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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 Y Jul 22. 2021

기타노 다케시의 <3-4x 10월>

  “아”.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이다. 난감하다. 기타노 다케시가 스스로 이 영화를 실패작이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꼽았다(<하나비>까지 찍고 난 다음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기타노 다케시의 방법론이 묻어있는 건 사실이다. 오래전에 본 <소나티네>나 <하나비>같은 영화들은 이미 잊혔기 때문에 거론하는 것이 무의미하지만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나 <기쿠지로의 여름>은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이 영화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를 낳은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 한다). 하지만 기타노 다케시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소나티네>와 묶어서 이야기한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오키나와가 배경이라는 사실.     


  <그 남자 흉폭하다>와 같은 방법으로 시작하겠다. 가장 이상한 장면은 무엇인가. 가장 이상하다고 말하기엔 조금은 맞지 않는 느낌이 있지만 누구라도 엔딩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상상이라고? 내 답은 “아니”다. 영화가 상상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을 지목해보면 단연 영화의 절반 지점에서 오키나와로 공간이 이동한 부분일 것이다. 우선 여기서 상상이라고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오키나와로 가는 연결 장면이 없다. 장면이 바뀌면 마사키는 오키나와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직전 장면에서 마사키의 동료 카즈오가 자신은 절대로 갈 수 없다고 말하면서 돈을 쥐여준다. 그런데 오키나와로 넘어간 장면에서 마사키가 같이 왔다. 세 번째는 오키나와에서의 장면들이 그 이전의 장면들과 묘하게 공명을 이룬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기타노 다케시는 인터뷰에서 이 모든 이야기가 공상이라는 질문에 단지 이 이야기를 자신이 화장실에서 생각한 이야기라는 답변을 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이야기가 공상이라는 질문에 대답을 회피한 것이다.      

  그런데 전반부를 현실, 후반부를 공상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에 품은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1. 마사키가 데이트 신청을 했을 때 사야카는 승낙한 것이 맞는가?

2. 두 번째 야구장 장면에서 마사키는 정말 홈런을 치는 것이 가능한가?

3. 오토바이를 구매한 남자는 두 번 등장한다. 이 인물의 기능은 무엇인가?

4. 왜 마사키와 사야카의 데이트는 항상 어긋나는가? 드라이브를 해야 하는데 차를 밀어주거나, 혹은 수족관에 가는 도중에 낚시를 하러 간다.

5. 이구치는 마사키를 도와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을까?

6. 왜 이구치는 칼을 맞고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가?     


  나는 전반부가 후반부랑 나눠지는 것처럼 전반부에서 산발적으로 마사키의 공상이 드러나는 것처럼 느꼈다. 예를 들면 초반부에서 마사키와 같이 야구를 하는 동료가 오토바이를 판매할 때 따라가서는 노란 머리의 청년과 마주한다. 하지만 그 청년은 오토바이를 몰다가 사고를 낸다. 이 장면이 사야카와 첫 데이트를 할 때 찝쩍거리던 양아치 집단과 묘하게 겹쳐지고, 이후에 노란 머리 청년은 마사키의 동료에게 박치기를 당해 다시 한번 코피를 흘린다. 이 인물의 기능은 아마도 지표로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마사키가 겪은 현실의 일이 변주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난 지금 이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고 느끼지만 계속 밀고 나가보고자 한다.      

  같은 방식으로, 첫 번째 야구 경기에서 마사키가 느꼈던 감정들이 두 번째 야구 경기에서 홈런을 치는 것으로 이어진다. 만년 대타에다가 실력도 형편없지만 연습을 하라는 말에 마사키는 계속해서 연습한다. 무엇보다 그 홈런을 치는 순간에 사야카가 지켜보고 있다. 이 우연의 일치와 극적인 상황은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것은 가능한가라고 질문하게 한다. 아마 보편적인 상업 영화였다면 이런 의심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여하간 이런 마사키의 공상에는 틈이 벌어진다. 드라이브를 가려고 했는데 차를 밀어준다던가, 수족관에 가기로 했는데 낚시로 가는 것처럼, 홈런을 치지만 아웃당한다. 환상은 항상 구멍이 뚫려있다. 

     

  이구치에 관한 질문들은 오키나와로 이어진다. 오키나와로 향하게 되면 우에하라와 타마키를 만난다. 기타노 다케시가 맡은 우에하라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이상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 인물은 묘하게 이구치와 겹친다. 야쿠자 출신이라는 것, 총을 구해서 쓸어버리거나 혹은 그럴 계획을 갖는 것, 그리고 난 무엇보다 이쿠치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쪽인데 우에하라도 죽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키나와라는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교묘하게 도시에서 벌어진 일들과 겹친다는 것이다. 우에하라에게서 가장 이상한 점 중 하나는 우에하라가 마사키의 동료에게 성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다케시는 이미 <그 남자 흉폭하다>에서 동성애적인 성향을 다룬 적이 있었고, 인터뷰에서 이에 대한 질문으로 그냥 넣은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추측만 할 뿐이다. 내 질문은 이것이다. 이구치는 왜 마사키를 도와준 것인가? 그는 야쿠자의 일원으로서 아마 그 세계의 규칙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구치는 마사키가 야구에 관심이 없는데도 계속해서 야구를 시키려고 한다. 그러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기타노 다케시는 이구치가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설정을 코믹한 요소로 넣은 것일까?      


  우에하라는 자신의 애인을 타마키와 성관계를 하게 한 뒤에 타마키의 위에 올라탄다. 내가 생각할 때 우에하라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타마키가 같이 등장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도시에서 마사키와 이구치의 관계 때문이다. 이구치가 마사키를 돕기 위해 수모를 당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돌이켜봤을 때 타마키가 우에하라를 도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에하라는 타마키에게 자기 대신에 손가락을 자르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로 자신의 여자친구와 잠자리를 제공한다. 이게 만약 마사키의 계산이라고 가정해보자. 마사키를 도와준 이구치에게 느끼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손가락으로 형상화되고, 그 손가락을 자르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며 그 명분으로 우에하라의 애인과 잠자리를 얻는 것이라면 어쩌면 마사키가 이구치의 애인을 탐냈던 것일까? 위험한 발상이다. 이런 도식적인 설명보다는 내 인상으로 미루어보아 우에하라의 애인은 사야카랑 더 닮아있다. 나이대도 그러하고 생김새도 그러하다. 아마 뒤죽박죽으로 섞여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더 밀고나가게 되면 어쩌면 마사키가 바란 것은 이구치일지도 모른다.      


  이후에 우에하라는 총을 판매하는 백인 남성을 죽이고, 같이 놀던 흑인 여성을 버린다. 인터뷰에서 오키나와라는 장소가 정치적인 담론을 피할 수 없는 장소라는 질문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는 않지만 아무 이유 없이 오키나와라는 장소를 선택하지는 않았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곳이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물놀이를 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분명하게 이 장면들에는 태도가 묻어있다. 이후에 우에하라는 복수를 하러 떠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플래시 포워드. 우에하라는 자신의 미래를 본다.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하고, 복수를 하고, 자신이 죽음을 당하는. 오키나와의 모든 이야기가 공상이라고 한다면 마사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우에하라가 자신의 결말을 알고 있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만약 우에하라와 공명하고 있는 것이 이구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사키가 생각할 때 우에하라처럼 이구치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장면을 보았을까? 여기서 방점은 이구치가 본 것이 아니라 마사키가 생각할 때이다. 만약 마사키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구치는 자신의 몸을 던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사키는 유조차를 타고 자폭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아닐까?      


  우에하라와 타마키가 죽는 장면을 마치 마사키가 보는 것처럼 편집을 했다. 우에하라가 이구치와 공명한다면 타마키는 마사키 자신과 공명한다. 즉, 우에하라가 자신의 죽음을 봤던 것처럼 어쩌면 이 장면은 마사키가 자신의 죽음을 본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도시로 돌아와서 유조차로 자폭할 때 마사키의 공상은 끝난다. 마사키의 옆에는 사야카가 타고 있다. 사야카는 왜 그 자리에 있는 것인가? 어쩌면 마사키는 우에하라보다 더 괴팍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니 우에하라를 상상해 낸 마사키는 분명 그보다 더한 사람일 것이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많지만 그중 이해하지 못하는 숏이 있다. 마사키가 사야카와 수족관에 가는 기차 장면 다음에 나오는 쇼트다. 마사키의 동료는 야채 가게 같은 곳에서 직원 차림으로 멍하니 밖을 본다. 그런데 후반부에서 그 동료의 아버지처럼 보이는 사람은 오토바이 가게를 한다. 오토바이 판매는 다른 동료의 직업이었다. 이상하지만 설명 불가능하다. 이 동료는 마사키를 혼냈던 동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마사키는 대타 인생에서 유조차로 홈런을 친다. 그 장면을 동료가 지켜본다. 이것이 마사키가 홈런을 치는 방식이다. 우에하라가 자신의 애인에게 아이스크림을 주지 않지만 마사키는 동료에게 아이스크림을 받는다. 이 장면 또한 마사키의 공상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공상에서만큼은 대타로 있는 것이 부끄러웠을 지도 모른다. 기타노 다케시가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가 만든 두 번째 영화는 꽤나 야심을 품고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꽤나 숙달된 채로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서 보인다. 난 <소나티네>보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가 이 영화와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2021년 0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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