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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Jan 24. 2024

에르메스를 들고, 4천원이 아까우세요?

어느 작은 미술관 안내원의 하루

내가 다니는 K미술관의 입장료는 대개 무료이다. 사람들은 산책 나왔다가 잠깐 들러 쉬었다 가기고 하고, 어린이집은 종종 단체 관람을 하기도 한다. 교통편이 좋은 곳은 아니지만, 무료관람이라는 장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미술관이라는 곳에 대한 거리감을 없애주는 것 같다. 


K미술관에는 3개의 전시관이 있다. 전시관 이름은 단출하게 1관, 2관, 3관이다. 2관과 3관은 상설 전시를 하고 있는데 입장료는 사시사철 무료다. 반면 제일 큰 전시관인 1관은 기획전시관인데 때때로 유료로 진행되기도 한다. 


지난 12월 1일부터 열리고 있는 전시는 유료로 진행되고 있다. 입장료는 4천 원. 

인지도나 규모를 생각한다면 조금 높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해당 시에 거주하는 시민, 초/중/고교생은 50% 할인이 들어가서 2천 원이고, 미취학 아동/65세 이상 노인/장애인/국가유공자는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돈을 안 받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정책을 그렇게 정했으니 따를 밖에. 그렇다고 4천 원이 뭐 또 그렇게까지 비싼 금액은 아니니 일 년 중 한 시즌(3개월) 정도는 유료로 할만한 것도 같다. 


평일에는 조그만 등산가방을 메고 산책을 다녀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고, 미취학 아동을 데리고 나오는 가정주부들도 제법 있다. 주말에는 가족 단위 손님과 친구들끼리 방문하는 듯한 대여섯 명의 단체 손님도 종종 찾아온다. 

유료라고 하면, 무료 전시관인 2관과 3관만 가시겠다고 미안해하며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도 제법 있다. 


근처에 있는 공원에 산책을 나왔다가 잠시 들르는 사람들은 K미술관이 무료였던 것을 기억한다. 그들이 입장하였을 때, 데스크 안내원인 우리는 늘 같은 문구를 말한다. 

"이번 전시는 유료로 진행되고 있어요. 일반 4천 원이고요, 조건에 해당되시면 할인이나 무료 혜택을 받으실 수 있어요."

한 번이라도 방문을 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안내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눈을 크게 뜨며 말한다. 

"유료예요? 원래 무료 아니에요?"


원래 '무료'로 알고 있었는데 유료여서 입장객들은 당황하지만, 그들의 당황한 모습을 보는 안내원들도 당황스럽다. 이 즈음하는 전시는 항상 유료로 진행해 왔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으며, 대답 후 입장을 할지 발길을 되돌릴지 입장객의 선택을 기다리는 찰나가 조금 뻘쭘하다. 


데스크에 서서 안내를 하는 우리는 최대한 무료나 할인 혜택을 줄려고 한다. 

"혹시 00 시민이세요"

"아이는 미취학 아동이죠?"

"어르신 설마 65세 넘으셨나요? 그렇게는 안 보이지만 혹시나. 65세 이상이면 공짜세요."

K미술관은 돈을 벌기보단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작품을 관람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입장객은 해당 시의 시민이라 그런지, 유료인 것에 약간의 불만은 있지만 그래도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헛걸음하기가 싫어서 입장료를 결제를 하는 편이다. 그리고 다수의 입장객은 무료입장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결제를 하고 미술관에 들어서는 손님들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한다. 

"즐거운 관람되세요~!"


어느 날인가 이런 일이 있었다. 

데스크 창문 너머로 하얀 BMW 한대가 들어왔다. 제법 큰 차였다. 

우리는 "오~~ 좋은 차~"라며 다 같이 BMW를 바라보았다. 


차에서는 부부로 보이는 한 쌍의 남녀가 내렸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녀 커플이었다. 남자는 골프웨어를 입고 있었고, 여자도 레저용인듯한 옷을 입고 있었다. 다만, 여자는 아주 품질 좋아 보이는 외투에 멋진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고 왼쪽 팔에는 토트백을 들고 있었다. 한마디로, 돈 좀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보였단 말이다. 


그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K미술관 1관입니다."

부부는 팸플릿을 하나 쓱 집어 들더니 바로 입장을 하려고 하였다. 

"저 손님, 이번 전시는 유료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입장료 4천 원이고요. 00 시민이시면 2천 원입니다. 00 시민이세요?"


내 옆에서 그날의 티켓팅을 담당한 이 모씨가 입장 단골 멘트를 쳤다. 

"어머, 유료예요? 4천 원? 자기야, 어쩌지?" 여자가 말했다. 

"음... 자긴 어때?" 남자가 선택을 여자에게 넘겼다. 

"무슨 전시예요?" 여자가 물었다. 

"신인작가 발굴 프로젝트에서 선정된 작가들 작품인데 설치 미술 작품이 많고요, 회화는 30% 정도 됩니다."

"설치 미술? 자긴 설치 미술 알아?"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다. 

"허허..." 남자는 웃음으로 모면했다. 

"우리 바로 옆에 XX시 사는데 할인 안 되나요?" 여자가 데스크에 물었다. 

"아, 죄송합니다. 저희 임의로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요."

"2관, 3관은 뭐예요?"

"2관, 3관은 상설 전시로 무료입장입니다. 무료 입장하려면 2/3관만 가셔도 됩니다."

"아, 그래요?" 둘은 같이 호응했다. 


커플은 눈으로 잠깐의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저흰 그럼 2/3관만 갈게요. 다음에 다시 들를게요."

인사말을 남기고 스포츠웨어 커플을 2관으로 발걸음으로 옮겼고, 그들이 열고 나갔던 문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쌩하니 들어왔다. 공기가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오늘 입장객도 적었는데 00 시민 50% 할인해 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무언가 언짢았지만 내색을 하기도 뭐해서 최대한 무미건조한 말투로 나는 티켓팅을 하던 안내원 담당에게 말을 건넸다. 

"쌤, 뭐 하려고요? 원칙에도 안 되는 거지만 가능하다 해도 난 싫어요. 쌤, 여자분 가방 봤어요? 에르메스더라고요. 아니, 가방은 에르메스 들면서 미술관 입장료 4천 원은 아깝나 봐요."

어느새 가방에 있는 로고까지 보았는지, 그날의 매표 담당원은 짜증인지 허탈인지 분노인지 모를 어떤 감정을 토해 내었다. 


그들이 에르메스를 들었다고 해서 그들이 부자라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 가방은 선물 받은 것일 수도 있고, 평생을 돈을 모아 특별한 날 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내 눈의 판단으로는, 입고 있던 옷이나 타고 왔던 차량을 종합해 볼 때, 적어도 대한민국 상위 10% 안에는 드는 사람들로 보였다. 


서양에는 문화 예술에 대한 후원이 우리보다 일반적이어서 부자들은 개인 예술가를 후원하기도 하고 예술 단체를 지원하는 일도 많다고 들었다. 부자가 아니어도 연극을 할 수 있고, 미술도 가능하고,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우리는 아직은 예술을 한다고 하면, 집이 부자인가 보다, 고 생각부터 한다. 예술은 돈이 없으면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개인의 돈이나 집안의 돈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가에 대한 후원이나 지원은 아니더라도 아주 작은 것부터 예술에 대한 인식이 쉬웠으면 좋겠다. 안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을 공짜로는 봐도 굳이 돈 내고 보고 싶지 않다는 것. 돈 주고 보는 건 이름난 화가의, 유명한 미술관에서나 하는 것. 일반적 사람이 가진 미술과 작가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작은 미술관도 입장료를 내고 가기도 하고, 신인 작가의 뜻 모를 작품도 돈을 내고 보는 건 어떨까. 오늘 본 신인 작가가 10년 뒤 유명 작가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찾아보면 무료 미술관도 많다. 가까운 미술관에 가서 미술을 자주 보는 것. 작은 미술관을 살리고, 예술을 흥하게 하고, 작가에게 응원하는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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