 난산으로 낳았던 트라우마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거에요."


내 말에 멜리사가 했던 그 다음 말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둘째는 대부분 첫째보다 금방 나와요. 첫째를 세시간만에 낳았으니 이번에는 분명 더 일찍 나올 거에요. 물론 그게 십오분이 될 수도 있고 한시간 반이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분명히 세시간보단 짧을 겁니다. 할 수 있어요. 이미 머리가 보여요. 지금 아이가 산도를 지나오기 위해 힘을 줄 때마다 조금씩 내려오고 있어요."


그 말을 듣고 힘을 내서 계속해서 힘을 줬다. 다른 이들의 분만 과정은 본 적이 없기에 알 길이 없지만 이번만큼은 믿기지 않지만 차분하고 침착하며 친절한 의료진 덕분에 한층 긴장이 풀린 채 힘을 줄 수 있었다. 진통 중간 중간 간호사들과 웃어가며 대화도 나누었다. 하지만 막상 힘을 주기 시작한지 삼십분이 지나자 기력이 딸리기 시작했고, 이번에도 역시 "십오분만에 쑴풍" 아이를 낳는 일은 나에겐 일어나지 않는구나 싶어서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그냥 바로 제왕 절개를 해달라고 해야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옆에서 힘내라고 힘을 줄 때마다 남편이 응원하는 소리마저 왜 이리 듣기가 싫던지 나도 모르게 "잘하고 있어란 소리 좀 그만해!"하며 성질을 냈다. 


어느 정도 힘을 주고 있던 차에 갑자기 멜리사가 의사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내 심장 박동과 아이의 심장 박동이 동시에 지나치게 올라갔다 (elevated)는 것이었다. 힘은 들었어도 첫째를 낳을 때는 의료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분만이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출산을 하려니 문제가 생기는 것인가 싶어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심장 박동이 올랐다는 것은 감염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라 우리는 프로토콜을 따라야만 해요." 


감염이 있다면 열이 날 수 있기에 재빨리 내 손에 타이레놀 두 알이 쥐어졌다. 


"감염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피를 뽑아야 합니다."


안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양 쪽 팔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사 바늘이 꽂힌다.


"이번 진통 텀은 쉬어도 좋아요. 일단 피를 뽑읍시다. 움직이면 안됩니다. 움직이지 않고 힘을 줄 수 있다면 힘을 줘도 되고요."


"그럼 그냥 푸시하도록 할게요."


나는 진통을 느끼면서도 힘을 주지 않는 것이 더 고통스러워서 양 팔에서 피를 뽑는 도중에도 힘을 주었다. 간호사들이 올림픽감이라며 환호해 주었다. 곧 의사가 들어오더니 내 상태를 보고 설명해 준다.


"감염이 있는지 없는진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런 경우 감염이 있다 한들 아이가 산모의 몸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감염의 문제는 없어집니다. 그러니 빨리 분만을 마무리 해서 해결합시다! (Let's get that baby out!)"


말이 쉽지 힘 주는 것이 누구보다 어려운 나에겐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바로 그 때 나이가 좀 지긋해 보이는 간호사 하나가 들어오더니 내 힘주는 자세를 보고는 본능적으로 자세 교정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수잔이었다.


"다리를 이렇게 당기고 공처럼 몸을 둥글게 하고 다시 힘을 줘보세요."


수잔이 내 양쪽 다리를 몸쪽으로 가깝게 접어주고 자세를 고쳐주자 거짓말같이 힘을 주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그러자 빠르게 분만이 진행되었다. 힘이 축 빠져나간 온 몸에 다시 힘이 돌기 시작했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첫째때도 센스있게 막판에 나를 도와준 레지던트 덕분에 자연분만을 성공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수잔이었다. 그녀는 자신있게 그러나 침착하게 내 자세를 고쳐주며 나를 도왔다. 거의 다 왔다는 멜리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곤 눈 앞이 흐려지려던 찰나에 갑자기 모든 의료진들이 수술복으로 갈아입는 모습이 보인다. 단 몇 초 사이에 풍경이 바뀌었다.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첫째 때도 봤던 장면이다. 갑자기 의사도 간호사들도 모두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순식간에 내 앞에 섰었던 바로 그 모습이다. 이제 마지막 힘주기 한 번이면 바로 아이가 나온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멜리사가 말했다.


"아이가 나오면 우리 병원에선 페이저 (pager)를 울릴 거에요. 그리고 병원에 있는 모든 의사들이 이 방으로 모이게 됩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은 가장 특별하니까요. 모두가 모여서 그 순간을 축하하고 지켜볼 거에요. 그러니 갑자기 이 분만실에 처음 보는 의료진들이 들어와도 놀라지 말아요."


내가 낯선 이들이 들어오면 놀랄까봐 나의 심리부터 챙겨주는 친절한 멜리사의 말에 안심이 되었다. 그녀가 말하진 않았지만 아마 모든 의료진들이 순간적으로 모이는 것은 단순히 아기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문제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 미리 모든 의료진들이 모여서 그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이 이 병원의 전통 같았다. 그렇게 수많은 의료진들이 대기하는 상태에서 내 인생 마지막 출산의 마지막 힘주기를 했다. 아이의 머리가 먼저 빠져나가고 어깨와 몸이 빠져나가는 것이 그대로 다 느껴졌다. 나중에서야 아이가 손 하나를 얼굴 즈음에 얹고 나오는 바람에 내 출산이 더 힘들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출산 후기는 4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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