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학벌주의는 뿌리 깊다. 실력이 뛰어나도 학벌이 낮으면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차별이 존재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아다닌다.
그런데 이 말은 다시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하다. 기업은 실력 있는 사람을 뽑아서 이윤을 내고 싶어 하는 조직인데, 어째서 실력 대신 학벌을 본다는 것일까? 근본적인 원인은 고용 시장의 경직성이다. 일단 일을 시켜보고 핏이 맞지 않으면 떠나보낼 수가 없다. 그래서 대기업이 정해진 프로세스를 만들어놓고 시킨 대로 일을 잘할 사람을 뽑는 것이 안정적인 전략이 된다. 업무 수행 능력의 하방을 다질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성실성이 최선의 덕목이자 실력이 된다. 성실성의 가장 좋은 대리지표는 학벌이다. 스스로를 억제해 가며 열심히 입시 공부한 성실성은 보장되어 있지 않는가. 따라서 기업들은 학벌을 가지고 사람을 선별하게 되며, 20대 초반의 스펙이 인생을 과잉대표하게 된다. 그러니 10대들이 입시 압력에 고통받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종류의 해법이 있다.
첫째, 대기업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접근이다. 하지만 이는 효과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들이 현재의 규제 환경에 합리적으로 적응한 것이지, 기업 자체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공공기관이 나서는 방법이다. 공무원과 공기업의 선발을 시험으로 보게 하는 것이다. 이는 대학입시 결과가 아쉬운 사람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몇 가지 한계가 있다. 학벌도 시험의 결과인데, 또 다른 시험을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더욱이 공무원/공공기관 선발 시험을 합격하는 데 필요한 역량과 노력은 실제 업무 수행에 필요한 역량과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그 결과 경쟁만 과열되어 외견상 공정해 보이지만, 불합격한 이들에게는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시간 투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스타트업으로 대표되는 유연한 고용 시장의 확장이다. 대기업식의 프로세스를 갖추지 않았지만 좋은 보상을 지급하는 기업들이 많이 생겨, 이들이 실력 위주의 채용을 하는 것이다. 작은 기업들은 고용 규제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롭다(스타트업 업계는 이직이 활발하고 연봉 인상률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실력과 보상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직원은 더 나은 기회를 찾게 되고, 회사도 적합한 인재를 찾을 수 있는 유연성이 생긴다). 특히 개발 직군은 코드를 직접 깃허브 등의 공유 플랫폼에 올려 그 코드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실력주의가 자라나기 좋은 직군이다.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레퍼런스 체크와 자유로운 방식의 과제/면접 등을 통하여 실력을 확인하면 학벌이 낮지만 실력이 뛰어난 직원에게 높은 연봉을 제시할 수 있다.
나는 세 번째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학벌이 좋지 않아도 실력에 따른 보상을 받으며 일을 할 수 있는 사회, 그래서 10대들이 입시 경쟁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유연한 고용 시장을 발전시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