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이 영국 총리에게 보내는
편지

영국이 한국 런던올림픽대표단장 정항범과의 만남에 조심스러웠던 이유

by 이대택

1948년 런던올림픽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열리는 올림픽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그동안 올림픽이 열리지 못했던 것이죠. 영국은 1944년 올림픽을 개최하기로 했지만 전쟁통에 개최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전쟁 후 경제적 상황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자의 반 타의 반 마지못해 올림픽을 떠안게 됩니다. 오랜만에 열리는 올림픽이니 그리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으니 IOC도 가열 차게 올림픽을 준비하게 됩니다.


해방을 맞이한 한반도에도 이제 독립적으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깁니다. 47년 봄 IOC로부터의 인준은 그로부터 1년간의 부단한 올림픽 참가 준비과정을 거치게 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영국에 가면'이었습니다. 선수단은 올림픽 참가가 단지 경기 자체만의 참가로 의미를 한정하지 않은 듯합니다. 이제는 독립국으로서 위상과 함께 나름의 외교를 진행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꼭지에서는 당시 한국 올림픽 대표단이 영국에 가면서 어떠한 외교적 성과를 기대했는지 선수단장 정항범과 이승만의 편지를 통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오늘까지 아무에게도 알려져 본 적 없는 이야기인데 이 내용은 영국 국가기록원 (National Archive, UK)에서 찾은 사료입니다(사진 13-1).


이 서지 사료는 표지를 포함해 총 47쪽 분량으로 1948년 극동지역 한국 관련 서류를 모은 것인데, 한국에 파견된 홀트 (Mr. Holt) 영사가 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한국 당국의 동향과 정보를 자국에 전송하고, 그 내용과 정보에 관련한 영국인들의 대응 방식 일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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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3-1] 영국 국가기록원, The National Archive, Great Britain. 2012년 촬영당시



한국 올림픽 선수단이 런던시장과 영국 국왕에게 편지와 선물을 전달하고 싶어 합니다.


한국 선수단과 영국 영사 홀트 사이에 처음부터 직접적인 접촉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홀트 영사의 한국 동향 첫 보고는 1948년 6월 2일 자 전신인데, 이때 홀트 영사는 당시 서울시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를 전언합니다(13-2). 이 전신은 한국올림픽팀 멤버가 런던시장에게 안부 편지와 함께 한국 예술품을 전달하고자 하며, 영국 국왕에게도 보내는 편지를 가져갈 수도 있음을 적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홀트 영사는 미군정 정치 자문단 관계자에게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를 물었으며, 미군정장관(Military Governor)은 대략적이지만 올림픽팀이 영국의 고위층에게 편지를 보내고자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관계 당국자들은 부적절할 수 있으니 무마하려 했지만 한국인들이 완강했다고도 적었습니다.


며칠 후인 6월 14일 홀트는 맥더멋(Mr. MacDermot, 외무부 일본태평양과) 씨에게 전신합니다(13-3). 이 전신은 홀트 영사가 서울시장과 그의 미국 조언자를 이틀 전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만났으며, 이 두 사람이 모두 한국올림픽팀의 계획을 얘기함과 동시에 미국 조언자는 실제로 편지 초안 작성에 도움을 주었다고 적었습니다. 이어 하지 장군의 한국인 비서인 이 씨(Mr. Lee, 아마도 이묘묵으로 추정됨)는 서울시장으로부터 런던시장으로의 편지뿐 아니라, 올림픽팀이 한 쌍의 박제한 꿩을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에 그리고 골동품 총을 사우스 켄싱턴(South Kensington)의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에 선물로 가져갈 것이라고 전언했다고 적었습니다.


홀트 영사는 6월 16일에 실제로 한국올림픽팀과 조우합니다. 서울시장이 올림픽팀 공식오찬에 자신과 미국 조언자를 함께 초대해 한국팀 단장인 정항범을 만나게 된 것이죠. 홀트 영사는 정항범이 영국의 퀸스 케임브리지 (Queens Cambridge)에서 교육받았으며, 유쾌하고 친근한 사람으로 평가합니다(13-4). 그리고 런던시장에게 보내는 편지 문제는 서울시장과 미국 관계자 사이에서 만족스럽게 정리되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영국 국왕에게 보내는 편지는 언급이 없었으며 아마도 포기된 것으로 간주한다고도 적었습니다.


이후 또 다른 전신에서 정항범이 아트리 총리(Mr. Attlee, 영국 수상)와 달튼 장관(Mr. Dalton, 재무장관)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며 (확실하지 않지만, 아트리 총리에게 배운 적이 있고, 케임브리지에서 달튼 씨에게 사사 받았다고 말한 듯함), 런던에서 이들을 알현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이 분들의 개인비서들은 이 내용을 알고 있기를 바란다고 썼습니다(13-5). 그리고 정항범은 영국위원회(British Council)에 소개되어야 할 분으로 생각한다고도 적었습니다.


한국으로부터의 홀트 영사의 정보는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에게로 전달됩니다. 7월 14일 런던올림픽 조직위가 정항범 단장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러한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13-6). 즉 런던시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하기 위한 일정 조정과 방법,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 전달에 대한 방법 등과 같은 상세한 내용을 적고 있습니다. 한국 선수단이 7월 8일 런던에 도착했으니, 이 편지는 현지의 단장에게 보내진 알림 통지서 정도였을 것입니다.



[13-2-1] Clement-Attlee.jpg [사진 13-2] 클레멘트 아트리 (Clement Attlee) 영국 총리



정항범과 한국 정부에 대한 정치적 접근은 아직 이릅니다.


홀트 영사가 보내준 정보를 영국인들은 꼼꼼히 확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에 체류 중인 한국올림픽팀의 단장인 정항범이 진정 달튼 장관의 지인 인지도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달튼 장관의 개인 비서에게 전해진 편지는, 만약 지인이라면 달튼 장관이 만나려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정치적 이유라도 만남을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라 적혀있습니다(13-7).


이 편지에 대해 달튼 장관의 개인 비서는 답신합니다(13-8). 정항범이 약 20년 전 런던 경제학교 (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달튼 장관의 학생이었으며, 정항범이 지난 화요일에 달튼 장관을 찾아왔고 멋진 동양식 선물을 가져왔다고 적었습니다. 이들 사이 대부분의 대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이었으며, 정치 관련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적고 있습니다.


사료는 영국의 외무부가 한국 선수단의 정항범 단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이번 올림픽과 관련한 방문에서 영국이 한국과 어떠한 형식과 거리를 유지할 것인지를 대략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은 정항범 단장과 영국 부총리 간의 면담에 대한 보고서입니다(13-9).



1948. 8. 13.
외무부 보고서, 톰린슨 (Mr. Tomlinson)
부총리와 정항범의 면담에 대해

한국올림픽위원회 회장으로, 한국올림픽팀과 함께 런던에 있는 정항범 박사는 서울의 우리 영사의 표현에 의하면 ‘매우 유쾌하며 친근한 사람’ 임. 그는 케임브리지의 퀸스 칼리지에서 교육받았음. 그는 전쟁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충칭에서 보낸 것으로 보임. 그곳에서 “한국 망명정부(The Korean Government in exile)”라고 주장하는 많은 단체의 하나와 관계하였음.

정 박사는 정치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것이며 순수하게 개인적인 내용의 대화일 것임. 그러나 영국 정부가 한국의 미국령 하에 있는 구역에서의 한국 정부에 대한 입장을 물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 그는 이 구역의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의 편지를 가지고 있음.

유엔은 새로운 정부의 탄생에 다각적으로 관계하고 있음. 지난 12월에 국제연합총회(General Assembly)가 지명한 유엔위원회의 관찰 하에 선거에 의한 정부가 형성되었음. 우리는 위원회의 보고서가 파리에서 열리는 앞으로 다가올 총회에서 채택되기 전에 정식으로 우리의 입장을 정당화시킬 필요는 없을 것임.

최근의 한국 상황에 대한 간략한 요약을 첨부함.
(이하 생략)



정항범 단장이 영국 총리대신 부총리를 만난 것은 총리의 일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부총리와의 면담 후에 남겨진 보고의 사료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13-10).


총리가 부재중인 8월 13일 금요일에 정항범 박사를 만났으며, 정 박사는 한국 국민회의 의장인 이승만의 편지를 총리에게 전달하고자 가져왔고 선물을 가져왔음.
아트리 총리는 출타 중이며 편지와 선물은 나중에 전달될 것이라 전했음.
편지 사본과 선물을 보내니 총리가 이승만에게 적절한 감사를 표하면 기쁘겠음.


여기서 이승만이 영국 총리에게 보낸 편지를 한번 보도록 하죠(13-11).



1948. 6. 15.

존경하옵는

이번 기회에, 당신의 옛 제자인 정항범에게 나의 마음속 안부와 개인적 존경을 전하고자 함. 정 박사는 학생으로 오랜 시간을 보낸 영국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14회 올림픽대회에 선수단의 대표로 런던에 가게 됨을 매우 기뻐하고 있음. 그가 우리의 노력에 대해 당신께 알릴 것임.

유엔의 관찰 하에 진행된 투표는 성공적이었으며, 헌법을 정하는 국회 일정이 진행되고 있음. 3-4주 내에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어 정부가 형성되기를 기원하고 있음.

양국 간에 외교와 상업적 관계가 다시 열릴 날이 기대됨. 1884년 시작된 영국과의 조약이 공동의 적이었던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중단되기 전까지 매우 진솔했음. 서울에 머물던 전 영사 커모드 씨(Mr. Kermode)는 매우 친근했으며, 새로운 영사인 홀트 씨를 맞이한 것 또한 영광임.

이승만



아트리 총리의 비서는 부총리실에서 보내준 편지를 받고 다음과 같이 답신합니다(13-12).



이승만이 수상에게 보낸 8월 18일 연락 편지 감사함.
이미 알겠지만, 하루 이틀 전에 한국의 새 정부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음.
새 정부가 잘되기 기원하지만, 유엔이 총회에서 한국 보고서를 언급하기 전에 한국과의 관계 형성에 돌입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을 것임.
따라서 총리가 행운을 빌기 위한 개인적 메시지 이상의 반응은 필요 없을 것임.
동의한다면 첨부된 내용을 서울의 영사에 전달하여 이승만에게 총리의 답신을 보내도록 제안하기 바람.
동시에 영사가 구두로 이승만에게 우리의 한국 정부에 대한 입장을 전할 수도 있음.
수상에게 전달된 선물을 보았으며, 이는 한국의 솜씨를 나타내는 가치 있거나 감탄할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임. 편지의 초안을 동봉함.

이승만의 편지와 정항범이 가져온 선물에 대해 총리는 각각에게 위의 내용을 염두한 수준에서 감사의 편지를 보냅니다(13-13).



[13-2-2] Hugh Dalton mw44561.jpg [사진 13-3] 휴 달튼 (Hugh Dalton) 영국 재무장관



'영국에 가면' 한국 정부를 알리기를


정항범은 영국 유학생이었습니다. 영어에 유능하고 영국인들과의 관계도 형성된 상태였습니다. 런던올림픽 선수단을 꾸리면서 그 정도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겠죠. 정항범은 단지 선수단장의 위상보다 더 많은 것들에 대한 임무를 가지고 떠났을 것입니다. 총리에게 보내지는 이승만의 편지를 가져간 것만 봐도 그러합니다. 런던올림픽 선수단이 한국을 떠날 때만 하더라도 아직 정부가 없었던 시간이었지만 이승만은 영국과의 교류와 정상적인 국교를 염두했을 것입니다. 되던 안되던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했겠죠. 영국까지 대표단이 갔는데 아무런 인사나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것도 상식 밖일 수 있으니까요.


영국 정부의 입장과 자세도 흥미롭습니다. 아직 유엔에서의 공식적 언급이 없으니 적극적인 관계 형성에 굳이 뛰어들 필요 없다는 식이니까요. 이 글에서 보는 영국 국가기록원의 사료는 새로운 외교사를 보여줍니다. 정부 수립 시기와 맞물린 스포츠 역사이지만 이승만과 정항범의 활동 그리고 당시 영국의 한국에 대한 외교전술이 단편으로 보이는 사료입니다.






인용자료


(13-1) 1948년 한국 관련 서지, 영국 국가기록원 사료, GBR Natl Arch 7706328 FO 371_69958 file no 7876, 런던, 영국.


(13-2) Telegram from Mr. Holt, Seoul. (1948. 6. 2.) Transmission of Letters and Gifts by Messengers Attached to The Korean Olympic Games Team. GBR Natl Arch 7706328 FO 371_69958 file no 7876, 런던, 영국.


(13-3) Telegram from Mr. Holt, Seoul to Mr. MacDermot. (1948. 6. 14.) Transmission of Letters and Gifts by hand of one of the members of the Korean Olympic Games Team. GBR Natl Arch 7706328 FO 371_69958 file no 7876, 런던, 영국.


(13-4) Telegram from Mr. Holt, Seoul to Mr. MacDermot. (Japan and Pacific Department, Foreign Office). (1948. 6. 21.) Departure of Korean Olympic Team for England. GBR Natl Arch 7706328 FO 371_69958 file no 7876, 런던, 영국.


(13-5) Telegram from Mr. Holt, Seoul, to Mr. MacDermot. (1948. 6. 26.) Proposed visit of Dr. Chung Han-Pum, Chairman of the Korean Olympic Association, to Mr. Attlee and Mr. Dalton. GBR Natl Arch 7706328 FO 371_69958 file no 7876, 런던, 영국.


(13-6) 런던올림픽 조직위가 정항범 단장에게 보내는 서신. (1948. 7. 14.) GBR Natl Arch 7706328 FO 371_69958 file no 7876, 런던, 영국.


(13-7) From Mr. Pumphrey, To Private Secretary (1948. 7. 29.) GBR Natl Arch 7706328 FO 371_69958 file no 7876, 런던, 영국.


(13-8) From Private Secretary, To McAlpine. (1948. 8. 3.) GBR Natl Arch 7706328 FO 371_69958 file no 7876, 런던, 영국.


(13-9) From Foreign Office Minute, Mr. Tomlinson (1948. 8. 13.) Notes for interview between the Deputy Prime Minister and Dr. Chung Ham Pum. GBR Natl Arch 7706328 FO 371_69958 file no 7876, 런던, 영국.


(13-10) From Mr. Graham-Harrison, to Mr. AcAlpine (1948. 8. 18.) Letter addressed to the Prime Minister by Mr. SYNGMAN RHEE, Chairman of the Korean National Assembly, handed to Mr. Morrison on August 13th in Mr. Attlee’s absence. GBR Natl Arch 7706328 FO 371_69958 file no 7876, 런던, 영국.


(13-11) 이승만이 아트리 영국 총리에게 보낸 편지. (1948. 6. 15.) GBR Natl Arch 7706328 FO 371_69958 file no 7876, 런던, 영국.


(13-12) From Mr. F. Graham-Harrison, Private Secretary. (1948. 8. 20.) GBR Natl Arch 7706328 FO 371_69958 file no 7876, 런던, 영국.


(13-13) From Mr. Graham-Harrison to Mr. McAlpine. (1948. 8. 28.) GBR Natl Arch 7706328 FO 371_69958 file no 7876, 런던, 영국.


(사진 13-1) 영국 국가기록원, The National Archive, Great Britain. 2012년 촬영 당시


(사진 13-2) 영국 수상 클레멘트 아트리 (Clement Attlee)


(사진 13-3) 영국 재무장관 휴 달튼 (Hugh Dal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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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