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수진 Jan 18. 2020

여성을 향한 시선들(gaze)

 허성임 & 아바아토와 페르메의 <님프> 공연 리뷰

흰 가운을 걸친 병원의 의사들, 혹은 실험실의 연구원들을 연상시키는 다섯 명의 관찰자는 조그만 방 안에 갇혀있는 한 여성을 지켜보며 무언가를 기록한다. 방의 투명한 벽을 통해 들여다보이는 여성은 교복을 입은 한 여학생이다. 여학생은 거울을 꺼내들고는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기 시작한다. 어른 흉내를 내며 자신의 모습에 도취된 듯한 그녀의 립스틱을 바르는 손은 멈출지 모른채 결국에는 입술을 넘어 얼굴 전체를 붉게 칠해버리고, 곧 소녀의 얼굴은 괴기해진다. 관찰자들이 그런 소녀의 모습을 기록하는 사이, 교복을 벗은 그녀의 몸은 어느덧 임신을 한 여성의 몸이 되었다. 봉긋한 가슴과 불러온 배를 손으로 감싸안고 의자에 앉아있는 그녀의 몸은 성스럽고 아름답다. (실제로 임신 중인 허성임의 벌거벗은 몸이 전시되는 그 순간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아우라를 내뿜는다)


곧 방 안에 홍등이 밝혀지고 성스러운 이 여성의 몸은 어느덧 남성들을 갈구하는, 육체적 욕망의 몸이 되었다. 마치 유혹하듯 미소를 지으며 누군가에게 손을 흔드는 그녀는 붉은 빛 아래 손님들을 기다리는 사창가의 여인을 떠오르게 한다. 생명을 잉태한 가장 성스러운 여성의 몸이 오로지 욕정의 대상의 몸으로 변화해버린 것이다. 이때 다섯 명의 관찰자 중 한 명의 남성이 가운을 벗은 채 속옷바람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넋이 나간 듯 그녀를 지켜본다.


투명한 벽에 커튼이 내려지며 이제 방 안의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 곧 다섯 명의 가운을 입은 관찰자들 중 두 명의 여성이 또 다른 한 여성의 가운과 옷을 모두 벗긴다. 그리고 벌거벗겨져 무력해진 그녀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두 가해자에게 이 폭력은 마치 놀이를 하듯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잔인한 시간을 거친 피해여성의 몸은 축 늘어져 바닥에 쓰러지고, 어느덧 등장한 한 남자 관찰자는 마치 고깃덩이를 만지듯 그녀를 툭툭 건드린다. 널브러져 있는 그녀의 몸은 반으로 접혀 투명한 랩으로 칭칭 감긴다. 머리끝부터 엉덩이와 발끝까지 감긴 그 몸은 변태를 앞둔 번데기의 모습을 한 채 마치 제물이 된 듯 꽃밭에 놓여진다. 동시에 방의 투명한 벽을 가렸던 커튼이 열리고, 바닥에 움크리고 누워있는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얼마 후 꿈틀거리기 시작한 그 번데기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몸을 칭칭 감은 랩을 뚫기 시작한다. 마침내 껍데기가 모두 찢어지고, 그 안에서 나온 여성은 천천히 일어난다.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라도 한 듯, 순수한 자연의 여신을 보는 듯 하다. 그리고 그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방 안의 여인도 함께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순수하고 순결한 존재로 보여진다.
깨어난 두 여인은 남자 속옷을 꺼내 입는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이들도 같은 속옷을 입은 채 남성스러움을 과시하는 듯 포효하며 공연은 끝이 난다.

한 시간 길이의 이 공연을 끌고가는 것은 바로 ‘시선(Gaze)’이다. 연출가(스테프 레누스, Stef Lernous)가 늘어놓은 여성의 모습들은 무대 위의 가운을 입은 관찰자들, 그리고 모든 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시선에 의해 재해석된다. 관찰대상을 바라보는 시선들, 사회문화적으로 내제된, 그리고 권력화된 시선은 작품에서 보여지는 여성들을 쫒는다.


이미지들의 나열로 이뤄진 이 작품은 상당히 폭력적이다. 한 손에는 커피를 든 채 무자비한 폭력을 마치 장난치듯 일삼는 가운을 입은 (여성)관찰자들과 대상이 된 두 여인. 특히 무용수 김혜경의 가는 몸이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며 바닥에 내던져지기까지의 긴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긴 시련을 겪고 번데기가 된 후 고치를 뚫고 나와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넘기며 자리에서 유유히 일어난 김혜경의 모습에서, 그리고 그와 함께 일어난 방 안의 허성임의 모습에서 자연의 여신 ‘님프’가 연상된다. 각각 닫혀진 방 안에서 자발적으로, 그리고 방 밖의 타인들에 의해 강압적으로 변태를 거친 두 여성이 순수한 존재로 다시 깨어나는 순간이다.


사실 이 공연은 ‘님프’를 작품 제목이자 주요 소재로 한 허성임의 안무·출연작이라는 사전정보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을 향한 수많은 이미지들이 노골적으로, 그리고 뒤틀려 나열된 이 작품은 두드러진 연출적 기법이나 안무가 눈에 띄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을 향한 시선(Gaze)을 거칠게 노출(exposed)했다는 점과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시선 역시 권력화 된 그것이라는 수행성이 작품의 가치를 높인다. 뿐만 아니라 특정 이미지들의 나열만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도록하는 연출의 의도가 잘 반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허성임이 벨기에의 극단 아바토와 페르메(Abattoir Freme)와 함께 한 이 공연(8월 21일(금)-22일(토), 문래예술공장)은 특별한 홍보마케팅 없이도, 두 회차가 모두 만석으로 진행되었다. 일찍이 매진되어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로비에 놓인 모니터로 관람해야만 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그녀에게 국내 무용계가 이렇게 집중하는 이유는 뭘까. 안무가로서, 그리고 퍼포머로서의 허성임은 국내에서 대체불가능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대 위에서 거침없이 발산하는 에너지와 한 치의 머뭇거림 없는 직설적인 표현들, 그만의 확실한 언어로 완성하는 움직임들은 허성임이라는 무용가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관객의 존재를 인지한다. 그들을 즐겁게 할 것인지, 불편하게 할 것인지, 고민에 빠지게 살 것인지 등이 작품을 만들거나 무대에 서는 데에 있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공연예술가들에게 결핍되어 있는, 중요한 점이다. 안무가이자 퍼포머 허성임의 행보를 더욱 응원한다.


(본 글은 무용월간지 몸에 개제한 공연 리뷰입니다. 2015년 9월호)

작가의 이전글 정치적으로 무용 읽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