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친화적인 멕시엄리스트
나의 친애하고 사랑하는 늙은 신랑이 나를 정의하는 수많은 명칭 중 하나, 이율배반적인뇬이다.
언젠가 일 년에 한 번, 이년에 한 번 만나는 나의 몇 안 되는 절친에게 신나서 떠들어 댄 적이 있었다.
신랑에게 '이율배반적인 뇬'이라고 들었다.
당시 나의 친구는 인상을 팍 쓰면서 어떻게 와이프에게 '뇬'이라 부를 수 있냐며 놀라는 눈치였다.
나의 수다는 '뇬'보다는 '이율배반적'인 나의 성향과 웃겼던 우리 일화에 방점이 있었는데 말이다.
막상 이렇게 쓰다 보니 그게 어떤 일화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이래서 기록이 중요하다. 기록하자.)
대체적으로 신랑이 날 이율배반적인 뇬이라고 부를 때는 이런 때이다.
1. 환경을 위해 텀블러를 사용하면서, 이쁜 텀블러를 색깔별로 살 때.
2. 명품은 고가 사치품이라는 신랑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가끔 이쁘면 바로 사놓고 그냥 처박아 놓을 때.
3. 탱고 연습은 지지리도 안 하면서 이쁘게 춤추고, 언제나 만족스러운 춤을 기대할 때.
나의 대문자 T발인인 나의 늙은 신랑은 나에게 따끔하면서도 애정을 듬뿍 담아 부른다.
"이율배반적인 뇬"
사실 나는 딱히 이 말이 욕 같아 들리지도 않고
나도 인정하는 나의 성향을 잘 표현한 말이라 신랑이 부르는 다른 호칭들보다 그나마 내가 얼굴을 붉히지 않고 들을 수 있는 것이라 괜찮다 싶었는데, 친구에겐 아니었나 보다.
(예를 들어 '하늘다람쥐' 하늘다람쥐처럼 귀엽다며 붙인 호칭인데, 신랑은 가끔 마트에서 날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 큰소리로 '하늘다람쥐'하면서 부른다. 그러면 난 또 '모르는 사람입니다! 모르는 사람이에요.'라며 빠르게 그곳을 벗어난다.)
다시 돌아가서,
이율배반적인 뇬에 대해 요즘 핫한 GPT에게 물어보다.
나는 컴맹이지만 나름 얼리어덥터라 신기술이 나오면 무조건 써본다.
이달 나는 무려 200달러를 내고 4.5를 사용해보고 있다.
다시 한번, 인정한다. 이율배반적인 뇬은 나의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다.
이것도 인정해야겠다. 나의 친구 입장에서 '이율배반적인 뇬'은 너무도 나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화를 알려주고 다시 물어보자.
이러하다.
사실 '이율배반적인 뇬' 일화를 통해 나의 개그가 친구에게 먹히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이유였으리라 본다.
첫 번째, 우리 부부의 개그가 내 친구에게 통하지 않는다.
두 번째, 내가 말을 재미있게 하지 못했다.
어쩌면 두 가지 이유 모두 일 테지만,
그 순간 조금 서운했다.
이율배반적인 뇬을 이야기하기 전에 늙은 나의 신랑을 늙었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살짝 서운했는데,
이율배반적인 뇬의 개그에도 허석 하며 나의 늙었지만 자비롭고 선비 같은 신랑을 마구잡이로 욕을 하는 놈팡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서운했다기보다 언짢았다.
나는 늙은 신랑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돌아가서 그 상황에서 나는 언짢음을 표현하진 않았다. 친구와 나는 너무 가끔 만나는 사이가 되어 이제는 서로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사실 서로 느끼고 있는데 굳이 긴장을 풀어버린 친구에게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곱씹고 있다.
쿨하지 않으면서 쿨한 척하는 이율배반적인 뇬.
다시 한번 인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