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여넌 전 아이들의 교사 평가서를 읽다가......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좋아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알 수없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웃기는 선생님.
국어 교사이며 담임인 나에 대한 한 줄 평가...
아직 인간의 길을 찾지 못하고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여 날뛰는, 반인반수라 불리던 열 네살 중학교 일학년 남학생 중 어리기까지 하여 이름만 들어도 그냥 한숨 짓게 만드는 남모가 쓴 거였다.
나는 그 때 마흔 아홉 고개를 허덕이며 명예 퇴직을 꿈꾸던 교사였다.
순간 멈칫 자세로 한 손으로 A4 용지를 잡고 (그 때는 아이들이 종이에 교사에 대한 평가를 했었다. 이름은 적지 않았지만 순진한 아이들의 필체는 참 정직했다) 있는 나를 보고 옆 자리 이 샘이 슬쩍 넘겨다 보고는 웃음을 터드렸다.
순간 나도 웃으이 나왔다.
상황이 정리되었다.
우리가 웃는 것을 보고 주변의 샘들이 다 쳐다 보았다.
- 이거 남 모가 쓴 거죠? 다 보여. 에이 짜식 아니 중학교 일학년인데 이렇게 표현력이 없나..... 웃기는 샘이 모야
재미 있는 샘... 유머 감각 넘치는 샘... 요즘 애들 표현력 하고는 ...-
옆자리 샘의 설레발로 사람들은 모두 재미 있어 했고, 나는 웃기는 샘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당시에도, 그 뒤로 삼 십 여년의 교직 생활을 마친 지금도 가장 마음에 드는 나에 대한 별명은 웃기는 샘이다. 이상하게도 내가 아이들에게 웃기는 샘이었다는 사실이 참 좋다. 생각해 보면 내가 뭐 한 게 있었나 싶은 인생에게 다른 사람을 웃기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강한 자부심으로 남는다.
그 뒤로 나는 웃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아 웃기고 싶다.
이 열망이 일찍 생겼으면 나는 개그맨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열망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을 웃기는 일은 참 쉽지 않다. 내가 웃길 마음의 준비 되어야 하고, 내 말에 웃어 줄 마음의 준비르 한 경우에는 웃기는 일이 참 쉽다. 하지만 이 팍팍하고 험난한 세상에서 가진 것 없이 젊은도 건강도 달랑거리는 내가 웃기려는 마음을 갖기는 쉽지 않다. 거기에 이 풍진 세상에서 남늬 말에 웃어 즐 여유를 가진 사람들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웃기는 사람이 되기는 쉽지 않다.
육아 휴직을 끝내고 돌쟁이를 업고 마흔 하나의 나이로 복직을 했다.
내가 없는 동안 학교 시스템은 변하다 못해 상전벽해가 되었고, 나는 뽕나무 밭이 변한 바다에서에서 익사하기 직전의 상황까지 갔다. 내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나는 침울하고 진지한 사람이 되었다.
어느날 운전 하면서 라디오에서 웃기는 이야기가 나오는데도 눈에서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웃으려고 해도 눈물이 나와서 울면서 웃는 꼴이었다. 그 때 알았다. 시덥잖은 성격 탓에 날마다 웃고 웃기던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겨우 겨우 상황이 나아지고 운전을 하고 가다가 라디오를 듣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안도했다. 이제는 바다에서 헤엄을 칠수 일을 것 같았다.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이 여유가 있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축복으로 다가오면서 나는 뜬금없게도 남을 웃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실 나는 좀 웃기는 사람이었었다. 그렇지만 웃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웃기는 일에 집착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 달 가야 한 두번 사람을 만나는 칩거 언니의 생활을 하지만 언제나 길을 나설 때는 웃기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갖고 집을 떠났다가, 돌아 오는 길에는 나의 웃김이 먹히지 않은 경우에는 쓰라린 실패를 되새김질 하며 씁쓸해한다.
나는 웃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