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도 Nov 25. 2023

인요한 박사님에 대한 기억

17년 전,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군복무를 하게 되어, 파견 전 국내훈련을 받을 때였다.


세계 각지에 파견되는 나와 동기들은, 단신 파견의 원칙으로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른 나라에서 2년 이상 혼자서 많은 것을 챙겨야 하는 환경에 놓인다.


영어와 현지 언어 교육은 물론이고, 국제법 관련 수업이나 한국 요리 수업까지도 듣게 된다.


거의 매주 다른 종류의 예방접종을 맞기도 했고 (파견지역에 따라 맞거나 안 맞는 주사도 있었다), 전기나 물이 끊기는 상황을 대비하여 전기나 물이 없이 생활하는 훈련도 했었다.


새벽마다 체력 훈련은 당연한 일이었다.




훈련 기간 중에 다양한 강연자 분들이 오셔서 강의를 해주셨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강연자 분은 파견지역에서 각자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신 인요한 박사님이었다.


누가 봐도 외국인인 박사님이 굉장히 구수한 한국어로 강의를 해주셨는데, 그냥 일반적인 건강관리 방법이 아닌, 정말 실용적인 방식들이었다.




예컨대 뎅기열 (Dengue Fever)이 많은 지역에서는 집 주변의 모기가 번식하지 않도록 모기 번식을 예방하는 방식이라던가, 티푸스(Typhus)에 걸리지 않도록 음식이나 물을 조심해서 먹는 방법 등 그 외에도 한국에서 꼭 가져가야 할 비상약들도 알려주셔서 짧은 강의 시간 동안 굉장히 실용적인 방법들을 많이 알려주셨다.


뭐랄까 정말 오지로 떠나는 치기 어린 젊은이들에게 일말의 권위 없이 '생존'을 위한 지식들을 치밀하게 'Action'단위로 알려주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감동적이었던 것은 "언제든 아프고 상담이 필요하면 국제의료센터로 전화해서 나를 바꿔달라고 하세요. 제가 상담해 줄게요."라는 마지막 말이었다.


그러면서, "전화비 걱정 말아요. 걸고 나서 전화번호 알려주면 그 번호로 걸어줍니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감정은 아플 때는 주저하지 말고 전화해도 된다는 굉장히 안심이 되는 어른의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운 말이었다.


실제로 나는 파견 뒤 1년 정도 지났을 때, 아침에 일어났는데 심하게 오한이 느껴졌다.


파견 물품에 있던 전기장판을 틀고 누워있는데, 30도가 넘는 적도 부근의 도시에서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아팠던 것이다.


심한 설사와 고열 등으로 상태가 악화되자 나는 문득 인요한 박사님 생각이 나서 국제의료센터로 전화했다.


전화를 받으시는 분께 인요한 박사님과 상담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1분도 지나지 않아 인요한 박사님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증상을 말하자,


"타이푸스(라고 영어식으로 발음하셨다) 같아요. 얼른 병원에 가보세요. 무언가 잘 못 먹었을 수 있어요."


그리고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약 먹으면 금방 나으니까. 먹는 거 조심하고 좀 쉬어요."


무언가 또 위로하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무언가 상당히 안심이 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이역만리 땅에서 잠깐 강의해 준 요원을 위해 바쁜 와중에도 전화로 상담을 해주시고 위로해 주신 박사님에 대한 기억.


하지만 나는 너무 아파서 그 당시에는 감사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돈을 아끼겠다고 좀 더 저렴한 생수를 사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생수병이 보관되던 곳에 물이 약간 고여있었고 한참 마시고 나서 생수병 아래가 살짝 깨져있는 것을 발견했던 기억이 났다.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 병원에 가서 티푸스 진단을 받고 약을 먹고 1~2주가량 뒤에 회복을 할 수 있었다.




이 기억을 꽤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혁신위원회 활동을 왕성히 하시는 인요한 박사님을 보고 떠올린 기억이다.



갑자기 정치 쪽으로 오신 것에는 처음에 의아함이 들었지만, 진심으로 실용적이고 필요한 '생존 방법'에 대해 간결하게 핵심만 전달해 주시는 그 능력과, 바쁜 와중에도 불특정 다수의 단원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켜주셨던 그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 분이라면 정말 '정치'라는 '혁신'과 전혀 안 어울리는 분야에서 '혁신'을 이루어내실 수 있는 분이 아닐까 하는 믿음과 기대를 갖게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감사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재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년 뒤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쓰는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