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나현 Aug 30. 2020

카톡 이모티콘 때문에 대성통곡한 사연

feat. 엄마티콘과 딸티콘

  2,500원으로 누릴 수 있는 기쁨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격 대비 효용이 큰 건 카카오톡 메신저의 이모티콘이 아닐까 싶다.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재치 있는 캐릭터들을 사고 나면 괜스레 친구들과 더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그런데 이 카카오톡 이모티콘이 나를 완전히 무너지게 한 날이 있었다. 귀엽고 동글동글하게 생긴 캐릭터였는데 이 녀석 때문에 몇 년 치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참으로 오랜만에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펑펑 울었다.


  언니와 나는 힘들다고 말하지 않아도 지금 이 사람이 힘들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늦은 밤 '자?'라고 보내는 메시지다. 그날은 내가 먼저 언니에게 '자?'라고 말을 건넸다. 언니와 내가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그 기분을 같이 나누고 싶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떨어져 살았고 아들과 둘이 사는 미혼모였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엄마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주된 이야기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주인공과 동네 총각의 사랑이야기였지만 나는 왠지 엄마와 딸의 이야기에 더 눈이 갔다.

  그날 본 드라마에서는, 딸이 자고 있는 엄마를 꼭 끌어안고 자는 장면이 나왔다. 그 장면을 보다가 TV를 껐다. 마음이 시렸다. 아름답고 선한 드라마였지만 그 장면이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엄마 없이 외롭게 살던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나타나서 광이 나게 살림을 하고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안위는 뒷전에 두는 이야기. 정말 환상처럼 아름다웠다. 나도 딱 한 번만 엄마를 그렇게 안고 자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언니에게 드라마를 봤는지 물어보니 언니도 오늘 드라마가 너무 슬펐다고 말하면서 이모티콘을 하나 보냈다. 파마머리를 한 귀여운 생김새의 엄마 캐릭터가 "엄마 불렀어~?"라고 말하는 이모티콘이었다. 언니는 언니 몫으로 엄마 이모티콘을 사고 딸에게는 딸 캐릭터의 이모티콘을 사 줬다고 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


  첫째는 나도 엄마에게 딸 이모티콘, "엄마 어딨어?" "엄마 왜 안 와?" "엄마엄마엄마엄마~" "엄마 보고 싶다" 등 쓰고 싶은 이모티콘이 너무 많아서 안타까운 감정. 엄마가 없는 사람도 쓰고 싶은 이모티콘이 너무 많았다. 물론 엄마가 있는 사람들은 정말 대화로 사용하겠지만 나에겐 정말 궁금한 물음들과 절절한 고백들이 많았다. 그 귀여운 캐릭터에 쓰여 있는 문장은 평범한 것들이었지만 나에겐 가슴을 저미는 말들이었다. 입 밖으로, 혹은 문자로라도 쓰고 싶었던 말들의 모음집 같았다.

  둘째는 언니도 딸 이모티콘을 엄마에게 쓰고, 엄마 이모티콘으로 답장을 받고 싶을 텐데 엄마 이모티콘을 본인이 사용하는 것에 대한 안쓰러운 감정. 언니는 이제 언니 몫의 '엄마' 이모티콘이 생겼다. 물론 언니는 엄마니까 별 감정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언니의 동생이니까 언니가 느꼈을 그 쓸쓸한 감정이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셋째는 그냥 슬픈 감정. 사실 매 순간 엄마가 그립거나 사무치는 건 아니다. 엄마의 빈자리를 내 삶의 일부로 여기고 지내온 지가 오래라서 마음을 튼튼하게 단련시켜왔으니까 작은 감정에 휘말려 엄마를 그리워하며 울진 않는다. 엄마가 그립고 필요한 순간엔 혼자서 마음을 다독이고 다시 평온한 상태로 돌아가려고 무던히 애쓰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이 귀여운 이모티콘을 나는 절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 내 일생이라는 것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슬펐다.


  침대에 누워서 울다가 코로 숨이 안 쉬어져서 엎드려서 울었다. 하지만 울면서도 언니와의 카톡 메시지는 계속 밝은 분위기로 보냈다. 나중에 엄마를 찾으면 이 이모티콘을 사 줄 거라는 둥 우리 엄마는 아마 "엄마 노는 중" 이모티콘을 사용할 거라는 둥의 시답잖은 메시지들을 주고받았다. 분명히 언니도 울고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는 느낌으로 안다. 하지만 운다고 해서 엄마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지는 20년도 넘었다. 그래서 다시 가만가만히 마음을 다독였다.


  오랜만에 실컷 울고 나니 새삼 이모티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무던히도 삼켰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들이 눈물 방울이 되어 투두둑하고 터져 나올 수 있었다. 아무리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도 마음속의 구멍은 휑한 채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모른 척 지나치고 돌아가기만 했던 마음속 커다란 상처가 더 곪아 터지기 전에 고름을 쏙 빼낸 것처럼 후련했다. 다음 날 퉁퉁 부은 눈으로 출근을 해야 했지만 마음속 독소가 눈으로 빠져나갔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언니가 이모티콘을 사면서 지불한 2,500원이 내게 아주 값진 효용이 되었다. 혹시라도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엄마에게 이 이모티콘을 사 주고 빨리 이모티콘을 보내라고 독촉하고 싶다. 그리고 나도 언니도 딸 이모티콘을 사서 아주 질릴 때까지 주야장천 사용하고 싶다. 그게 내 판타지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일 때 가장 생각나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