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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Apr 08. 2024

생강도라지차 주세요

"주문하시겠어요?"

"생강 도라지차 한 잔 주세요."


생강 도라지 차라니. 엄마가 따뜻하게 담아줘도 몇 모금 마시거나 안 마시는 차였는데, 내 돈 주고 시켜버렸다.

토요일 저녁, 친구네 부부랑 골프장에 다녀왔다. 기모 소재로 된 옷을 입고, 바람막이를 입었는데도 갑자기 떨어지는 기온을 이기지 못했다. 목으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드는 듯했지만, 핫팩이 있으니 괜찮겠거니 했다. 식당에서 허기를 달래고 집으로 들어선 순간 으스스한 기운이 몸 전체로 퍼졌다. 목부터 하관까지 다 부어올랐다. 새벽에 일어나 비상용으로 쟁여둔 인후통 약을 먹었다. 염증 완화제가 들어가서인지 통증이 줄어들었다.


다음날 아침인 일요일. 어깨가 두드려맞은 것처럼 아프고, 계속 잠이 왔다. 현관 밖에는 국제마라톤 대회로 떠들썩거리는데 구경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계속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움직였다.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간단하게 청소하고 밥도 했다. 움직일수록 몸이 무거워지는 것 같아 발레 선생님이 올려준 영상을 보며 발레핏을 했다.

난기류 컨디션이라 따라 하면서도 그만하고 싶었다. 양쪽 손목에 차고 있는 0.5kg 모래주머니는 쌀 10kg 같았다. 열심히 따라 하는데도 시간이 더디게 움직였다. 한 동작 끝냈는데, 10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만할까, 쉬었다가 할까 수십 번 갈등했다. 뒤에서 같이 따라 하는 아이를 보며 다음 동작, 또 그다음 동작으로 이어갔다.

드디어 50분이 지났다. 묵직하던 어깨가 가벼워졌다. 부종도 가라앉은 듯했다. 저녁으로 순두부찌개와 계란말이를 하고, 나는 양배추랑 방울토마토 몇 개만 먹고 9시에 잠들었다.


잠결에 끙끙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콧물 흘리던 둘째인가 싶어 옆을 보니 조용히 자고 있다. 다시 눈을 감았다. 또 들렸다.

'아. 나였구나.' 갑자기 목 아픔이 느껴졌다. 시계를 보니 2시 30분, 침 삼키는 것조차 힘드니 잘 수가 없었다. 빈속이지만 다시 약을 먹었다. 10분, 20분, 차츰 나아지며 잠들었다. 오전 5시 30분, 알람이 울렸다. 조금 전보다 낫다며 운동 가방과 차 키를 들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집에 와서도 괜찮았다. 역시 운동을 해야 한다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오전 10시쯤 지나자 다시 목이 아팠다. 콧물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종합감기인가. 운동을 시작한 후로는 심한 감기는 멀리하고 살았는데. 오한, 콧물, 인후통까지 한 번에 왔다. 따뜻한 걸 마시고 싶다는 찰나, 어떤 걸 주문하겠냐는 직원의 말에, 생강 도라지차를 시켰다.

아무렇지 않게 주문하고, 받고, 마시는 내가 낯설다. 나이든다는 게 이런 건가. 병원 갔다 오면 나아지겠지. 입안에 감도는 생강만큼이나 씁쓸한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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