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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창우 Nov 21. 2023

철도회사, 토스, 그리고 사람을 쓴다는 것

 자본주의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경영주의 일가가 직접 컨트롤할 수 있는 가족 기업들이었다. 시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기업도 영세했고, 관리직으로 가족 외에 다른 사람을 쓰자니 사회적 신뢰가 부족했다.

 시간이 지나 미국의 철도회사들이 등장한다. 세계 최초의 대기업이다. 이전까지는 기업이 이 정도로 대규모 인력을 관리해본 적이 없었다. 이들은 사람을 어디서 데려왔을까? 답은 군대다. 대규모 인력을 관리해본 경험을 높이 산 것이다. 장교 출신들은 실제로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개발도상국의 정치 지도자들 중 군인 출신이 많은 것도 같은 원리다. 민간 시장이 발전하지 않은 국가에서 정부 조직만큼 큰 조직을 통솔해본 경험은 군인들 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 철도회사 외에 다른 대기업들이 생기자, 이들은 인력을 철도회사에서 데려왔다. 철도회사는 미국 대기업 경영진의 사관학교가 된 것이다. 미국 철도회사들이 만든 기업문화가, 현재 미국 대기업의 기업문화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렇다면 스타트업 씬을 바라보자. 한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스타트업을 꼽자면 토스가 빠질 수 없다. 토스는 2013년에 설립되었는데, 한국에서 스타트업 씬이 막 발흥하던 시기다. 창업가 이승건은 회사가 성장하면서 인재를 어디서 데려올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철도회사를 설립했던 이들이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유난한 도전>에 나오는 핵심 인력들의 출신 경력은 무척 흥미롭다. 

 공동 창업자 이태양은 네이버 인턴 경력만을 가진 채 곧바로 토스에 합류했다. 토스가 첫 직장이나 다름없으니, 사실상 출신은 기업이 아니라 대학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자유로운 대학 문화를 머금은 이태양은 거침없이 이승건에게 직언을 할 수 있다. 이렇듯 이태양은 초기에 성장에 기여했지만, 막상 조직이 성장해 커지자 이탈하여 VC로 향한다. 작은 팀을 키우는 역량과 이미 커진 팀을 더 키우는 역량은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태양 다음으로 등장하는 핵심 인력은 PO 김유리다. 삼성전자, 미국 MBA, 애플, 스타트업 시절의 쿠팡을 거쳤다. 작은 조직과 큰 조직을 모두 경험했고, 미국의 수평적인 문화와 한국의 수직적인 문화를 모두 경험했다. 큰 기업으로 발돋움하면서도 스타트업다운 역동성을 유지하고 싶었던 이승건에게 꼭 필요한 인재였을 것이다. 실제로 이승건은 수 차례 김유리에게 기회를 주며 그가 핵심적인 기여를 할 수 있게 서포트한다. 김유리는 제 몫을 다한 후 티맵모빌리티를 거쳐 VC에 합류한다.

 그 다음 핵심 인물은 금융권 출신의 전략가 송호진이다. 토스는 비용을 소모하는 서비스인 송금 서비스를 최초 진입점으로 삼고, 그 고객들을 최종 퍼널의 서비스 X까지 유도하여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다. 송호진은 엑셀을 이용하여 1인당 최대 유저가치를 산출하고, 그를 바탕으로 그 X가 결제 서비스로 그쳐서는 비용을 만회하기에 부족하다는 계산을 해낸다. 수익을 측정하는 데 최적화된 금융권 출신다운 명쾌한 통찰이었다. 창업자 이승건은 이를 계기로 토스가 결제뿐만 아니라 은행, 증권, 보험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송호진은 이토록 핵심적인 기여를 한 뒤 플렉스로 떠난다. 이태양의 사례와 같이, 자신이 핵심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스테이지를 회사가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토스는 단계별로 적절한 인재들을 쓰면서 성장했다. 토스가 걸어온 길을 따라, 각 스테이지별로 성장을 일궈낸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이들이 다시 한국의 스타트업 씬으로 퍼져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토스 출신'이라는 수식어는 채용 시장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요컨대, 토스와 한국 스타트업 씬의 관계는 미국 철도 회사와 대기업의 관계와 유사하다. 스타트업 씬의 인재들을 배출해내는 사관학교다. 그래서 나는 토스가 살아남아 크게 성공했으면 좋겠다. 토스 출신들이 자신의 경력을 자랑스러워하며 스타트업 씬에 기여하고, 또다른 사관학교들을 만들어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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