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불청객
2019년쯤부터였을까, 사람이 미어터지는 2호선을 타고 출근할 때 현기증과 구역감이 들고 온 몸에서 힘이 빠지며 식은땀이 나는 증상이 생겼다. 그때만 해도 단순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2호선을 타지 않고 버스를 타고 앉아서 출근을 하면 괜찮았기 때문에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증상은 이상하게도 출근길에서 자주 발생했는데, 처음에는 당황해 걸음을 걷지도 못하고 힘겨워하다가 여러 번 경험을 한 후에는 자연스럽게 대처방법을 체득하였다. 앉아서 출근을 할 때에는 그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이 너무나 많다면 그 자리에서 웅크려 앉거나 초긴급시에는 앞사람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거나 노약자석에 앉아서 숨을 고르고 식은땀을 식혔다. 마음 한편에서는 만원 지하철에서 눈치가 보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 눈치를 보지 못할 만큼 힘이 들었다.
이 증상은 지속적으로 발생했고, 빈도 또한 많아졌는데 이 증상이 가져오는 후유증이라고 한다면 하루 종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또, 소화도 멈춰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먹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토하는 증상이 있었다. 그때 회사 근처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은 나를 진료실 침대에 눕히시고는 배를 통통 두드려보시더니 “배에 가스가 많이 찼네요.’’라고 말씀하시며 위장약을 처방해주셨다. 이런 증상은 두통을 동반하니 선생님은 증상이 생기면 바로 병원에 와서 위장약을 먹어야 된다고 했다.
약을 먹으면 하루나 이틀 후에는 나아졌지만 완치가 되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병원에 가는 빈도는 많아졌고, 증상은 점점 심해져가는 것 같았다. 선생님께 도대체 이 병이 무슨 병인지 묻자 기능성 위장장애라고 답해주셨다. 스트레스를 받아 위장에 가는 혈류가 줄어들어 위장이 운동을 멈추어 생기는 현상이라고 했고, 가스가 가득 차서 속이 더부룩하고 좋지 않고 두통이 생긴다고 답변해주셨다. 기능성 위장장애로 알고 몇 달을 살아가던 중 어느 날 선생님은 증상이 너무 자주 발생하는 것 같고, 이 증상이 계속되면 공황장애가 의심되니 정신과에 진료를 받는 것을 추천해주셨다. 하지만 자기가 이렇게 말해도 병원에 실제로 가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며 정신과에 가는 것이 싫으면 신경과에 가서 뇌에 문제가 있는지 CT를 찍어보는 게 어떤지 소견서를 써주셨다. 하지만 아마도 젊기 때문에 뇌에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때의 소견서에 적어주신 병명은 이름도 어려운 ‘미주신경성 실신’이었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의 말대로 그 어떤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병원을 가지 않았다. 또, 살면서 단 한 번도 실신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선생님이 진단한 미주신경성 실신을 어느 정도 믿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증상으로 병원에 방문했을 때 선생님이 처방해주는 약은 위장운동 개선제에서 어느 순간 신경 안정제가 추가되어 있었다. 또, 코로나 백신을 맞고는 심박이 날뛰는 느낌이 들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심박을 낮춰주는 약이 추가되어 있었다. 약을 먹고 나아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계속 병원에 다녔고, 선생님은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했다. ‘스트레스를 받고 싶어서 받는 사람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심지어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숨이 차고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했다. 선생님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는데도 증상이 나타났다고 하자 선생님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모를 수도 있다.” 고 대답했다. 아마도 이 당시의 증상과 증상에 대한 예기불안이 공황 발작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는데, 이 당시에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에 대한 압박감과 사업을 따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과중한 업무와 야근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이때의 나는 회사 이야기만 해도 눈물을 흘릴 정도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정신과를 가지 않고 버텨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