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틸이 쓴 '제로 투 원'은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나에게 이 문장은 '우월해지지 말고 고유해져라'는 말로 들렸다. 전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거나 성공시키지 못한 사업을 시작하면 경쟁자가 없다. 경쟁 우위와 시장 상황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업의 본질, 즉 가치 있는 것을 만드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남과 비교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메이커는 사업 그 자체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피터 틸은 고유한 사업을 발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다른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는데, 당신은 확신을 가지는 명제는 무엇인가?' 새롭고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특별한 경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90년대 카이스트의 경우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LAN을 설치함으로써 학생들이 인터넷의 잠재력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네이버 이해진, 넥슨 김정주, 네오위즈 나성준, 보이저엑스 남세동 등이 모두 90년대에 카이스트를 거쳐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른 예로 경제학에는 '자유로운 자본 이동/고정 환율/자율적인 통화 정책'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는 삼원불가능성 정리가 있다. 이를 제시한 먼델은 캐나다 사람이다. 60년대 초에 다른 선진국들은 자본 이동을 통제할 수 있었는데, 캐나다는 미국과의 국경이 너무 길어 자본 이동을 막을 수 없었고 먼델은 이를 관찰하고 영감을 얻었다. 요컨대 인터넷의 발달과 자유로운 자본 이동이라는 현상을 90년대 카이스트와 60년대 초 캐나다가 선구한 것이 그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제로 투 원을 도왔다.
서울에 사는 나는 2023년 기준 출산율 0.55라는 충격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는 서울의 저출산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저출산은 근본적으로 메가시티가 불러일으키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의 발달과 소득 수준의 증가로 1인 가구는 기본적인 가사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 결혼과 공동생활이 주는 기능적 편리함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인간의 사회적 본성인데 이 역시 스마트폰을 이용해 메가시티의 많은 인구 중에서 취향과 가치관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서 채울 수 있다. 한국의 수도권은 2500만의 고소득 인구가 발달한 교통 통신 인프라를 이용해 사실상 하나의 생활권으로 살아가고 있는 독특한 지역이다. 행정구역이 아니라 실질 생활권으로 따졌을 때 선진국 중에서 도쿄 권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메가시티다. 피어 프레셔가 강하고 유행에 민감한 한국의 문화적 특성과 결합해 메가시티가 불러일으키는 변화를 빠르게 이행했다.
결국 선진국의 메가시티들도 서울이 보여준 저출산 현상을 뒤따라 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저출산이 기술 발전, 소득 증가, 메가시티 발달에 따른 필연적 귀결이라면, 저출산을 사회가 붕괴하고 있다는 신호로만 볼 것이 아니다. 어차피 AI와 로봇의 발전으로 인간 노동력 자체의 필요성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서울의 저출산과 관련된 사회문화적 현상을 분석해,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와 사업 기회를 탐색하는 것은 글로벌 차원에서 제로 투 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