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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 Y Aug 10. 2021

기타노 다케시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기타노 다케시의 세 번째 영화에서 가장 처음 눈에 띄는 것은 첫 쇼트다. <그 남자 흉폭하다>와 <3-4x 10월>은 인물의 얼굴로 시작한다. 얼굴이라는 것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사람의 얼굴을 보고 느끼는 것을 가리는 것처럼 무표정의 얼굴을 담았다는 것이 중요한 요점일 것이다. 무표정한 사람의 얼굴은 다음 쇼트에서 혹은 어떤 경우라면 지속되는 쇼트에서 들어오는 또 다른 물성으로 의미를 얻게 된다. 쉽게 말해서 몽타주 된다. 그런데 세 번째 영화에서는 얼굴 대신 바다가 보인다. 그런 다음 청소부 시게루와 그의 상사가 쓰레기차 안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 투쇼트가 나오고, 그다음은 시게루의 단독 쇼트가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첫 쇼트의 시선이 누구의 시선인지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두 사람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두 사람의 시점 쇼트라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첫 쇼트는 오로지 시게루의 시점 쇼트다. 두 번째 쇼트는 기타노 다케시가 첫 번째 쇼트의 주인을 묻는 쇼트다. 어쩌면 이 방식이 기타노 다케시의 서스펜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세 번째 쇼트는 시게루의 단독 쇼트다. 첫 번째 쇼트가 시게루의 시점 쇼트인 이유는 단순하다. 첫 번째 쇼트는 소리가 다르다. 두 번째 쇼트와 세 번째 쇼트에서는 차의 엔진음이 들린다. 시게루는 농아다.      


  첫 번째 쇼트가 바다이기 때문에 시게루는 서핑에 매혹된 것이 아니라 바다에 매혹된 것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서핑에 매혹된 것이라면 첫 쇼트는 버려진 서핑 보드를 찍었을 것이다. 시게루는 서핑을 하러 바다로 향한다. 시게루의 여자친구는 시게루를 따라나선다. 버려진 서핑 보드를 수리하는 장면부터 음악이 흐른다. 이미 기타노 다케시는 영화를 처음 찍을 때부터 음악이란 결국 주관적 감정이라는 것을 알고 찍은 감독이다. 음악이 단순히 분위기나 장식용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찍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음악은 시게루의 감정을 대변한다. 처음으로 바다에 나가는 그 감정. 여기서 축구를 준비하는 바보 같은 사내 둘을 보게 된다. 처음에 영화를 볼 때는 이 바보 같은 사내 둘이 왜 이 중요한 감정에 끼어들어야 했는지 의문스러웠지만 이 사내 둘은 이 영화를 따라가는 굉장히 중요한 길잡이다. 시게루가 바다에 도착하자마자 음악은 끊긴다(끝난 것이 아니다). 바다로 향하는 감정과 바다에 도착했던 감정은 다르다.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서핑 보드를 고치는 저녁과 서핑을 하러 나가는 아침의 감정은 같다. 시게루가 서핑을 할 때 여자친구는 모래사장에 앉아서 구경한다. 그런데 이때에도 앞선 음악과는 다른 음악이 흐른다. 시작점은 여자친구의 쇼트. 역시 이 음악은 여자친구의 감정이다. 시게루가 서핑을 하러 바다로 향할 때의 선율과는 완전히 다르다. 각각의 선율들은 감정에 어울린다. 역시 음악은 시게루가 바다를 나오는 부분에서 끊긴다. 그리고 같은 음악이 세 번째로 서핑을 시도할 때 흐른다. 이때는 여자친구가 보고 있지 않다. 정확히 음악은 시게루가 서핑을 하고 있는 부분에서 시작하고 여자친구는 음악 중간에 모래사장으로 들어온다. 그렇지만 이 음악은 너무 멀리 있어서 감지되지 않은 시게루의 감정일까? 서핑을 하다가 서핑 보드가 부러졌는데도 음악은 계속 흐른다. 상황이 바뀌어도 흐르는 음악은 기타노 다케시가 이들을 바라보며 느끼고 있는 감정처럼 느껴진다.      


  시게루는 새로운 서핑 보드를 산 뒤에 집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시게루는 서핑 보드 때문에 버스에 타지 못한다. 여기서 버스를 타지 못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장면 자체만으로 중요하고, 이 장면이 후에 이 영화를 보는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여기서 흐르는 음악은 시게루의 여자친구의 감정일 것이다. 시게루는 익스트림 롱 쇼트로 찍었고, 시게루의 여자친구는 풀 쇼트와 바스트 쇼트를 오간다. 이제 시게루는 새로운 마음으로 새 서핑 보드를 가지고 바다로 향한다. 하지만 시게루는 서핑을 하지 않고, 그저 바다만 바라본다. 그런데 그의 옆에 어떤 여자가 다가온다. 그리고 그 여자는 시게루의 여자친구의 질투를 불러일으킨다. 시게루에게 서핑 용품 가게의 사장은 잠수복을 주고 서핑 대회 참가를 권유한다. 그리고 시게루는 서핑 보드에 참가한다. 시게루가 참가 신청서를 쓰는 것을 길게 보여주는 이유는 참가 신청서를 엉터리로 작성하기 때문이다. 시게루의 여자친구는 참가 신청서를 읽더니 고쳐 쓴다. 그녀가 참가 신청서를 제대로 썼는지는 불명확하다. 시게루는 서핑 대회에 가지만 결국 참가하지 못한다. 신청서에서 누락된 것인지 정말로 이름을 불렀는데 못 들은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서핑 대회에 참가하러 가는 길에서 이상한 것은 시게루 커플을 태워주는 트럭 기사다. 그가 시게루 커플을 태워주는 쇼트 다음에 시게루와 여자친구는 길을 걷는다. 그다음 쇼트는 트럭 기사가 경찰과 갈등을 빚는다. 보통이라면 쇼트의 순서가 바뀌었을 것이다. 트럭 기사와 시게루 커플이 타고 가다가 경찰 단속에 걸리고 난 다음에 시게루 커플은 길을 걸을 것이다. 그러나 기타노 다케시는 항상 자신의 방식대로 데쿠파주를 구성한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 감각은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면서 배운 코미디 원리라고 한다. 그것이 정말 웃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독특한 미학을 선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시게루는 서핑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고 대회가 끝난 다음 혼자서 파도를 탄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애잔한 음악이 흐른다. 아마도 시게루 커플의 마음일 것이다. 그들은 서핑 용품 사장의 차를 얻어탄다. 이 장면이 이 영화의 열쇠다. 이 장면을 절대로 놓쳐선 안된다.      

  다시 돌아와서 시게루와 여자친구는 큰 갈등을 빚는다. 시게루가 다른 여자와 같이 앉아 있는 것을 보자 시게루의 여자친구는 시게루와 이별을 결심한다. 앞에선 시게루 옆에 앉아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애썼는데 두 번째는 이별을 결심한다. 왜 그런 것일까? 시게루는 결국 혼자 집으로 돌아가고 여자친구의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만나지 못한다. 두 번째 방문에서 여자친구가 밖으로 나오자 시게루는 길을 떠난다. 아마 평소라면 여자친구가 쫓아왔기 때문에 길을 떠났던 것이다. 여자친구가 따라오지 않자 시게루가 여자친구에게 향한다. 다른 여자와 앉아 있던 것만으로도 구슬픈 음악이 흐르고, 반지를 돌려주고, 눈물을 흘릴 정도였을까? 이상한 건 그다음 장면이다. 시게루와 여자친구는 이별한 것처럼 보이는데 방파제에 앉아서 건너편 거리를 바라본다. 자전거 탄 행인이 바다에 빠지자 시게루와 여자친구는 놀란다. 그리고 이내 빠진 남자는 지나가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바다에서 무사히 나온다. 이 장면은 어떤 기능일까?      


  시게루와 여자친구는 다시 함께한다. 시게루가 일터로 끌려가자 여자친구는 혼자 쓸쓸히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난 다음 두 번째 서핑 대회가 열리고 이번에 시게루는 참가한다. 시게루는 결국 상까지 받는다. 사진 촬영도 하고 돌아온 시게루와 여자친구. 그리고 비 오는 날 시게루는 서핑을 하러 바다로 향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쇼트가 전환되고 바다에 도착한 여자친구는 시게루의 서핑 보드만 남은 바다를 바라본다. 이상하게 구슬픈 음악. 갑작스럽게 시게루가 죽은 것처럼 보인다. 당혹스러운 장면이다.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기타노 다케시가 허무주의 색채가 짙다는 식으로 이 영화의 결말을 설명할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이 영화는 실패작이다. 아니, 이렇게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없다. 분명 여기에는 무언가가 있다.  

    

  시게루의 여자친구는 서핑 대회가 열린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앞서 만났던 트럭 기사의 트럭을 얻어타고 대회가 열린 바다에 서핑 보드에 사진을 붙이고 서핑 보드를 바다에 떠나보낸다. 왜 서핑 대회가 열린 바다였을까? 시게루가 서핑 대회가 열린 바다에서 죽은 것일까? 우리는 앞에 나온 바보 같은 두 남자를 떠올려야 한다. 두 사내는 시게루와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서핑 보드를 사려다가 돈이 없었고, 결국 샀고, 버스를 타지 못했고, 잠수복을 얻었고, 서핑 대회까지 갔다. 하지만 단 하나만 다른 것이 있다. 시게루와 여자친구는 첫 번째 서핑 대회가 끝나고 서핑 용품 사장의 차를 얻어 타지만 두 사내는 차를 얻어 타지 못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이 따라온다. 시게루가 정말로 차를 얻어 탄 것일까? 두 사내가 기타노 다케시가 이 영화를 따라오기 위한 길잡이로 기능하는 캐릭터로 그린 것이라면 어떠할까? 그렇다면 시게루는 첫 번째 서핑 대회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 된다.      


  그렇다면 질문이 따라온다. 그 이후의 장면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건 여자친구의 마음이라고 대답하고 싶어진다. 시게루가 살아있다면 이별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이별 장면 뒤에 붙는 자전거 탄 사내를 구하는 장면에서 또한 시게루를 구하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은 아니었을까. 서핑 복장을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시게루의 모습 또한 그녀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타노 다케시는 왜 이런 방식을 택했을까. 아마도 그건 너무 가슴 아프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남자 흉폭하다>에서 나는 지적 장애가 있는 동생을 버리고 싶은 잔인한 마음을 봤다. 그 잔인한 마음은 인간의 마음 깊숙한 어딘가에 자리 잡고 계속해서 괴롭힌다. 너무 잔인해서 그 마음을 드러내놓고 찍을 수도 없거니와 인간이 그렇게 드러내놓고 자신의 잔인함을 인정하는 존재가 아니기에 기타노 다케시는 영화 심연에 흐르는 감정을 심연 속에 가둬두고 우리에게 그 심연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애도는 그 사람을 기억하고 떠나보내는 과정이다. 애도를 하는 동안 우리는 울기만 하지는 않는다. 떠올리고, 가정해보고, 슬퍼한다. 그것이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의 방법론이다. 이 영화는 애도의 영화다.      


  2021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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