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와 모금, 후원만으로도 가능했던 올림픽 참가
우리 선수들은 어떻게 국제대회 출전 비용을 충당했을까요.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들은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과 선교사 주한 외국인 등의 기부와 국내에서 모금이나 성금으로 이 비용들을 충당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비용의 출처와 규모는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고 사실 정확한 금액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 내역이 있기나 한지도 잘 모르겠고요.
이번 글에서는 알려진 또는 숨어있던 자료를 한데 긁어모아 과연 비용의 출처와 규모가 어떠했는가를 한번 정리해보려 합니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요.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는 우리 선수단이 어떻게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는지를 짧게 소개하는 신문기사들이 있습니다. 이 기사들은 미군 장교와 병사들의 기부와 언더우드 박사 (Dr. Horace Underwood)의 후원이 있었고 (12-1),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재정지원도 있었다고 하네요(12-2). 이들이 미군기를 이용해 미국에 도착했다고 하니, 미군의 적극적 지원이 있었다고 봐야 하겠죠(12-2).
현재 선수단의 총비용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길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유추는 가능합니다. 하지 장군이 보안사항으로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긴급하게 타전한 내용에 살짝 그 내용이 있습니다. 내용은 한국의 보스턴 마라톤 참가 선수단의 비용을 요청하는 것이며, 요청 금액은 항공료 및 6주에서 2달 동안 미국 채류비 총 8,000 달러였습니다(12-3). 적지 않은 비용이었죠. 이 요청은 미국 국방부에서 바로 거부됩니다.
보스턴 마라톤이 한 달도 채 남지 않는 상황에서 긴급하게 타전한 것이 거부되니 하지 장군은 다른 방도를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미군과 주위 후원자들을 찾았을 것이고, 지금은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은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하튼 현재로 기사에 남은 기부자들과 후원자 그리고 미군의 지원이 주된 비용 출처였던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후에 브런디지가 런던올림픽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단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받은 하지 장군이 조금 까칠하게 브런디지에게 답한 편지에서도 그 정황이 드러납니다. 편지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부터 한국 선수의 국제경기 참가는 주둔군의 기부금으로 지원되어 가능했음’(12-4).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서윤복 선수가 우승하고,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 IOC 총회에서 대한올림픽위원회 KOC가 인준되면서 국내에서는 올림픽 참가에 대한 열기와 기대가 한창 뜨거워졌습니다. 그러면서 선수단에게 필요한 비용 문제가 대두되었고 크고 작은 후원의 움직임이 다양하게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서윤복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에 고무된 분위기를 타고 동아일보는 일찍이 ‘런던마라톤 재패후원회’를 조직합니다. 그리고 본사에서 5만 원, 사원들이 1만 5천 원을 기부합니다(12-5). 이어 올림픽을 일 년여 앞둔 1947년 7월 올림픽후원회를 조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기죠(12-6). 그리고 1947년 말에는 올림픽에 가는 비용 마련을 위한 후원권 발행 계획이 수립됩니다. 당시 기사를 보죠(12-7).
‘... 그중의 일억 4천만 원은 상금이 붙는 올림픽 후원권을 발행하기로 되었다는데 그 후원권의 액면은 백 원으로 총수 일백사십만 장에 달하며, 이는 기부행위로 하여 원금은 상환치 않는다 하며 서울시를 위시하여 각지구지부를 통하여 판매하기로 되었다 한다. 그리고 발매 기한은 명년 1월 말일까지며 추첨 시일은 2월 15일 경이라는데 당선금 배당은 다음과 같다. 1등 백만 원 1장,
2등 50만 원 2장, 3등 10만 원 3장, 4등 5만 원 5장, 5등 1만 원 10장, 그리고 나머지 5십만 원은 남조선각학생생도들에게서 응분의 기부금을 거출케 할 계획이라 하며 일반의 절대적인 후원을 바란다고 한다.’
올림픽 출전에 드는 비용은 춘향전과 같은 국극 공연을 통해서도 후원되기도 했습니다(12-8). 고려대학교는 올림픽 파견 후원회가 발족하기도 했고요(12-9). 한 동안 지연되던 올림픽 후원권 추첨은 4월 15일 2시부터 남대문로 직산은행 뒷마당에서 수 백 명이 운집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12-10).
올림픽 후원권의 판매로 얼마가 모였는지 명확 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후일에 연구자들은 경비의 일부가 후원권으로 조달되었고, 100만 장이 팔려 수익금이 8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12-11).
미군정 또한 올림픽 선수단 비용 문제를 고심했습니다. 미군정의 협조 요청 편지에 대한 미육군극동아시아사령부(US Army Far East Command)의 답신에서 내용이 유추됩니다(12-12).
‘4월 21일. 미 공군의 한국올림픽팀 수송은 민간항공사 비용 아래로 제공될 수 없음을 알림. 미 장병 선수들도 영국에 가기 위해 민간 항공기를 이용함. 서울에서 인도 프랑스와 같은 많은 나라를 경유하여 영국에 가서, 미국을 들러 귀국하는데 민간항공기로도 일인당 1,700불이 소요됨. 가리오아 기금 (12-13)은 이 용도로 사용하지 못함.’
미국이나 미군이 직접적으로 재정적 지원을 해주기는 쉽지 않았나 봅니다. 그럼에도, 다른 문서들은 한국의 런던올림픽 선수단이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기차, 부산에서 요코하마까지의 배편, 일본에서의 숙박 등을 미군이 지원하고 이를 관리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12-14).
해외에서도 성금이 기탁되었습니다. 미국의 신한민보 7월 1일 기사를 보죠(12-15).
‘중앙 상무부에서 도달한 메리다 지방회 집행위원장 정학조 씨의 보고에 의하면 동지방회는 마라톤 선수의 경비를 돕기 위해 의연금 묵화 1백47원 미금재, 30원 25전을 모집하여 중앙 상무부 총무 최진하 씨에게 송고하였고 최진하 씨는 현금액을 가져 조선 올림픽 후원회 재무 박영섭 씨 [아써박]에게 전하였다 의연한 제씨의 방명과 금액은 아래와 같다. 김학용 양희용 각 25원, 박춘삼 15원, 최병식 김성혁, 정학조 각 10원, 김희철 송봉순, 최문순, 각 5원, 유진태 4원, 리용순 최수동 각 3원, 김석윤 2원 합계 1백47원.’
재일동포들도 후원에 나섰습니다. 런던으로 향하던 선수단의 첫 기착지가 일본이었는데, 동포들이 가만있을 수야 없었겠죠. 7월 15일 기사를 요약해 보죠(12-16).
‘도쿄 체류 동포들은 헌금 푼돈 모아 36만 원(일본화) 기부, 축구단 유니폼, 운동 양말 17점, 농구단 유니폼 운동 양말 9점, 넥타이 75개, 콘사이스 80권 기부. 오사카, 현금 80만 원(일본화), 내복 140여 점, 쌀 한 가마, 특히 박봉식 양에게 양복 한 벌, 핸드백 기증. 교토, 타월 백점. 일본인도 참여, 서윤복 선수에게 양말 8족 기증’
결국 올림픽 팀은 런던으로 향하고 대회를 마치고 돌아옵니다. 그러나 국민의 후원금으로 조성된 재정이 이렇게 쓰였는지는 알려진 바 없습니다. 더욱이 정산 또한 제대로 되었는지도 의문이고요. 후원회의 정산과 관련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12-17).
‘... 대표단이 돌아온 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후원회에서 하등의 회계결산보고가 없는데 대한체육회에서는 이를 독촉함에 이르러 문제가 표면화... 규약에 의하면 후원회는 대표단 귀환 후 3개월 이내에 결산보고를 하고... 후원회 측에서는 미수금 관계로 지연되고 있다고...’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도 올림픽 참가를 피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와중에도 올림픽 참가에 드는 비용을 어떻게든 마련한 듯합니다. 전쟁 중에도 미군과 UN군이 비용 마련에 적극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와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의 기사를 살펴보죠.
‘(New York Times, 1952. 2. 24.) 미군의 기부금으로 5명의 선수가 헬싱키로 갈 수 있을 듯함. 미8군 반 플릿 사령관 (Gen. James A. van Fleet)은 KOC에 편지해 한국 선수의 기량을 잘 알고 있으며,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공헌하고 싶다고 했음. 존 무시오 대사 (John J. Muccio)도 미국 선교단체에 기금 마련 캠페인을 벌였음. KOC는 35명의 선수단이 헬싱키로 가는데 약 78,000 달러가 필요하다 했음. 더 많은 돈이 기부되면 더 많을 선수를 보낼 수 있다고 했음.’(12-18)
‘(Chicago Daily Tribune, 1952. 2. 24.) 한국의 미 8군 사령관 반 플릿 장군은 오늘 UN군에게 한국팀을 헬싱키올림픽에 보내기 위한 후원금을 요청하였음. 약 9만 불이 필요하다 함.’(12-19)
약간의 금액 차이는 존재하지만 대략 8-9만 불의 비용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발적인 후원금 마련의 주체는 미군, UN군, 미국 선교단체 등이었고, 비용에 따라 선수단의 규모가 정해지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즈음하여 이상백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동란 중에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모금 상황이 보입니다. 편지에는 위 기사 내용과 유사하게 KOC 지원하에 올림픽지원협회가 전국적인 기부 캠페인을 벌이는 동시에, 미8군, 미5공군, 미대사관 등이 기부에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12-20). 실제로 한국의 UN군은 헬싱키올림픽 대표팀에게 7,000 불을 후원하였다고 합니다(12-21).
1953년 정부의 정산자료가 다행히 국가기록원에 남아 있습니다(12-22). 총 13쪽의 정산서인데 이 자료에 의하면 헬싱키올림픽에 후원된 총수입 기부금은 1,096,294,353 원으로, 미화 수입금은 미제8군, 미제5공군, 미동포기부금 등의 합계로 124,063불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적지 않은 기부금 규모죠.
지출 현황도 있습니다. 지출은 선수단 합숙비, 미화 교환금, 빳지 제조비, 사무비, 본부 경비, 지회 경비, 지불 이체 등 총 750,712,765 원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은 우리가 해방 이후 두 번째로 참가한 동계올림픽입니다. 첫 번째는 스위스 생모리츠로 1948년이었고, 1952년 오슬로동계올림픽은 전쟁 중으로 참가를 못했었죠.
56년 동계올림픽 참가에 필요한 비용과 관련한 정보는 많지 않습니다. 로이터 통신에 의하면 대한올림픽위원회가 동계올림픽 선수단에게 2,850 리라를 주었으며, 이는 은행과 준정부단체로부터 기부되었다고 합니다(12-23).
멜버른올림픽도 미국인들의 후원은 이어졌습니다. 한국의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렌프로 (H. E. Renfro)씨는 9월 29일 반도호텔에서 올림픽팀 후원 기금 마련을 위한 파티를 열면서 입장료 2천 원을 받는다 하였죠(12-24). 결과는 어떠하였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다음의 내용에서 아직도 많은 비용이 모자란 것을 알 수 있게 되죠.
1956년 10월 18일 한국의 교역국의 케사 바라더스 (Cesar Barradas)씨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유엔 한국경제지원사무국(UN command, Office of the Economic Coordinator for Korea)에 있는 완 (W. E. Warne)씨에게 편지합니다. 내용은 한국팀이 멜버른올림픽에 참여하는데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많은 단체들, 즉 UN 한국재건협회, 서울클럽, 미상공회의소 등이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미국인들이 3번에 걸쳐 모금활동을 벌였지만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고 그래서 미국에서의 지원과 후원을 요청하는 편지였죠(12-25). 이에 완 씨는 한국올림픽팀에게 보낸다며 한국환으로 147,564 환을 편지와 함께 수표로 동봉하여 보내게 됩니다(12-26).
해방 후 1947년 보스턴 마라톤부터 1956년 멜버른올림픽까지 약 10여 년 동안 꽤 많은 국제대회에 참가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이 뒷받침되어야 했죠. 지금까지 알아본, 존재하고 있는 자료에 근거하자면, 비용 충당의 간략한 윤곽이 드러납니다.
먼저, 대부분의 경우 국가의 재정지원이 없었다는 것과 대신 사회의 다양한 개인과 단체로부터 후원과 모금으로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한국 전쟁 이후에 보다 본격적으로 정부의 지원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모금과 후원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둘째로, 미국과 미국인, 미군의 전폭적인 후원과 기부, 모금 등과 같은 지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초기에는 미군이 주축이었지만 나중에는 민간단체 수준에서도 적극적인 모금활동이 있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세 번째로는 선수단의 규모와 참가 가능성은 오로지 재정규모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비용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었기에 재정상태가 곧 선수단의 규모였다고 보면 될 것이었죠. 지금으로는 상상이 안 갑니다.
앞으로 어디서 또 다른 자료들이 드러나거나 찾아질지 모릅니다. 지금껏 올림픽의 역사를 얘기하면서 참가비용에 대해 꼼꼼히 정리된 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 이 글에 덧대어 조금 더 구체적인 비용 확보와 사용내역이 알려지기 바랍니다. 혹시 독자 여러분께서도 새로운 정보를 찾게 되시면 저에게도 공유바랍니다.
인용자료
(12-1) Christian Science Monitor, Korean marathoners leaving for Boston by plane Thursday. 1947. 4. 1.
(12-2) Daily Boston Globe, Korean Runners Arrive, Eager to Begin Training. 1947. 4. 9.
(12-3) 하지 장군이 아이젠하워에게 보내는 전신 (1948. 3. 8.). NARA, File Entry A1 1378 Box 90-Fund baseball. 워싱턴, 미국.
(12-4) 하지 장군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8. 5. 19.).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2-5) 동아일보. 제패를기필코저 본사주최사업기획, 제패후원회 본사는오만원 사원일만오천원제출. 1947. 4. 22.
(12-6) 조선일보. 올림픽후원회조직예정. 1947. 7. 5.
(12-7) 조선일보. 올림픽 파견비 2억원을 갹출. 1등에 2백만원 상금 붙는 후원권 발매. 1947. 12. 10.
(12-8) 조선일보. 올림픽선수비용 협조춘향전공연. 1948. 1. 14.
(12-9) 조선일보. 高大 올림픽 파견선수 후원회 발족. 1948. 3. 20.
(12-10) 조선일보. 올림픽후원권 추첨. 1948. 4. 16.
(12-11). 이학래, 한국현대체육사, 2008. p. 12.
(12-12) 미육군극동사령부가 미군정에 보내는 문서 (1948. 4. 21.) NARA, File Entry 79-4 Box 544_Kor team transport. 워싱턴, 미국.
(12-13) GARIOA : Government Aid and Relief in Occupied Areas (미군점령지역행정구호원조).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미국에 의한 점령 지역 구제 자금.
(12-14) 하지 장군이 보내는 문서 (1948. 6.) 국립중앙도서관, Adjutant General Files 353.8 Amusements and Athletics 1948 Folder 2 of 3.
(12-15) 신한민보. 마라톤 선수를 위한 의연, 메리다지방회의 성의. 1948. 7. 1.
(12-16) 동아일보. 재일동포의 지성, 오림픽선수단에 여비, 기념품증정. 1948. 7. 15.
(12-17) 조선일보. 올림픽후원회 결산 문제로 분규. 1949. 3. 13.
(12-18) New York Times. 8th Army aid offered to South Korean squad. 1952. 2. 24.
(12-19) Chicago Daily Tribune. UN troops asked to pay Korea's way to Olympics. 1952. 2. 24.
(12-20) 이상백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52. 3. 29.) Brundage Collection, Lee, Dr. Sang Beck 1946-1966,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2-21) Chicago Daily Tribune. Help Olympic team.
(12-22) 국가기록원. 올림픽후원회기부금모집상황에관한건, 내무부. 국무총리비서실. 자료번호 BA0135214, 1953.
(12-23) South China Morning Post. Korean team for winter Olyumpics. 1955. 12. 21.
(12-24) 국가기록원. H. E. Renfro가 한국 올림픽팀의 모든친구들에게 보낸 서신 [9.29. 반도호텔, 한국 올림픽팀 환영 리셉션]. 미국국립기록관리청. 자료번호 CTA0001233. 1956.
(12-25) 국가기록원. W. E. Warne이 Barradas에게 보낸 서신 [한국 올림픽팀을 위한 기금 모금]. 미국국립기록관리청. 자료번호 CTA0002344. 1956.
(12-26) 국가기록원. W. E. Warne이 C. Barradas에게 보낸 서신 [한국 올림픽팀을 위한 기부금] 미국국립기록관리청. 자료번호 CTA0002344. 1956.
(사진 12-1) 1947년 6월 17일. 연례 보스톤 마라톤 대회를 위해 여행 중인 세 명의 한국 마라톤 선수가 일본에 들렀을 때 일본 언론과 인터뷰한 중간 장면. 왼쪽부터 손기정, 2시간 59분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서윤복, 남승룡. NARA still picture archive, RG111-SC-Box 558 286689. 워싱턴, 미국.
[사진설명]
런던올림픽 후원권
제14회 런던올림픽에 파견할 대표단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올림픽후원회가 1947년 12월 1일에 발행한 복권형 후원권. 사진은 140만매 중 '가乙 NO.000001'호. 사진은 전명이며, 전면에는 올림픽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인 전경무(1900~1947)의 사진과 액면가(백원) 등이 인쇄되어 있다. 후면에는 후원권 발행의 목적, 액면가, 발행수량 및 발매처 등 각종의 사무사항이 적혀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복권으로 가치가 있다. 등록문화재 제490호. 한국체육박물관 소장, 대한체육회 소유 및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