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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창우 Nov 21. 202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리스크와 불확실성의 우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해석 2



2021.12.14 작성


 리스크와 불확실성

 영화는 노인을 위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노인인 벨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그는 자신의 집과 사랑하는 부인이 있고 젊은 시절 함께 고생하며 다쳤던 친구가 있다. 이를 지키기 위해 통제된 안정을 추구하는 기성세대가 싫어하는 것은 리스크와 불확실성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둘의 성격이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리스크는 위험의 크기와 확률이 예측 가능하다. 다만 이번 시행에서 확률 분포의 어느 쪽 면에 당첨될지가 랜덤일 뿐이다. 불확실성은 위험의 크기와 확률조차 모른다. 우리가 본질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리스크가 아니라 불확실성이다.

 모스와 쉬거는 기성세대가 바라본 이해할 수 없는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통제되고 안정된 번영을 가져다주었던 질서를 거부하고 일확천금을 쫓는 이들이다. 그렇지만 모스는 카우보이 복장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의 영광과 그 정신을 잊지는 않는 인물이다. 반면 쉬거는 벨에게 있어 철저히 불가해하다. 보안관인 벨이 추적하려고 하지만 절대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모스는 리스크를, 쉬거는 불확실성을 상징하고 있다. 모스는 일견 무모해 보이지만 그의 입장에서 보면 나름대로 계산이 선 행동들을 한 것이다. 우연히 마약 거래 대금이라는 큰 돈을 손에 넣었는데, 사실 그가 입만 다물면 그 돈은 아무도 몰래 자신의 것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또한 사건 현장의 다친 멕시코인에게 물을 가져다주러 가다가 총격을 당했을 때도, 아내를 안전한 곳에 보내고 자신은 적당한 곳에 숨어있다는 것도 나쁜 전략은 아니었다. 자신을 어떻게 알고 추격할 것인가? 그는 모텔 방을 두 개 잡고 짐칸의 안쪽을 이용해 돈을 옮기는 치밀함까지 보여주며 돈을 지켜낼 줄 아는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계속해서 나름대로의 합리적 판단으로 리스크 관리를 하면서 기대수익을 플러스, 그것도 큰 플러스로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쉬거는 그러한 리스크 관리의 예상에서 벗어난 자연재해 같은 자이다. 그는 소음기를 단 가스총이라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 무기로 무장하고 있어 소란을 일으끼지 않고 자신에게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산탄총에 맞아 큰 부상을 입어도 마치 짐승을 다루듯 자신의 몸을 소독하고 꿰매 회복하는 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스총을 호텔에서 들고 다니며 전 동료에게 겨누어 방 안으로 몰고 가고 쉽게 죽여버리는 자이다. 예측할 수 없고 대비할 수 없고 정보가 없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 공포스러운 것은 그 불확실성 때문이다. 죽음 이후를 모른다. 그 누구로부터도 간접 경험을 할 수가 없다. 이는 하방으로의 두려움을 만든다. 그래서 불확실성을 상징하는 쉬거가 죽음을 가져다주는 연쇄살인마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리스크는 기본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모스는 자신이 갱단의 돈을 우연히 얻은 것을 리스크와 동반된, 그러나 관리될 수 있는 큰 기대값의 행운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만난 것은 쉬거라는 이름의 불확실성이다. 우리는 불확실성을 리스크로 착각하며 관리할 수 있다고 믿다가 패배한 역사를 무수히 기억할 수 있다.


1980년과 2008년의 경제위기, 반복되는 역사

 쉬거는 서사의 초반부에 자신이 1958년부터 22년이 걸려 여기에 왔다고 점포의 나이 든 사장에게 말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1980년이 배경인 것이다. 그런데 왜 '1958'년이고 '22'년일까? 왜 그런 식으로 연도를 전달했을까? 1958년은 NASA가 설립된 해이다.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익스플로러호가 우주로 날아간 해이다. 11년 후인 1969년 인류는 달에 발을 내딛는다. 미국의 위대한 승리다. 미지의 세계라고 생각됐던 우주조차 미국에 의해 정복됐다. 자연 세계의 리스크가 수많은 지성에 의해 관리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다시 11년이 지난 1980년, 미국은 70년대 베트남전의 수렁과 인플레로 인한 불황을 동시에 겪은 병자가 됐다. 58년의 꿈과 함께 태어난 아이가 대학까지 나와 만 22살의 나이로 사회로 나오게 됐는데, 사회는 어찌 이리 암울하단 말인가? 저 드높은 우주의 달에 가는 리스크조차 관리했던 미국인데, 지구 반대편의 정글에 갇힌 약소국을 이기지 못해 그 자존심과 권력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어찌 된 일인가?

 인간 세계의 일은 리스크뿐만 아니라 불확실성이 존재하며 때로 그것은 역사를 지배한다. 미국은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도 마찬가지다. 5~60년대의 미국은 케인즈주의가 지배했다. 경기를 중앙은행과 재무부가 미세조정해가면서 경제의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으리라 믿게 됐다. 전후 25년간 미국은 호황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누적된 팽창적 통화정책과 오일쇼크는 고실업/고인플레라는 케인즈주의 경제학이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던져주었다. 경제정책은 실패하였고 미국의 실업율은 치솟았다. 인간이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세계가 다시 그 모습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낸 결과가 1980년의 미국인 것이다.

 영화의 원작은 2005년에 쓰여졌고 2007년에 영화가 개봉하였다. 우리는 이 연도들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안다.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버블로 인해 호황을 즐기던 시대였다. 그러나 버블의 징조는 계속해서 관측되었고 그린스펀 연준 의장조차 경고할 정도였다. 불안한 호황 속에서 이라크전 이후에 지속된 중동의 혼란과 전비 지출은 명분 없이 돈만 써 국력을 약화시켰던 베트남전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다. 그래서 영화는 베트남전이 끝나고 상흔이 남아있던 1980년을 배경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리스크로 위장된 불확실성

 쉬거의 전 동료가 증언해주었듯, 쉬거는 돈을 나누지 않는다. 왜일까? 리스크 관리는 기본적으로 책임과 이익을 같이 나누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가 손해를 봤을 때 대신 손해의 일부를 떠안아줄 자를 구하는 것. 그것이 보험이다. 대신에 보험료라는 보험사의 이익이 지금 발생한다. 미래의 이익을 남에게 팔아 지금 현금화해 리스크를 줄이는 것. 그것이 주식이다. 그런데 불확실성(쉬거)을 생각해보자. 갑작스럽게 자연재해가 불어닥쳐 내 목숨을 앗아가거나 나를(그리고 보험사조차) 파산시켜버린다면, 보험이니 주식이니 하는 것들이 의미가 있을까? 불확실성은 돈을 나누지 않고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릴 위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2008년의 대침체를 통해 경험하였다.

 쉬거는 사이코패스라는, 당시 미국 사회가 처음으로 주목하게 된 새로운 유형의 범죄자이다. 그의 다음 행적이 어디로 튈 지 모른다기보다는 그의 존재 자체가 당시로서는 새롭고 불가해하다. 역사적 경제위기는 그런 존재에 의해 찾아온다. 이미 알려진 리스크는 대비를 했다고 생각하기에 파티를 즐기기 때문이다.

 동전 던지기란 무엇을 의미할까? 동전 내기는 전형적인 리스크 상황처럼 보인다. 앞 뒤가 나올 확률이 같고, 나는 공평하게 그 중에 하나를 고르고 운명을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쉬거가 갑자기 나타나 동전을 던지라고 강요할 때, 이 건 리스크가 아니다. 쉬거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이미 불확실성이다. 동전 던지기는 일견 공정해 보이지만, 멀쩡하게 살아가던 사람이 50% 확률로 죽을 내기에 참여하는 게 뭐가 공정한가? 이겼을 때 얻는 건 아무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불확실성은 리스크의 탈을 쓰고 나타나기 시작한다.

 모스가 갱단의 마약거래대금을 갖고 튀었을 때, 그는 아마 갱단이 자신을 추적할 것이라고는 예상했을 것이다. 리스크를 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를 계속 추적했던 것은 쉬거라는 불확실성이다. 모스는 불확실성에 최선을 다해 저항하고 극복을 시도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그가 예상했던 리스크인 멕시코 갱단에 의해 살해당한다.

 인간의 인지 역량은 유한하다. 예상치 못한 불확실성에 대응하다 보면 인간은 자신이 인지하고 있던 리스크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모스의 부인을 죽이고 차를 타고 나와서 앞 뒤 좌측을 확인하며 차를 타던 쉬거는 오른쪽을 확인하지는 않았고, 그 결과 오른쪽에서 튀어나온 차를 피하지 못하고 큰 부상을 당했다. 이 역시 인간의 유한한 인지 역량을 보여준다.


화폐에 기반한 탈중앙화가 내포하는 불확실성

 도로교통은 철도나 항공에 비해 훨씬 탈중앙화된 시스템이다. 운전자가 되는 것은 성인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며 제약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약속된 공통의 기호들과 약속들을 믿고 유한한 인지역량을 사전에 숙지한 패턴으로 집중으로써 편리한 생활을 한다. 신호를 믿고 교차로를 건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편리하고 자유로운 탈중앙화된 시스템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우리 간의 약속된 공통의 기호들(신호등이라던가)을 무시하는 미친 놈이 나에게 돌진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우리는 교통사고라는 부조리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화폐는 인간 사회의 협력의 범위를 불확실성이 별로 없이 모든 사람을 인간관계와 함께 파악할 수 있는 좁은 사회로부터 지구 전체로 넓힐 수 있었다. 그 결과 생활은 익명의 사람들과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도시 위에서 이루어진다. 불확실성은 증대했으나 도로교통의 탈중앙성만큼이나 도시의 탈중앙성은 공통의 무언가에 기반하여 잘 작동하고 있다. 시민들은 낯선 이를 마냥 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일종의 동료로 생각할 근거들이 있는 것이다. 중세에 그것은 종교였고 근대에는 민족주의였으며 현대에는 인간의 자유와 권리, 그리로 그것을 위해 필요한 책임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들이다. 사이코패스는 이러한 유대를 박살내는 존재로 마치 나를 갑작스럽게 들이받는 자동차처럼 사회에 등장한다. 사이코패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은 그래서 뇌리에 남는다.


2022년을 바라보며

 코로나가 떠오른다. 작년 3월 세계를 혼돈에 퍼뜨린 것은 코로나 그 자체보다는 경제의 대봉쇄를 예상하고 패닉하던 금융시장이었다. 미국에 확진자나 사망자가 제대로 나오기 전부터 미국의 주식시장은 폭락을 시작했다. 이 대폭락을 해결해준 것은 2008년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달러 살포였다. 코로나라는 새로운 불확실성이 시장에게 충격을 줘서 금융시장이 주저앉았지만, 해결은 과거의 방식의 강화판이었다. 그리고 그 때 만들어진 세상의 흐름이 여기까지 흘러 2021년 12월이 되었다. 모두가 리스크를 감당하라고 말하고, 스타트업 업계는 도전을 하라 말한다. 나스닥이 2008년 이후로 거의 열 배가 올랐고 카카오 계열사나 게임회사, 바이오 회사들의 상장으로 젊은 부자가 무수히 나오고 있다고 한다. 관리되는 리스크의 믿음은 무너질까? 불확실성은 어차피 우리가 예상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 단지 우리가 불확실성에 대응할 마인드셋이 준비되어 있을지가 의문이다.

 5~60년대의 통창적 팽화정책에도 그리 오르지 않았던 물가 경험은 70년대에도 여전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시켜 고물가 불황에 일조했다. 쉬거가 말했듯, 니가 따르는 그 룰이 너를 이 지경에 처하게 했다면 그 룰이 무슨 소용이지? 2010년대를 지배했던 저물가 덕에 연준은 이번에 더욱 더 화끈하게 돈을 풀 수 있었다. 그 결과 지금 서서히 인플레가 찾아오고 있다. 저물가를 믿고 양적 완화를 계속해 이자율을 떨어뜨리고, 그것이 당장 돈을 못 버는 스타트업들을 먹여살린 것인데, 저물가의 시대가 저물어도 씬은 계속될 수 있을 것인가? 달에 인간을 보냈다는 자신감으로 경제도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의 실패는 다시 재연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전염병조차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백신의 성공이 아직까지 불완전한 것은 오히려 다행인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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