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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준 Dec 24. 2023

제4화. 핫셀 블라드로 찍은 사진

 모두 기뻐하고 즐겁게 맞이하는 그날 설날은 유난히도 추웠다. 어머니가 계시는 부산으로 내려가 설날을 보내고 다음날 집을 나섰다. 추운 날씨 탓에 양복 위에 외투를 걸치고 손에는 장갑을 끼고선 빠른 걸음으로 길을 내려가 지하철을 탄다. 사람이 별로 없는 차 안이라 자리에 앉아 가면서 머릿속에는 온갖 상념들로 가득 찬다.  그렇게 온갖 생각을 하다가 차에서 내려 10여 분을 걸은 뒤 한 오피스텔 앞에 선다.     

 친구가 운영하고 관리하는 8층짜리 오피스텔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한테 뻔뻔스럽게도 사진 촬영을 부탁한다. 그 친구는 사진작가로서 제법 이름이 있는 친구이다. 싫은 기색도 없이 나를 오피스텔 지하로 데리고 간다. 말로만 들었던 그 친구의 작업실이었다. 아주 크고 훌륭한 스튜디오였다. 많은 촬영 장비가 갖춰진 곳이지만 매서운 겨울 날씨 탓으로 들어서니 몹시 추웠다. 추운 기운이 감돌았지만 외투를 벗고선 나름대로 자신 있게 멋진 포즈를 취해본다. 친구는 자신의 카메라로 조명을 터뜨리며 한참을 찍어준다.      

 촬영을 끝내고 자신의 사무실 컴퓨터에서 사진을 보여주는데 내 모습이 너무 어색해 보인다. 난생처음 취해보는 포토 포즈가 그렇게 멋쩍을 수가 없다. 카메라가 터지는 순간순간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포즈였는데 막상 찍힌 내 모습을 보니 부끄러웠다. 그렇게 해서 나는 처음으로 나의 프로필 사진을 찍었었다. 나중에 친구는 핫셀 블라드 카메라로 찍어줬고 몇 천만 원짜리 카메라라고 한다. 그리고는 친구한테는 이 정도 카메라로 찍어줘야 하지 않겠나 하며 너스레를 떨지만 나는 너무 놀랬다. 참으로 고마운 친구였다.     

 핫셀 블라드는 스웨덴의 예테보리에 본사를 둔 카메라 및 사진 장비 제조업체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스웨덴 군용 카메라를 생산했으며 인류 최초의 달 착륙선 아폴로 프로그램에도 사용되었다. 항공용 중형 카메라를 시작으로 카메라 제조업체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회사이다. 그만큼 귀하고 비싼 카메라인 것이다.

10여 년 전에 나는 비록 어설펐지만 핫셀 블라드로 프로필 사진을 찍고 시작한 모델이었다.     

 모델 업계에 시니어 모델들은 너무나 많다.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현실이라 그런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시니어 모델들의 활약은 참으로 대단하다. 1931년 생의 미국 모델이자 배우인 카르멘 델로 피체는 올해 91세로 현역으로 롤렉스 등 여러 유명 브랜드와 함께 일하며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102번째 생일을 맞은 패션 아이콘 아이리스 아펠도 1921년 생의 시니어 모델이다. 아니 실버 모델이라 함이 더 어울린다. 커다란 뿔테 안경과 원색의 화려한 의상, 볼드한 주얼리는 그녀의 시그니처 아이템이다.    


      

카르멘 델로 피체


  최근의 패션 브랜드들의 캠페인을 보면 전 세계적으로 시니어들이 활약하는 추세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비단 외국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시니어 모델은 흔하게 볼 수 있는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점점 시니어 모델층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나고 있다. 이젠 광고계에선 나이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고 더 이상 올드로서의 역할이 아니다. 시니어들의 행동반경이 제한적이고 한정적이란 개념은 사라지고 세컨드 커리어를 시작하는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촬영 현장에선 오히려 주름과 염색하지 않은 흰머리를 요구하고 있고 점점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단순한 현상에 그치지 않고 시니어들은 앞으로도 점점 트렌드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 나갈 것이다. 시니어들의 강력한 구매 파워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부끄러워하며 어색하게만 여겼던 그 프로필 사진으로 이젠 수백 편이 넘는 광고를 찍으며 탑 시니어 모델의 반경에 들었다. 도리어 수백 명의 일반 시니어들을 광고 모델로 가르쳤고 또 그들을 촬영 현장에 내보내준 유명 강사로 자리매김하였다. 

세계 최고의 카메라인 핫셀 블라드로 프로필 사진을 찍었기 때문일까. 지금도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친구에게 감사하고 있다. 인간의 삶은 수많은 세월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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