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이라는 함정
살면서 한 번쯤은, 느닷없이, 복권에 당첨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게는 그런 경우를 대비한 계획이 있다. 갑자기 당첨되면(?) 너무나 당황해서 허둥지둥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세우던 계획은 처음에는 수박만 한 크기더니 점차 토마토만 하게 되었고 종국에는 블루베리만 해 졌다.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세밀한 계획이 — 이를테면 로또 1등 당첨 후 최초의 점심 메뉴는 무엇이 적합한가 — 되고야 만 것이었다.
이러한 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부터 조사한다. 네이버에 찾아보니 1/8,145,060이란다. 이 숫자를 세기 위해 방금 막 손가락을 일곱 번 접었다. 팔백십사만 오천육십 분의 일. 우리나라 인구수는 2024년 기준으로 5,175만 명가량 된다고 한다. 즉 통계적으로는 매주 약 6.5명가량의 로또 1등 당첨자가 탄생한다고 볼 수 있다. 은근히 많다. 머지않았다.
이왕 확률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벼락을 맞을 확률도 알아볼까. 미국국립기상청에 따르면 사람이 80년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평생 벼락에 맞을 확률은 1만 5300분의 1이라고 한다. 평범한 가정집에서 후라이를 하려고 계란을 톡 깨뜨렸는데 노른자가 4개 들어있을 확률*은 또 어떨까. 자그마치 1,100억 분의 1이란다. 이왕이면 노른자 4개가 터지는 희귀함의 최고봉을 경험하기보다는 비교적 흔한(?) 로또 1등 체험이 훨씬 선호되기야 하겠지만, 확률만 놓고 보자면 노른자 4개가 희소성 측면에서 훨씬 우위에 있다는 얘기다.
이리도 흥미진진한 확률은 통계에 기반한다. 통계는 매우 과학적이고 근거가 탄탄한 학문이다. 그러므로 95%의 신뢰구간 이내에서라면 확률을 맹신해도 좋다. 그래서일까. 확률을 통해 많은 것을 점칠 수 있다는 믿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로 그 믿음은 사주팔자나 MBTI를 맹신하는 것보다는 훨씬 합리적이라는 인상도 준다. 어쩐지 현대 문명에 적합한 인간으로 거듭났다는 기분도 잠깐 즐길 수 있음은 물론이다. 실제로 확률은 집단에 대한 수치적인 통찰을 멋지게 제공함이 틀림없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 하나만 놓고 보면 세상의 모든 확률이 모든 의미를 상실하고야 마는 것이 아닌가.
로또 1등에 당첨이 되거나, 되지 않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떠나지 않거나.
책을 읽거나, 읽지 않거나.
글을 쓰거나, 쓰지 않거나.
눈을 뜨거나, 뜨지 않거나.
노래하거나, 하지 않거나.
내가 생각해도 궤변 같아 도리도리 고개를 젓다가도, 다시 생각해 보면 50:50으로 꼭 수렴해 버린다. 물론 자의와 타의가 이런저런 비율로 조합되는 건 무시할 수 없다. 예컨대 한국에 태어나거나 태어나지 않거나, 동생이 있거나 없거나, 문과를 가거나 가지 않거나, 약대를 가거나 가지 않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쓰고 보니 삶이 더없이 이분법적이게 느껴진다. 선택의 지점에서 갈래갈래 나뉘어 뻗어 오르는 모양이 꼭 나무의 자람새 같기도 하고. 우유부단한 순간마다 발생하는 시차 정도야 있었겠지만.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생기기 마련인데, 유난히 불행의 얼굴에 예민해진다. 사사로운 불행의 가능성을 낮잡다 보면 ‘왜 이런 일이!’라는 다섯 글자를 툭 내뱉게도 된다. 멋대로 높낮이를 추산한 탓이다. ‘그토록 낮은 확률이라면, 발생하지도 말았어야지’ 하며 억울한 심산이 고개를 빳빳이 쳐든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50:50의 문제였다는 것을. 1:99가 아니라, 언제나 50:50. 단 1%, 아니 0.0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절망은 늘 수면 아래에서 유유히 헤엄칠 것이므로. 그러나 좌절은 말자. 희망 역시도 내내 날고 있으므로.
그러니 세상만사 유난을 떨 일도 없는 것이다. 모든 일은 동전을 뒤집는 거랑 다름이 없으니까. 얼마든지 앞면도, 뒷면도 나올 수 있지. 어떤 희귀한 확률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저 반반의 문제다. 몇 억 개의 정자 중 하나와 약 200만 개의 난자 중 하나가 만날 확률은 몇 일까. 계산기를 두드려 보지 않아도 엄청 희귀하다는 느낌이 팍 들지 않는가? 그런데 그 희귀하디 희귀한 확률 게임을 넘어선 당신이 지금 여기, 있다 없다 가운데, 있지 아니한가.
물론 로또 1등에 당첨되어도 이렇게 태연자약할 것인지는 일단 당첨되어 보아야 알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과연 달관한 태도를 고수할지, 꺅꺅꺄끽깨꾸 등의 괴성을 지르게 될지가 몹시 궁금하기 때문에 호기심 해소를 위한 당첨이 대단히 시급합니다. 감사합니다.
*Reference
https://n.news.naver.com/article/662/0000034704?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