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볼과 오클랜드라는 스타트업
영화 <머니 볼>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가난한 구단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이 혁신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팀을 성공으로 이끈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최근 이 영화를 우연히 다시 접했는데, 내게는 스타트업과 차익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들렸다. <머니 볼>에서 빌리 빈은 당시 저평가되었던 타자의 출루율과 수비력, 투수의 땅볼 처리 능력을 중요시했다. 그는 이러한 저평가된 스탯에서 뛰어난 선수들을 중점적으로 영입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빌리 빈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영화가 흥행하고 그의 방식이 널리 퍼지자, 그 스탯들은 더 이상 저평가된 요소가 아니게 되었고, 빌리 빈은 다시 새로운 저평가된 요소들을 찾아나갔다. 빌리 빈에게 중요한 것은 특정 시점에 차익 거래를 가능하게 해 준 세부 방법론이 아니라, 차익 거래를 지속하는 것이었다.
린 스타트업의 흥행과 한계
이는 스타트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 씬에서 성공을 논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방법론은 린 스타트업 방법론이다. 장기 계획을 거부하고, 최대한 빠르게 최소 기능 제품을 출시한 후 사용자 피드백을 받아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방식을 말한다.
린 스타트업 방법론은 모바일 혁명 시기, 스타트업들에게 중요한 전략이었다. 당시 유저들은 스마트폰 속에서 손쉽게 원하는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를 느꼈다. 모바일 개발자들의 숙련성과 인력이 부족해 제품 공급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수요는 높았다. 기존에 PC 웹에서 유저들이 사용하고 있었던 제품의 모바일 버전만 만들어도 어느 정도 보장된 수요가 존재했다. 따라서 스타트업들은 치밀한 기획을 하기보다는, 빠르게 MVP를 출시하고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는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장은 변화했다. 모바일 혁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시장은 린 스타트업 방법론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스타트업은 기존에 제품이 이미 있는 시장에서 경쟁하는 경우가 잦아졌으며 기존 제품보다 최소한 3배에서 10배 더 뛰어난 기능과 편의성을 제공해야 한다. 또는, 명확한 아이템 기획을 통해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품을 어떻게 만들 것이라는 어느 정도의 장기 계획이 필요하며, 그 장기 계획을 이행하면서 긍정적인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도 묵묵히 밀고 나가기 위한 확신과 비전이 중요해진다.
고정된 정답은 없다: 스타트업의 진화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특히 사업에는 고정된 정답이 없다. 특정 방법론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고 해서 사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제로 투 원>의 저자 피터 틸은 ‘비즈니스의 역사에 모든 순간은 단 한 번뿐이다. 성공한 창업가들을 모방한다는 것은 사실 그들로부터 배우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재현이 불가능하므로 비즈니스에는 과학이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스타트업이 성공한다는 것은 일종의 차익 거래다. 더 많은 자본과 인력을 가진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이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시장에서 차익 거래의 기회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모바일 혁명 시기에는 린 스타트업 방법론이 이러한 차익 거래를 가능하게 해 주었지만, 포스트 모바일 시대에 들어서면서 스타트업은 더 강력한 기획과 UX, 혹은 또 다른 방법론을 통해 새로운 차익 거래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