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올림픽선수단
모두가 우수한 것은 아닙니다

런던올림픽선수단 경비 지원 요청에 대한 하지 장군의 일갈

by 이대택

우리 올림픽 역사와 관련한 이야기 중에는 이상백 박사의 활약이 종종 소개됩니다. 특히 1948년 런던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죠. 대한올림픽위원회는 70명에 달하는 선수단을 파견하고자 했고, 미군정은 재정적 이유로 선수단 규모를 대폭 줄일 것을 요청합니다. 이에 이상백 박사는 브런디지에게 편지해 맥아더 장군에게 요청하여 군정청장인 하지 장군을 움직이게 해 결국 애초 요청했던 선수단 규모를 유지했다는 것입니다(10-1).


그런데 이 이야기를 조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지 장군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니까요. 미군정에서 선수단 규모를 줄이라는 요청은 분명 그 이유가 있었을 테죠. 자 하지 장군의 입장을 들어봅시다.


이상백의 손 글씨 편지


런던올림픽을 얼마 앞두지 않은 1948년 3월 17일 이상백은 브런디지에게 편지합니다. 급한 듯 손 글씨로 작성한 4쪽 분량의 편지였습니다(10-2). 이상백은 이 편지가 비공식적 편지임을 밝히면서 런던올림픽에 참가할 한국 선수단과 대한올림픽위원회의 재정적 어려움, 한국에서 미국 화폐 취득의 어려움과 한국 화폐와의 환율 미조정, 미군정의 도움으로 10만 불의 지원을 기대하나 이는 선수단 전체 비용의 반에 불과하며 이 또한 희망적이지 않다는 점 등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브런디지에게 부탁하기를 맥아더 장군에게 부탁해서 하지 장군으로 하여금 대한올림픽위원회와 협의할 수 있도록 요청합니다.


이 편지를 받고 브런디지는 5월 4일 이상백에게 답신합니다(10-3). 브런디지의 짧은 답신은 편지 잘 받았으며, 맥아더에게 보낸 편지를 동봉한다고 적었습니다. 동봉된 맥아더 장군에게 보낸 브런디지의 5월 4일 자 편지는 런던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한 한국 선수단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들의 경기력이 우수하며 그 결과가 미국의 관점에서도 이로울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10-4, 사진 10-1). 그리고 맥아더 장군에게 보내는 해당 편지를 하지 장군에게도 보내겠다고 적었습니다. 한마디로 맥아더 장군에게 하지 장군을 통해 대한올림픽위원회를 도와달라고 적었던 것이죠.



KOC-01_페이지_149.jpg [사진 10-1] 브런디지가 맥아더 장군에게 보낸 편지 (1948년 5월 4일)



브런디지 씨 당신이 잘 못 알고 계십니다!


브런디지의 5월 4일 편지를 받고 하지 장군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게다가 자신의 상관인 맥아더에게 브런디지가 일러바친 꼴이니 말이죠. 웬만해서는 장문의 편지를 쓰지 않는 미국인들인데, 특히 군정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구구절절 장문의 편지는 어울리지 않음에도, 5월 19일 하지 장군은 브런디지에게 2쪽 분량의 섭섭하고 불쾌한 투의 편지를 보냅니다(10-5, 사진 10-2).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당신의 편지는 몇 가지 몰이해가 있음. 먼저, 맥아더 장군의 한국과의 연계는 오로지 군사적 명령권이며, 한국 내무와는 무관함. 둘째, 한국 주둔군이 한국 선수단의 올림픽 참가에 무심한 것으로 가정하고 있음.

1947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부터 한국 선수의 국제경기 참가는 주둔군의 기부금으로 지원되어 가능했음. 지난 1년 넘게 우리는 대한올림픽위원회와 작업해왔고 63명의 선수를 보내기로 함. 국내적으로 모든 종목에서 한미간의 경기가 진행되었고 수천 달러의 기부금으로 한국 스포츠를 진작시켰음.

당신의 잘못된 정보는 아마도 누군가 유명인사로부터의 편지를 받음으로써 정치적 권위를 부여받고 명성을 얻고자 하는 이기적인 한국인들로부터 얻은 것일 것임. 그러한 인사들에 의해 지난 시간 혼란이 있었음. 현재의 63명 선수단은 국제적 경쟁력이 전혀 없음. 다만 그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권리로 국제경기에 출전하는 것이 영광일 것이며, 몇 선수들은 잘할 것임.

연관하여 미국의 재정적 지원은 국제경기 참가비용의 용도로 사용될 수 없으며, 이는 오로지 개인적 기부와 군정의 경제지원 차원에서만 가능함. 우리의 관심이 부족한 것이 아니며 우리의 한계임.’


이 편지를 받은 브런디지는 6월 1일 하지 장군에게 편지합니다(10-6). 편지에서 브런디지는 하지의 편지가 시야를 밝혀준 편지이며 하지 장군의 설명이 정확함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아마추어 스포츠 지원에 감사를 표합니다. 브런디지의 입장에서는 하지 장군에게 한 방 먹은 경우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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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C-01_페이지_148.jpg [사진 10-2] 하지 장군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8년 5월 19일, 2쪽 분량)



하지 장군의 설명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하지 장군은 한국에서의 미군정이 지원할 수 있는 재정은 오로지 규정에 근거하며, 올림픽 선수단 파견 지원은 명목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아마추어 스포츠와 국제경기 참가를 매우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이 모든 것은 병사들의 기부금에 의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몇몇 한국 인사의 편지로 미군정의 관심과 지원이 마치 비협조적인 것으로 비추어지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하지 장군의 편지에서 흥미로운 문구가 발견됩니다(10-5).


“The current sixty—three man Korean team carries many “dead—heads” who will have no chance in world competition,...”


직역하자면 ‘현재의 63명의 한국팀은 국제 경쟁력이 전혀 없는 ‘무임승차’를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비합리적으로 과잉의 선수단이 꾸려진 것으로 봤던 것입니다. 런던올림픽에 참가하려고 종목 간, 종목 내에서의 서로 격하게 싸운 얘기들은 유명하죠(10-7).


브런디지가 보낸 편지에 대해 맥아더 장군이 어떠한 반응이나 지시를 내렸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맥아더 장군이 브런디지나 하지 장군에게 보낸 편지나 교신을 아직 저는 보지 못했으니까요. 여하튼 결과적으로 1948년 한국의 런던올림픽선수단은 원하는 정도의 선수단을 모두 이끌고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인용자료


(10-1) 점프볼, 2012. 7월호, pp. 40-41.


(10-2) 이상백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8년 3월 17일). Brundage Collection, Lee, Dr. Sang Beck 1946-1966,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0-3) 브런디지가 이상백에게 보낸 편지 (1948년 5월 4일). Brundage Collection, Lee, Dr. Sang Beck 1946-1966,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0-4) 브런디지가 맥아더에게 보낸 편지 (1948년 5월 4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0-5) 하지가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8년 5월 19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0-6) 브런디지가 하지에게 보낸 편지 (1948년 6월 1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0-7) 대한체육회 90년사, 대한체육회 2010.


(사진 10-1) 브런디지가 맥아더 장군에게 보낸 편지 (1948년 5월 4일), Brundage Collection, Lee, Dr. Sang Beck 1946-1966,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사진 10-2) 하지 장군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8년 5월 19일), Brundage Collection, Lee, Dr. Sang Beck 1946-1966,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사진 설명


맥아더 장군 (General MacArthur), 출처,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