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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Feb 07. 2024

나만의 문화유산을 남기려



산조: "흩어진 가락" 또는 "말 없는 판소리"라고 불린다.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단과 선율로 표현하는 기악이다. 가야금 산조, 거문고 산조, 해금·대금 산조로 대표되는 우리의 산조는 인간과 자연 간 교감(交感)에서 얻을 수 있는 희로애락과 인간의 지고지순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출처: 한국의 소리 커뮤니케이션)     


가야금을 주제로 다룬 <천년의 농>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국악 전문 음반 회사 ‘악당이반’의 김영일 대표는 기악 독주곡인 산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조는 오래된 전통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거의 완벽한 현대음악입니다. 아직도 만들어지고 있고요. 처음 만들어진 건 약 1890년대, 전라도 영암지방의 김창조라는 가야금 연주자가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산조가 독특한 이유는 한 사람이 일생에 단 한 곡만 작곡하고 죽습니다. 연주가이자 작곡가죠. 생에 딱 한 곡만 만들고 죽는 이런 형식의 곡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더 독특한 것은 한 명의 연주자가 만들어 놓은 곡을 제자가 완전히 배워 자기 방식으로 재탄생시킵니다. 그래서 제자의 이름을 달아서 다시 만듭니다. 그것이 선생에 대한 최대의 예웁니다.

또 한 가지, 산조는 한 번 연주한 곡을 다시 연주하지 않습니다. 음악을 만들면 주선율과 부 선율을 만들잖아요. 오케스트라에서는 1악장에서 나온 주선율이 3악장에서 다시 연결되기도 하지만 산조에는 도돌이표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인생을 닮은 곡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의 시간으로 살수 밖에 없듯, 어제로 돌아가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산조라는 음악은 도돌이표가 존재하지 않기에 위대한 음악입니다.”     



우리 인생을 닮았다는 말에, 나의 인생을 덧대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 한 사람이 생애 단 한 곡만 만들 수 있듯 나의 삶도 나만이 만들 수 있다.

산조의 장단은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의 3대 형식으로 체계화되어 있지만, 종류에 따라 엇모리, 굿거리, 휘모리, 단모리 등도 추가된다. 점점 빨라지는 장단에 맞추어 자유분방하게 연주하고 조바꿈도 한다.

이것만 봐도 내가 목표한 바를 향해 나아가는 것과도 비슷하다. 작은 목표, 큰 목표 상관없이 나아가는 여정은 특성을 가진 구간으로 나눌 수 있다. 직진이 가능하다면, 단 하나의 장단만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천천히 가다가도 속도를 내야하고, 속도를 내다가도 줄여야 하고, 줄이다가도 다시 가속페달을 밟아야 하는 구간이 이어진다.     

둘째, 제자가 스승의 곡을 배워 자기 것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처럼, 내가 만든 무언가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었으면 한다.

물리학에 ‘공명’이라는 용어가 있다. 진동하는 계의 진폭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현상으로, 외부에서 주기적으로 가하여지는 힘의 진동수가 고유의 진동수에 가까워질 때 일어난다. 쉽게 말해, 남의 사상이나 감정, 행동 따위에 공감하여 자기도 그와 같이 따르려 하는 것이다.

싸이를 공명의 대상으로 삼은 <<비전을 발견하고 디자인하라>> 책에서 이창현 작가는 말한다. 스티브 잡스는 간디를, 가수 싸이는 프레디 머큐리를, 김정운 교수는 아인슈타인을 대상으로 삼았다고. 만일, 나의 산조가 누군가에게 공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이보다 가치 있는 삶이 있을까. 지나친 바람일 수도 있지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의 나래라도 펼쳐본다.     

마지막으로 도돌이표가 존재하지 않는 산조처럼, 조금이라도 다른 일상을 살며 성장하고 싶다.

산조는 한 번 연주한 곡을 두 번 연주하지 않는다. 빠른 완성을 위해 대충 만들 수도 있지만, 그렇게 완성되는 곡은 없다.

그래서 산조는 작곡한다고 하지 않고 ‘소리를 짠다’라고 하는 걸까. 개인의 영감과 음악적 역량을 바탕으로 ‘작곡’하는 서양음악과 달리, 세대를 거듭하며 변주와 재구성, 새로운 가락의 덧붙임이 있어 그렇게 표현한다고 나온다. 내가 살아갈 영겁의 시간 속에서도 똑같은 하루는 존재하지 않는다.

첫 번째 책에 실은 내용을 두 번째 책에 담아낼 수 없다. 내가 내 글을 표절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노력하지 않은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일상과 생각과 관점에도 미세한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여러 장단을 거치고 여러 번의 변주를 거쳐 곡이 완성되듯, 나만의 이야기를 담은 산조를 짜고 싶다.    

  



글을 쓰며 책을 내고 있다. 단 한 권만이 산조가 되어야 한다면, 과감히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물론, 조정래의 <<아리랑>>,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 <<장길산>> 소설처럼 이야기가 연속된다면 모르지만. 혼자 쓰든 같이 쓰든 1년에 한 권은 집필하려 한다. 출간하는 여러 권의 책을 연결해 나가다 보면 나만의 산조를 짜내게 되지 않을까. 합해도 떼어내도 글을 쓴 사람은 ‘나’ 뿐이니까. 가야금으로 완성된 곡은 아니지만, 내가 쓴 글로 연결되는 나만의 문화유산인 산조를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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