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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나현 Jun 28. 2020

장마와 감자전

벌새의 은희 엄마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를 읽은 이후부터 나는 내가 비를 맞으면 죽는 소녀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비가 오는 날은 물을 머금은 솜처럼 몸이 무겁고 정신까지 아득해진다. 최대한 밖에 나가지 않으려 애를 쓴다. 하지만 집에만 있어도 비의 기세에 눌려 맥을 못 춘다.


어제부터 장마가 시작됐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옆 집인지 앞 집인지 모를 곳에서부터 내 집까지 마실을 나왔다. 투둑 투둑 떨어지는 빗소리와 지글지글 구워지는 부침개 소리가 비슷해서 사람들은 비가 오면 부침개를 굽는다지.


나도 이웃에게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부침개를 구웠다. 감자전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직접 강판에 감자를 갈아서 감자전을 만들어 주셨다. 그런데 이제는 세월이 좋아서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감자 대신 컵라면 모양의 통에 담긴 인스턴트 감자전을 마트에서 집어 왔다. 분말 가루를 붓고 물을 넣고 1분 정도만 휘저어주면 된다. 그리고 기름을 과하다 싶게 많이 넣은 프라이팬에 5분 정도 부쳐주면 끝이다. 짭짤하게 간이 되어 있고 감자가 아삭하게 씹히는 맛도 난다. 자글자글한 기름에 노릇하게 익어가는 감자전을 보면서, 접시에 담아낸 감자전을 먹으면서 영화 <벌새>를 생각한다.



<벌새>에서 주인공 은희가 감자전을 먹는 장면은 두 번 나온다. 첫 번째 장면은 엄마가 가게에 나가기 전에 은희를 위해 여러 장 부쳐 놓은 감자전을 젓가락으로 먹다가 나중엔 손으로 마구 뜯어먹는 장면이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와구와구 감자전을 먹는다.

두 번째 장면은 은희의 엄마가 식탁에 앉아 있는 은희의 앞에서 감자전을 구워서 먹으라고 주는 장면인데, 그때 감자전을 먹는 은희를 엄마가 지긋이 쳐다본다. 가만히 아무 말도 없이 쳐다보기만 한다. 나는 이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영화관에서 볼 때에는 그렇게 하지 못 했지만 IPTV로 구매했을 때는 몇 번이고 돌려서 그 장면을 다시 봤다.


딸이 먹는 모습을 그렇게 가만히, 아무 말 없이 지켜봐 주는 엄마의 눈길이 따스해서 좋았다. 자식의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 부모의 마음을 나는 아직 털끝만큼도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았을 듯싶은, 먹는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따뜻한 눈길도 나는 잘 모른다. 아마 과거의 어느 순간 엄마가 나를 그렇게 쳐다봤을 수도 있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은희 엄마의 눈빛을 질릴 정도로 오래 봤다.

내가 먹는 모습을 누군가가 본다면 머쓱함에 소화가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한 음식을 나에게 주고는 내가 먹는 모습을 바라봐 준다면, 아무리 맛없는 음식이라도 맛있게 꿀꺽꿀꺽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어렸을 땐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다른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었다. 결코 나에게 주는 따뜻함이 아니었지만 세상의 많은 엄마들이 자식을 사랑으로 대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지하철 역에 딸을 마중 나온 엄마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티끌들을 딸의 옷에서 떼어 주는 모습이나 걸어가는 나를 잡아 세워서는 내 가방이 너무 예쁘다고 우리 딸도 사주고 싶어서 그런다면서 어디에서 샀냐고 물어보는 모습. 아주 작은 일상의 모습들이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엄마의 사랑을 학습했다. 그리고 비어있는 내 마음을 채우려고 했다. 물론 채울 수 없었다. 그 사랑은 내 엄마가 아닌 그 누구도 채워줄 수는 없을 것이다.


뱃속 허기를 인스턴트 감자전으로 채우고 마음의 허기를 채울 방법을 알지 못해서 <벌새> 속 은희 엄마의 눈길을 떠올린다. 아주 오랜만에 다른 엄마의 모습으로 내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본다. 인스턴트 감자전은 훌륭하게 허기를 채웠지만 엄마의 빈자리는 역시나 엉성하게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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