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담 Apr 05. 2023

끝도 모르고 치솟는 분노

어느날 갑자기 불쑥, 화가 났다. 

엄마의 죽음 그리고 내 슬픔과 고통에 대한 분노가 마음 속에 가득 찼다. 

도대체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지, 신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상담을 하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후 생활 하는데 집중하면서 나름대로 잘 지내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되자 쓸쓸한 기운이 몰려왔다.

그리고 끝없이 솟아오르는 분노가 나를 덮쳤다. 


나는 하루종일 화를 내고 있었다. 남편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일년에 한 두번 싸울까 말까 하는 부부인데, 내가 화가 나 있으니 모든 것이 싸움거리였다. 

조금만 내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트집을 잡아서 화를 냈었다. 


어느 주말엔가 남편과 하루에 두세번을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도저히 멈출줄 모르는 분노의 감정을 나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니 신경정신과에 가보는게 어떻겠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병원에 가야하는 문제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사실 나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고, 하루종일 분노에 시달리면서 탓할 대상을 찾고 있었다.  

슬픔이 때로는 뜨거운 감정을 불러온다는 걸 처음 알았다. 


사실 그 전 해부터 한 번씩 머리가 무겁고 울적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하루는 두통이 있어서 증상을 갖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다가 우울증이라는 결과가 나와서 혼란스러워하면서 신경정신과에 예약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당일에 예약을 취소했었다. 신경정신과를 방문하기엔 무언가 부담스러웠다.

왠지 며칠 명상하고, 운동도 하고 지내다 보면 괜찮아질 것도 같았다. 그래서 병원 방문을 미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갑자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찾아온 분노의 감정이 너무 수상했다. 

긴가민가 하면서 병원에 갔다.

 


몇 가지 테스트를 하고 나자 의사가 중증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려주었다. 

중증 우울증은 스스로 우울감을 떨쳐낼 수 있는 초기 단계를 지난 것이라고, 약물 치료를 받아보자고 하셨다. 얼마나 약을 먹으면 되는지 물어봤더니 3개월을 우선 먹어보자고 하셨다. 

그래서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의외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3개월 약을 먹으면 해결될 수 있는 병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쉽게 느껴졌다. 

애도 과정이라고 했으면 이게 언제 끝날지, 어떤 고통스러운 과정을 더 겪어야 할지 몰라서 되려 어렵게 느껴질 것 같았다.


약을 먹으니 제 때에 깊이 잠을 잘 수 있어서 좋았다.  

잠이 오지 않아서 혼자 밤을 지새우거나 새벽에 깨서 잠을 못 이루는 때가 많았는데, 약을 먹으니 이 모든게 사라졌다. 그리고 약간의 부작용이 있어서 초기 1달 정도 약물 반응을 살피는 시간이 있었다. 약을 조금씩 바꾸어 가면서 생활을 잘 해보려고 애썼다. 


우울증 약은 신기하게도 초반에 반짝 좋아지는 경향이 있다. 의사 선생님은 뇌가 갑작스런 자극에 놀라는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울증 환자의 약물 반응 그래프라며 초반에 상승곡선을 그리다 급하향했다가 다시 중간 정도로 조정되는 그래프를 보여주셨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때 그 그래프가 정말 정확했다는 생각이 든다. 


약을 처음 먹었을 때 며칠 내로 기분이 확 좋아졌었다. 그러다 식욕이 없어져 살이 쏙 빠진 적도 있었고, 기분이 왔다갔다 하거나 처진 상태로 보내는 시간도 있었다. 


약을 조금씩 바꿀 때마다 금방 반응하는 내 몸이 우습기도 했다. 

이렇게 약물에 쉽게 휘둘리는 몸이라니.. 새삼 의학의 위대함도 느끼면서, 약을 포기하지 않고 먹었다. 

그리고 운동도 꾸준히 해나갔다.  


돌아보니 쉬운 듯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이 말을 걸어올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