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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나무 Nov 28. 2023

나만 아는 내 생일에

 김치를 담그고 뒷정리를 하느라 바쁜데 카톡이 울렸다.


꼭 바쁜 날에만 카톡도 더 바쁘다. 평상시엔 하루가 지나도 울리지 않는 카톡이 계속 깨똑거렸다.

치우고 받을까 하다가 헌국에서 급한 소식이 올까 봐 고무장갑을 벗고 카톡을 열었다.


- 샘 생일축하해요.-


어, 생각해 보니 오늘이 내 생일이네.


이제 만 쉰여섯이 되는 날이다. 꼭 좋은 소식은 아니다. 이제 환갑도 가깝다. 그런데 아무도 몰랐다. 나도 몰랐다.  더운 나라에 살다 보니 계절감이 없다. 내 생일은 추운 계절인데 지금도 바깥은 36도이니 깜박했다. 이건 슬픈 핑계고 이제는 하루종일 깜박거리니 생일 깜박하는 거야 뭐 놀랍지도 않다;


 사실 나는 내 생일을 잘 잊어 먹는다. 어려서부터 이상하게 생일을 챙기는 것이 좀 부끄러웠다.

내 생일을 지극정성으로 챙기던 친정어머니도 팔순을 앞두고는 깜박 깜박이다.


나도 형제들 생일을 잘 챙기지 으니 그들도 내 생일엔 감감무소식이다  친구들에게도 생일이라고 말하고 어떤 행사도 하지 않으니 그들도 내 생일은 그러려니 넘긴다.


  생각해 보면 내 생일을 가장 챙겨야 할 두 송 씨는 (남편과 딸)은 내가 말하지 않으니 그러려니 한다. 한 번 씩 사람을 욱하게 하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두 송씨다.


결혼 첫 생일을 깜빡한 남편이 서운해서 시어머니에게 하소연   했다


  그 이후 시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인 나의 남편에게 해마다 내 생일을 알려주셔서 남편이 저녁을 사고 케이크를 챙기게 독려하셨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어느 해는 시어머니가 음력 생일을 이야기하는 바람에 남편이 음력 생일을 양력 생일에 밥을 주어서 한 해 두 번 생일밥을 얻어먹었다. 얻어먹어도 지친다.


  그 이후에 나는 아예 생일에 대해서 입을 닫았다. 그래도 그렇지 ... 그렇지만 어쩌랴 당장 싸울 기력도 의지도 없다

카톡을 닫고 돌아보니 김치를 담근 흔적들이 널브러진 집에서 나만 아는 내 생일을 깨달은 나에게 현타가 왔다. 멀고 먼 이국 땅에서 김치 담그는 날이 내 생일이라니...그때 일주일에 두 번 청소해 주는 사람이 왔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어차피 김치를 담그고 차 한잔 하러 나갈 생각이었는데 겸사겸사 몰로 걸어갔다.


몰로 들어서자 즐비한 케이크 가게들이 들어왔다.  평소엔 비싸고(한국보다 비싸다. 케이크 한 조각에 오 천 원에서 만원까지 한다) 과하게 단 케이크가게를 그저 지나쳤는데 오늘은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다. 생일인데 나도 케이크 한 조각 먹고 싶다. 내 생일이니 내가 사 먹으면 된다.


나는 카페에서 달디 단 초콜릿 케이크를 골랐다.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평상시엔 그냥 먹기 그랬던(비싸서) 빵도 한 조각 골랐다. 그리고 따뜻한 차 한잔을 시키고 앉아서 보니 생일상치곤 뭔가 허전하다  싶어 샐러드를 골랐다. 얇은 아보카드 서너 조각에 연어 세 조각 든 샐러드 일 인분이 우리 돈으로 만원이 훌쩍 넘는다. 항상 느끼지만 인도네시아 물가도 많이 놀랍다. 그렇지만 오늘은 내가 나에게 생일상을 차려주는 날이니 상관없다


케이크와 빵과 샐러드와 따뜻한 차 한잔을 놓고 보니 잘 차린 생일상을 받는 느낌이 온 몸에. 작은  행복감과 함께. 퍼진다


 뭐 인생 별거 있나 싶다.

남이  챙기면 내가 챙기면 되는 거지.

나는 내가 사랑해야 한다.

그렇다.

나도 오십 넘겨 깨달은 바다. 모든 간은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면 된다. 그리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남이 날 사랑하고 챙기기를 기다리는 것은 스스로를 족쇄에 넣는 일이다.


느긋하게 달고 맛나지만 건강에는 좋을지 의문이 드는 만족할만한 점심을 마치고 저녁거리로 미역국 대신 묵사발을 준비해 왔다. 묵사발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집에 묵이 있어서다. 미역국은 어제 그제 이틀을 먹어서 생일이래도 또 먹고 싶지는 않다.   생일날 묵사발 먹지 말라는 법도 없고 있다고 해도 내 생일인데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면 된다.  ㅎㅎ

.

나만 아는 내 생일도 나쁘지 않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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