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취미가 되는 순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게 있다. 하루키의 에세이집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으며 알게 된 표현이다. 찾아보니 1979년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로, ‘달리기 애호가들이 느끼는 도취감’이란다. 본래 달리기를 썩 좋아하지 않던 나로서는 이런 감각이 있는지도, 정의까지 내려진지도 몰랐다. 달리면 그저 차오르는 건 피맛뿐이던데…?
그러던 내가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도 어언 한 달이 넘어간다. 달려야겠다! 하는 의지가 있어 달린다기보다는 그저 달린다. 아침 일찍 절로 눈이 떠진다. 그러면 주섬주섬 운동복을 챙겨 입고, 러닝화를 신는다. 가까운 공원으로 가서 달리기를 살살 시작한다. 처음엔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습관이 되고 보니 이제는 몸에 붙어서 내 의식 수준을 앞서버린다. 달리기의 속도가 현실의 무게가 밀려오는 속도를 넘어서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잘 달리지 못했다. 평소에 나름 운동을 한다고 했다지만, 턱없이 모자랐나보다. 그리고 달리기는 내가 해 온 운동들과는 무언가 달랐다. 기교 없이 우직하다. 단순하고 독립적이다. 고로 잔꾀 없이 정공법으로 돌파해야 한다. 그래서일까. 달릴수록 마음이 편해진다. 무념무상의 세계를 열어주는 마스터키 같다. 달리고 걷고를 반복하는 매일매일이 이어진다. 어떤 밤에는 내일은 꼭 늦잠 자야지, 달리기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하는데도 다음날 아침이면 영락없이 달리는 나를 발견하고야 마는 지경이 됐지 뭔가.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제는 30분 이상을 너끈히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막연히 어제보다는 조금 더 달리는 구간이 길어진 거 같네, 하고 가늠이야 했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얼마나 연속적으로 달리는지는 잘 몰랐다. 그러다 오늘은 문득 ‘한번 쉬는 구간 없이 달려볼까?’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중간에 힘들어지면 멈추면 된다는 심산이다.
그런데 한 시간 가까이를 달렸다. (목에서 피맛도 나지 않았다!) 딱히 빠르게 달리기 보다는 그저 통통통 하는 느낌으로 달린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달리는 데 중점을 두기로 한다. 컨디션이 괜찮으면 빠르게, 아니면 느리게. 너무 힘들면 걸어도 좋다. 어제보다 오늘 잘하면 좋고, 아니라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스스로가 대견하니 셀프 칭찬을 해 가면서. 이런 나날이 흐르고 보니 한 시간을, 10km를 달리고 있는 (초보지만) 러너가 되어있지 뭔가.
오늘은 달리다가, 불쑥 '러너스 하이인가?'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는 느낌. 육체는 그저 관성에 이끌려 달린다는 감각. 정신은 육체를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만 같은 오묘한 기분. 사실 러너스 하야이 어떻든 좋다. 작은 성취감이 마음속에 물결처럼 일어 기뻤다.
회피의 수단으로 시작한 달리기가 습관이 되고, 애정이 깃든 취미가 된다. 이왕이면 오래오래 좋아하고 싶다. 그렇지만 언젠가 달리지 않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그러나 믿는다. 사람은 자기가 소망하는 방향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음을. 아주 조금씩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은 부니까. 그러니 오늘은 그저 오늘의 취미 활동을 즐기는 마음으로 이어 나가면 된다.
덧 1. 그리고 아침 일찍 마주하는 하늘과 빛의 표정은, 오전 달리기가 주는 뜻밖의 기쁨. 기꺼운 마음으로 누린다.
덧 2. 달릴 때 가장 듣기 좋아하는 음악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나왔던, Mr.Blue Sky - Electric Light Orchestra 다. 박자가 아주 달리는 발걸음에 딱딱 들어맞는 게, 너무나 경쾌하다!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