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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Mar 18. 2024

굿 칠드런 희망편지 (from. 두 아들)


어제 낮. 첫째 아이의 알림장을 보다가 '굿네이버스 희망편지에 부모님 사인, 편지 받아오기' 과제를 발견했다.

3월 14일까지 제출이었지만, 기한을 넘겨 월요일까지 연장됐다. 가방을 열어보니 '2024년 굿네이버스 희망편지 쓰기 대회'라는 종이가 있다. 학교, 학년, 번호, 이름만 적혀있었다. 워낙 쓰는 걸 싫어하는 아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빈 종이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았다.




피곤하다며 잠든 첫째와 쉬고 있는 둘째. 둘째 아이 가방에도 같은 편지가 들어있었다. 역시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아이들은 쓰지 않는데 보호자만 쓰는 것도 이상하고. 과제라니 하긴 해야겠고.

두 아이 모두 쓰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데다, 편지라서 더욱 거부할 것 같다. 문득 며칠 전 첫째가 둘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 학교에서 영상 봤어? 오늘 본 아이는 좀 불쌍하더라. 도와주고 싶더라." 그 말이 떠올라, 보호자 작성란이라도 채우고자 했다.

편지에 첨부된 QR코드를 인식하니, 7분 58초짜리 '2024년 희망편지 쓰기 대회' 영상이 열렸다.


첫째와 나이가 같은 열두 살 소녀 음바나.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로 영상이 채워졌다.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었고, 남동생이 세 명이나 있다. 막내는 다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해 음바나가 업고 다닌다. 점점 부어오르는 다리. '부를리궤양'이라고 불리는 병은 가난에 의해 발병된 병이라고 한다. 초기에 발견하면 간단한 치료로 막을 수 있지만, 가난한 친구들에겐 이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라는 인기 유튜버 허팝의 설명에 마음이 쓰라렸다.


편지를 펼쳐, 보호자 작성란 두 줄을 채웠다. 다 쓰고 덮는데, 둘째가 다가왔다.

"엄마, 저도 그거 써야 하는데 학교에서 못 봤어요. 그거 좀 보여주세요."

아이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영상 보는 도중에 편지를 쓴다. 한 줄 끝까지 쓰면 되는지 묻더니 사뭇 진지해진다. 지우개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더니 덮었다. "더 길게는 못쓰겠어요. 이 정도만 쓸게요."

한 시간 뒤 첫째가 일어났다. 식탁 위에 있는 희망편지를 보더니 샤프와 지우개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대충 쓰고 나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다. 매번 휘갈겨 쓰는 아이가,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써 내려갔다.




첫째가 5학년이 된 후로 동생과 예전보다 더 많이 싸우고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일까. 편지 내용이 더욱 반전이었다.

둘째는 3학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노는 것만 좋아하고, 글과 책을 멀리한다. 한 문장이라도 제대로 쓰겠나 했는데, 어린이 작가인가 싶을 만큼 멋지게 적어냈다.

두 아이가 쓴 편지를 보며, 음바나 보다 내가 더 감동받았다. 부모는 자기 자식을 잘 안다는 착각에 사는 게 맞나 보다. 내가 아닐 거라고 확신했던 모습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 이번 굿네이버스 희망편지는 음바나 가족뿐 아니라 나에게도 희망을 전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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