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장군은 안정적 스포츠 지원 기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해방이 일본으로부터의 주권 회복만의 의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더 이상 속박되지 않을 것이란 심리적 해방까지 가능했겠죠. 스포츠도 똑같았을 것입니다. 일상에서의 스포츠는 물론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당당히 국제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는 자신과 기대가 충만했겠죠.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공이 있어야 축구라도 하고, 경비가 있어야 대회도 나갈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 장군은 한국인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를 진작시킬 권한과 책임도 있었고 스포츠를 통한 한미간의 관계 형성이 매우 중요함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지 장군에게도 재정 확보는 문제였습니다. 남한에 주둔한 미군에게 스포츠 지원을 위한 재정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하지 장군은 민간기금을 조성하기로 결정합니다. 오늘 글은 하지 장군의 노력과 민간기금 형성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지 장군은 알게 모르게 한국 국민의 스포츠 활동 지원에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1947년 서윤복의 보스턴 마라톤이나 1948년 런던올림픽에 참가하기까지 하지 장군의 경비 조달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두 국제경기 참가와 관련한 우리의 역사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지 장군이 처음부터 편안하게 이 일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 장군도 재정 확보가 큰 걸림돌이었죠.
1948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브런디지는 한국 선수단 지원을 적극적으로 해 주길 바라는 편지를 하지 장군에게 보냅니다. 브런디지의 편지는 하지 장군의 소극적 자세에 대한 은근한 압박이었죠. 이 편지에 하지 장군은 불쾌했습니다. 마치 자신이 한국 스포츠 지원에 무관심하다는 것으로 브런디지가 착각하고 있어서였던 것이죠. 하지는 군인이었고 원칙적이었습니다. 하지는 브런디지에게 단호한 문장으로 답장합니다. 남한 주둔의 미군정이 한국의 스포츠 활동 개입과 지원은 규정적으로 불가하며, 지금까지 한국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민간 차원의 후원과 미군 병사들의 자발적 기부로 가능했었음을 명확히 설명합니다(11-1). 더 적극적으로 한국 선수들을 지원해달라던 브런디지의 요청이 무안할 정도였죠.
그렇다고 하지 장군이 나몰라하고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규정상 군정의 지원은 아니라도 다른 방식을 동원해 한국 선수들을 돕고자 했습니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위한 노력이 그 한 예입니다. 하지 장군이 미국 전쟁부(War Department)에 1947년 3월 8일에 보내는 재정지원 요청에서 그 노력이 나타납니다(11-2, 사진 11-1). 전신인데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보안사항, 긴급, 하지 장군을 위해 아이젠하워에게 전달 바람. 4월 19일 보스턴 마라톤에 한국 대표가 참가할 수 있도록 전쟁부 자금 긴급요청. 다음의 4명이 참가함. 손기정, 1936년 올림픽 우승자, 서윤복, 또 다른 선수, 트레이너 한 명, 감독 한 명. 마라톤 참가는 양국에 상당한 대민홍보 도구로 사용될 것이며, 양국 관계 및 친선에 도움됨. 예상 재정은 항공료 및 6주에서 2달 동안 미국 채류비 8,000 달러임. 전쟁부의 재정이 여의치 않다면, 복지나 스포츠기관의 지원 프로젝트로부터 요청을 부탁함. 항공 이동이 우선 선호이며 시간 제약으로 인해 빠른 답신 바람.’
대회가 미처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조금 뒷북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전쟁부의 지원이 여의치 않다면 다른 기관을 통해서라도 선수단의 지원을 요청해달라고 하니 분명 요식적인 행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보다 적극적인 입장으로 해석되죠.
불행하게도 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전쟁부로부터 회신은 재정적 여유가 없으며 요청한 지원이 우선적으로 선호되지 않는다는 짧은 답신이었습니다(11-3). 하지 장군의 생각은 조금 복잡했겠죠. 결국 여차저차 하지 장군은 다른 방법으로 보스턴 마라톤 선수단을 도운 것으로 보입니다. 설상가상 서윤복 선수는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합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하지 장군은 한국 선수단을 위해 보다 안정적인 재정적 지원 방식을 고심했을 것입니다.
미군정 사령부의 1947년 6월 4일 협조 문서를 살펴보겠습니다(11-4). 보스턴 마라톤 우승 후 바로 이어진 시기입니다. 하지 장군의 명령서이며 ‘한국 선수, 여가, 복지 활동 지원 (Sponsorship of Korean Athletic, Recreational and Welfare Activities)’이란 제목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서윤복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으로 더욱 고무된 한국 국민의 스포츠로 향한 분위기를 다방면으로 지원할 충분한 재정적 기반이 없음을 주지 시키며, 앞으로 있을 1948년 런던올림픽 참가를 안정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음을 설명합니다. 또한 한국 선수들의 보스턴 마라톤 참가는 미국인들의 자발적인 기부로 가능했음도 적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국민의 스포츠, 음악, 오락, 야외활동 등에 후원이 필요하며, 특히 한국 내에서 조달 불가능한 필수적인 품목들의 수입에 필요한 재정을 조달하기 위해 ‘비충당기금 (non-appropriated funds)’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국제경기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들의 경비를 제공하기 위해 미국인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을 수령하고 관리하기 위해 ‘중앙한국복지기금’이 설치했음을 알립니다. 한마디로 기부금이 한국 스포츠인을 지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앞으로도 지원할 부분이 상당하며, 후원금 관리 기구가 설치되었으니 많은 관심과 후원 바란 다는 말로 함축될 수 있겠죠.
하지 장군은 한국 국민의 스포츠 활동 증진과 한국 선수들의 국제대회 참가 지원이 필요할 때마다 국방부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원천적으로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스턴 마라톤에서 주한미군과 미국인들로부터의 도움처럼 아예 안정적인 기금 확보의 구조를 구상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 기금은 다양한 생활스포츠 지원에 활용되었습니다.
1948년 5월 즈음, 미군 기록사진들은 중앙한국복지기금을 이용하여 구입한 다양한 운동용구를 학교 및 단체에 기증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덕수공립상업학교나 인천선수협회 또는 보이스카웃, 인천고등학교, 부평시 초등학교 등에 운동 용품을 증정하는 사진들이 남아 있네요(사진 11-2, 11-3, 11-4, 11-5).
미군정은 공식적으로 한국 스포츠 선수단의 국제대회 참가를 지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지 장군은 한국 국민의 열망과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한국 선수들의 수준급 기량을 무시할 수 없었으며, 이를 지원하는 것 또한 군정의 중요한 활동으로 평가했습니다. 하지 장군은 국제 스포츠는 물론 국내 스포츠 활동 증진도 관심을 두었습니다. 재정이 취약한 상태에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민간후원과 기금 마련이었습니다. 해방 후 군정시기에 하지 장군의 적극적 도움과 결심이 없었다면 아마도 한국 선수들의 국제대회 참가는 여전히 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인용자료
(11-1) 하지가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8년 5월 19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1-2) 하지가 아이젠하워에게 보내는 전신 (1948년 3월 8일). NARA, File Entry A1 1378 Box 90-Fund baseball. 워싱턴, 미국.
(11-3) 미 전쟁부가 주한미군에 보내는 전신 (1948년 3월 경). NARA, File Entry A1 1378 Box 90-Fund baseball. 워싱턴, 미국.
(11-4) 미군정 사령부 명령서 (1947년 6월 4일). NARA, File Entry A1 1378 Box 90-Fund baseball. 워싱턴, 미국.
(사진 11-1) 하지가 아이젠하워에게 보내는 전신 (1948년 3월 8일). NARA, File Entry A1 1378 Box 90-Fund baseball. 워싱턴, 미국.
(사진 11-2) 1948. 5. 1. NARA, still picture, RG111-SC-Box 607, SC 300510. 워싱턴, 미국. 사진설명 : 한국 주둔 미군 존 하지 중장 (가운데)이 한국에서 미국의 후원으로 구입한 일련의 운동 장비 앞에서, 24단 사령부의 특별 서비스관들과 서있다. 놓인 용품들은 배구공, 야구공, 축구 및 야구용품들이다. 용품들은 1948년 5월 1일. 1948년 6월 11일 배포됨.
(사진 11-3) 1948. 5. 6. NARA, still picture, RG111-SC-Box 607, SC 300511. 워싱턴, 미국. 사진설명 : 운동용구 증정식, 1948년 5월 6일. 서울, 미네소타 로체스터의 군목 (대위) 폴 루덴 (왼쪽)이 미군들로부터 기증된 운동용구를 덕수공립상업학교의 교장인 정욱에게 증정하고 있다.
(사진 11-4) 1948. 5. 4. NARA, still picture, RG111-SC-Box 607, SC 300513. 워싱턴, 미국. 사진설명 : 운동용품 증정식, 1948년 5월 4일. 로버트 쇼 준장이 인천선수협회 데이비드 안 박사와 보이스카웃협회에게 중앙한국복지기금으로 구입한 운동용구를 증정하고 있다. (좌에서 우)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힐러 중사, 인천고등학교 대표 길영희, 데이비드 안 박사, 조춘옥, 부평동 초등학교, 로버트 쇼 준장, 한규희 부평시 초등학교, 존 버포드
(사진 11-5) 1948. 5. 6. NARA, still picture, RG111-SC-Box 607, SC 300514. 워싱턴, 미국. 사진설명 : 운동용품 증정식, 1948년 5월 6일. 미쓰비시 마을, 텍사스주 코르시카나의 블레이크 화이트 중위가 운동용품을 증정하고 있다.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들의 기부로 미국에서 구입한 장비를 서현동 미쓰비시 마을 관리자에게 주고 있다.
사진설명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Dwight D. Eisenhower), 출처 :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