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대택 Aug 07. 2020

025 남한의 단일팀 대응을
심각히 우려한 미국대사관

미국은 단일팀 논의를 지연시키기를 조언합니다! (62.6-12)


1961년 5·16 군사반란부터 약 1년간, 62년 8월까지, KOC와 IOC 사이에 벌어진 남북단일팀 구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잠시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IOC 문 : 1961년 6월에 열릴 아테네 IOC 총회까지 남한의 입장을 알려주세요.

KOC 답 : 1961년 5·16 이후 정국이 불안정하니 입장 정리할 시간을 조금 더 주세요.

IOC 답 : 아테네 총회에서 62년 6월 모스크바 IOC 총회까지 시간을 더 드리기로 했습니다. 

IOC 문 : 해가 바뀌어 1963년입니다. 5월까지 남한 입장을 알려주세요. 

KOC 답 : 정국이 여전히 불안하고 KOC 임원도 새로 구성해야 하니 8월 초까지 조금만 더...

IOC 답 : 1962년 9월 1일까지 최종 입장을 주시길, 모스크바 총회에서 의결되었음을 알립니다. 그때까지 결정을 주지 않으시면 북한은 남한과 따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됩니다. 

KOC :?... 에쿠!


박정희 정권은 이주일 KOC 위원장의 이름으로 1962년 8월 14일 자로 IOC에 남북단일팀 구성에 동의한다고 공식 통보를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스포츠 외교사에서 1962년 8월 14일과, 9월 1일은 매우 중요한 날짜입니다. 후자는 IOC가 남북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지루하게 끌어오던 것에 종지부를 찍는, 말하자면 KOC에 대한 최후통첩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자는 남북단일팀 구성에 KOC가 동의한다는 공식적인 날짜로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잠시 시간을 돌리자면, 주한 미국 대사관 1등 서기관 플랙 Mr. Fleck은 최운상 당시 외무부 방교국장에게 이 사안과 관련하여 IOC에 답신하는 방법과 9월 1일 이전에 정중히 답신할 것을 조언하기도 했었죠 (25-1). 


그렇다면 주한 미 대사관 1등 서기관은 무슨 근거와 목적으로 이런 조언을 했을까요? 모스크바 IOC 총회 결정을 접수한 미 대사관은 단일팀 구성이 단지 IOC와 올림픽의 문제가 아닌 확장된 국제 외교와 연계되어 있음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를 통해 KOC의 대응전략에 개입할 필요가 있음을 판단했겠죠. 


주한 미국 대사관 플랙 1등 서기관이 최운상을 만난 것이 62년 7월 11일이니, 이 만남이 있기 전에 플랙 1등 서기관이 어떠한 지침을 따랐는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소개할 미국의 자료는 미 국무부 외교문서인데, 현재까지 IOC 한국문제와 관련하여 찾아볼 수 있는 최초의 미 국무부의 자료일 듯합니다. 이제는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일단 시계 순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모스크바 총회의 결정을 본 미국의 판단과 개입



1962년 6월 8일, 주한 미국대사 버거 Samuel David Berger (1961.6-1964.10)는 워싱턴 국무부에 전신합니다 (25-2). 전신은 최근 IOC의 남북단일팀 구성 압박 보도에 따른 남한 정부 측의 부정적 입장, 6월 7일 대사관 직원과 외무부 최운상과의 현안 논의, 최운상은 언론보도로 IOC 결정을 알았다는 것, 최운상은 북한 선수들이 개별적으로 선발전을 통해 남한 국기와 국가 아래 출전함을 용인하자는 여론에 따를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것, 이 내용이 국가재건최고회의에도 간략히 보고되었다는 것을 적고 있습니다. 버거는 전신의 마지막에 자신의 의견을 다는데, 최운상이 모스크바 결정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으로 보이며, 남한은 IOC 대응에 충분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남한의 대응에 대한 국무부의 의견을 요청했습니다. 


1962년 6월 19일, 버거 대사는 워싱턴 국무부에 전신을 보냅니다 (25-3). 전신에서 대사관과 남한 정부는 남북이 동등한 위치와 입장에서 한국문제를 협상해서는 안 될 것을 믿으며, 북한 선수의 개별적 참가만을 허용할 것이라 적고 있습니다. 선수 선발을 위한 중립지로 일본이 거론되고 있지만, 남한 정부는 일본을 꺼리고 있다고 적습니다. 또한 국외에서 선발전을 열거나 또는 선수단이 올림픽 유니폼을 입고 올림픽 깃발을 들고 애국가를 부르지 못한다면 이를 거부할 것이라고도 적습니다. 대사관은 현시점에서 남북 문화교류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독일의 모델은 한국에 적용하기 어려우며, 일단 미국은 한국 정부가 아닌 IOC를 공략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1962년 7월 2일, 버거 대사는 워싱턴 국무부에 전신합니다 (25-4). 외무부 방교국장 최운상은 IOC가 9월 1일까지 답신을 요구했으며, 오늘 정부의 사전회의가 있을 것인데 미국의 의견을 듣기를 요청했으니 급히 답을 바란다고 적고 있습니다. 


1962년 7월 6일, 맥도날드 Donald S. Macdonald가 예거 Mr. Joseph A. Yager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25-5). 맥도날드는 1962년 8월까지 미국무부 극동업무국 Bureau of Far Eastern Affairs 한국업무 담당자 Officer in Charge of Korean Affairs 였으며, 예거는 당시 동아국장 Director of the Office of East Asian Affairs (1961.12-1963.8) 이었습니다. 편지는 IOC가 최근 모스크바 총회에서 1964년 올림픽 남북단일팀을 구성할 것을 KOC에게 최후통첩 ultimatum 했다는 것, 남한은 북한 선수의 개별 선발전 참여와 남한 문양으로 출전할 것을 제안했으며 이는 IOC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주한 미국 대사관은 남과 북의 각기 정권이 동등한 위상이 아니기에 남북의 직접 교류는 반대하는 정책을 지속한다는 것, 남한이 IOC에 9월 1일까지 답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모스크바 대사관의 정보원인 IOC의 로비 Roby (주, 로비는 당시 미국 IOC 위원임)에게 전화하여 설득하고 남한의 제안을 승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사진 25-1] 덕 로비 Doug Roby, 미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 1965-1968,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1952-1984.




1962년 7월 9일. 버거 대사는 다시 미국 국무부에 급히 전신합니다 (25-6). 전신은 남북단일팀 구성에 대한 미국의 견해를 남한 정부가 요청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7월 11일 플랙 1등 서기관이 최운상을 만났던 것입니다. 


미국의 판단은 그랬습니다. IOC가 한국문제 해결을 위해 최종으로 KOC에 알렸으며, 이는 북한의 국제 스포츠 참여를 넘어 북한의 국제무대 진출이라는 의미였고, 남한은 이 사안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며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북한과의 문화적 교류는 미국 대사관의 정책에 위반되며 국제무대에서 북한과 동등한 위상에서의 협상은 허용되면 안 될 것이기에. 최대한 IOC에는 정중히 대응하면서도 북한이 수용할 수 없을 조건을 거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동시에 IOC에 대한 미국 측의 로비가 필요함도 인식했던 것이죠. 


1962년 7월 13일, 주한 미국 대사관의 필립 하비브 Philip C. Habib 참사관 Counselor은 미국 국무장관에게 전신합니다 (25-7). 7월 11일 최운상과 만나 논의한 내용을 보고하는 것이었죠 (25-1). 전신은 미국 대사관이 한국 외무부 방교국장 최운상과 KOC 대표 월터정에게 국무부의 의사를 전달했으며, 최는 전반적으로 동의했으나 중립지역에서의 선수 선발은 생각하고 있지 않았음을 적고 있습니다. 단일팀 관련한 입장으로는, 최와 정은 유화적이면서도 확고하게 KOC가 한국 유일의 대표 자격이 있으며, 단일팀 구성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설명하고 국가나 국기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은 피하겠노라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최는 미 국무부의 상담에 감사했으며, 지속적인 조언을 요청했고, 이를 비밀로 할 것을 약속했다고 적습니다. 




[사진 25-2] 필립 하비브 Philip C. Habib. 1962년 당시 주한 미 대사관의 참사관 Counselor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미국 대사관의 하비브 참사관은 정치담당 외교관입니다. 후에 주한 미국대사를 맡기도 했고, 미국에서 꽤 이름 있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한국도 외무부가 이 업무를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미 대사관은 외무부를 통해 KOC를 조정했던 것이죠. 한국문제는 그래서 정치문제인 동시에 외교문제로 다루어지게 됩니다. 



IOC의 단일팀 구성 압박에 지연책을 쓰라는 미국 



1962년 9월 28일, 하비브 참사관이 미국 국무장관에게 보내는 전신입니다 (25-8). 전신은 한국 외무부의 국제기구과 International Organization section 지과장이 9월 17일 자 IOC 서신을 대사관으로 가져왔으며, 남북이 조속히 만나기를 바라는 내용임을 적고 있습니다. 지과장은 IOC에게 어떠한 식으로 거절해야 할지 걱정이며, 이 서신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다고 적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의견을 요청했으니, 국무부의 제안을 바란다고 적습니다. 


미국의 제안은 아마도 1962년 10월 11일, IOC의 9월 17일 자 편지 답신으로, KOC 이주일 위원장이 오토 마이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실히 드러나 보입니다 (25-9). 


‘단일팀 구성에 노력해주어 감사드림. 북과의 직접 교섭과 관련하여, 당신이 8월 21일 편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IOC 사무국을 통하는 수밖에 없을 것임. 여기서는 편지 교환을 포함해 민간차원의 직접적 교섭은 어려움. 우리는 이미 선발위원회를 구성하여 진행하고 있으며, 따라서 당신이 북한의 헌장과 북한에서 제시하는 위원의 이력을 보내주면 감사하겠음.’


이주일의 편지는 직접적으로는 업무 진행을 위한 협조 요청으로 보이지만, 오토 마이어의 입장에서는 KOC가 단일팀에 대한 굳은 의지가 없음을 알게 해 주고 편지입니다. 북한과 IOC 입장에서 보자면 이 편지의 내용은 일의 진행이 매우 느리고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KOC의 지연 전술이었던 것입니다. 


이주일의 편지 다음 날인 1962년 10월 12일, 하비브 참사관은 미국 국무장관에게 전신합니다 (25-10). 전신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종 편지를 쓰기 전에 외무부 국제기구과 지과장은 대사관에 IOC 제안에 대한 가능한 입장을 물어왔음. 대사관은 이 대목에서 더 주요한 문제인 UN에서의 Korean question 논쟁과 일정 부분 결부되어 있음을 지적했음. 올림픽 이슈에서 북한과의 어떠한 의도 표시는 UN에서 한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할 것이라 했음. 역으로, 전통적인 UN에서의 입장 승리는 단일팀 구성에서도 한국 정부를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음. 대사관은 현재로써 IOC에 답신을 지연시키는 것이 최선의 전술임을 제안했음. KOC가 원칙적으로 단일팀 구성에 찬성하였으니, 비상식적이지 않은 지연이 부정적 결정을 이끌지 않을 것이라고도 지적했음. 또한 US IOC 위원인 로비 Doug Roby 가 지연책을 쓰는 것에 동의함도 말했음. 대사관은 지연이 부담스러우면 간단히 예의 바른 편지를 보내 북한의 정치성을 부각하는 것을 제안함. 지과장은 개인적으로 지연에 동의하지만, 국가재건최고회의의 높은 관료는 KOC가 가능한 빠르게 IOC에 협조적이어야 함을 말했다 함. 이는 제네바에서 한국 대표를 만난 오토 마이어가 ‘ridiculous (우습네요!)'라고 표현했다는 이유였다 함.’



남한 정부와 KOC가 미덥지 못했던 미국



1962년 11월 13일, 주한 미국 대사관의 하비브 참사관은 미국 국무장관에게 전신합니다 (25-11). 이 전신은 오토 마이어가 KOC에 보낸 10월 22일과 11월 5일의 편지를 첨부하고 있습니다. 오토 마이어의 편지는 KOC가 북한과의 직접 소통을 회피하면서 IOC 사무국을 중간 통로로 이용하는 것과, 이 방식이 전혀 효과적이지 않으며, 시간이 많지 않은 관계로 남북단일팀의 구성의 효과적 협의를 위해 상호 직접 만나야 함을 다급하게 적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토 마이어의 편지에 한국 정부는 상황을 인지하고 월터정을 미국에 보내 브런디지와 로비를 만나 상의하는 동시에, 스위스로 가서 오토 마이어를 만날 것이며, 출국하기 전 다음 주쯤 대사관 직원을 만날 것이라 전신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사관은 다음과 같이 국무성에 의견을 개진합니다. 


‘국무성이 남북단일팀 이슈와 관련하여 필요한 조치가 필요함. 대사관은 다음의 해결책을 제안함. 먼저, 오토 마이어가 단일팀 구성을 압박함으로, 그의 IOC 내 영향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함. 한국 위원에 의하면 오토 마이어는 거의 단독으로 북한을 독립 참가국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감안하고 있음. 그렇다면, 미국의 IOC 위원들과 남한 위원들을 최대한 동원해 북한의 로비에 대응해야 함. 북한의 전보가 동봉되어 남한에 전달된 것을 보면, 그들의 로비는 아주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보임. 특히 직접 상호 교섭하라는 대목을 보면 더욱 그러함. 오토 마이어를 제외하고도 대사관은 IOC 집행위에서의 KOC에 대한 총체적 지원 노력이 있어야 함을 느끼고 있음. 이 행동은 바로 진행되어야 함.’


이 자료는, 하비브 참사관이 한국 정부와 KOC만으로는 미국이 평가하고 기대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미국의 지원과 로비를 동원해야 함을 제시한 것이겠죠. 


1962년 11월 16일, 하비브 참사관은 미국 국무부로 전신합니다 (25-12). 전신은 11월 17일 미국으로 떠나는 월터정의 일정과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리스트와 함께 월터정의 이번 여행의 목적을 적고 있습니다. 대사관은 가능하다면 월터정이 워싱턴에 11월 23일 도착하면 국무부 한국담당관을 만나라고 했음을 적고 있습니다. 


1962년 12월 12일, 하비브 참사관은 미국 국무장관에게 전신합니다 (25-13). 전신은 최운상 외무부 방교국장과의 대화를 적고 있습니다. 이 전신은, IOC가 내년 1월 21-25일 사이에 로젠에서 남북이 회동을 갖는 것을 제안했고, KOC는 12월 15일에 오토 마이어에게 서한을 보낼 것이며, KOC는 UN에서 한국문제가 남한에 유리하게 해결될 것을 기대하면서, 그 편지가 로젠에 도착하기 전에 해결이 날 것을 기대함으로써 자신들의 위치가 강화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전신은, 최운상이 KOC와 북한과의 만남이 필수적이라 믿고 있으며, 독일의 사례가 북한과의 교섭 방식일 것이라 했으며, 만약 북한이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 IOC로부터 쉽게 방어할 수 있고, 북한의 1964년 올림픽 참가를 떨칠 수 있다고 함을 적고 있습니다. 


아마도 하비브 참사관은 KOC가 단일팀 협상을 매우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으로 인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사관은 이를 정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죠. 


1962년 12월 31일, 하비브 참사관은 미국 국무부로 전신합니다 (25-14). 전신은 1월 24일 개최하려는 로젠 남북회담을 알리는 IOC로부터 온 2 통의 편지를 첨부하고 있습니다. 전신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12월 27일 한국 외무부가 대사관에 알려온 바에 의하면, 대표단은 이 회담의 결론을 아직 내리지 않은 상태임. 대신 대표단을 일찍 보내 현지에서 회담을 적정히 준비하려고 한다 함. 평양 라디오에 의하면 ‘정부 요청’에 의해 KOC의 결정이 남한의 언론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되고 있음. 그러나 남한 언론의 향방을 핸들링하기 위한 브리핑이 조만간 있을 것이라 함. 외무부는 이번 회담으로 북한이 1964년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지만, 이러한 결과가 나올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의심됨.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아주 중요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남한과의 직접 접촉-하였으며, 이는 비용도 들지 않았고 1964년 게임에 독립적으로 참가하는 것의 가능성을 심각하게 포기하지도 않은 상태임.‘


이 전신을 보자면, 미국 대사관은 단일팀 구성 협의와 관련한 상황 전개가 북한에 이롭게 흘러가는 것을 이미 간파했고, 미국은 이를 우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용 자료



(25-1) 국립외교원. [L-0002-04/1262/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 단일팀 구성 문제, 1962-63. 전 4권 (V.1 1962). pp. 3-45.


(25-2) 600.3 Amusement, Sports, 1962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35-37.


(25-3) 600.3 Amusement, Sports, 1962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33-34.


(25-4) 600.3 Amusement, Sports, 1962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 32. 


(25-5) Olympics, K-EDU 15-1 (기록물명), RG 59 General Record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56 – 1999 (문서군명), Bureau of Far Eastern Affairs - Central Files of the Office of East Asian Affairs, 1947-64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28-29. 


(25-6) 600.3 Amusement, Sports, 1962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 31. 


(25-7) 600.3 Amusement, Sports, 1962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29-30. 


(25-8) 600.3 Amusement, Sports, 1962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20-22. 


(25-9) 600.3 Amusement, Sports, 1962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 17. [IOC Olympic Studies Center의 Brundage Collection, KOC-01 파일은 이 편지가 1962년 10월 10일로 명기되어 있음]


(25-10) 600.3 Amusement, Sports, 1962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15-16. 


(25-11) 600.3 Amusement, Sports, 1962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10-14. 


(25-12) 600.3 Amusement, Sports, 1962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8-9. 


(25-13) 600.3 Amusement, Sports, 1962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5-6. 


(25-14) 600.3 Amusement, Sports, 1962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1-4. 



[사진 설명]


필립 하비브 Philip C. Habib. 1962년 당시 주한 미국 대사관의 참사관 Counselor. 

하비브 참사관은 남북단일팀 구성과 관련하여 미 국무부에 주기적인 보고서를 작성함.

제9대 주한 미국대사 1971-1974. 

미국 정치부 차관 Under Secretary of State for Political Affairs 1976-1978. 


매거진의 이전글 024 남북단일팀 구성에 동의하는 박정희 정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