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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Oct 19. 2024

공산성 성곽길

공주시 날씨를 검색해 보니 변동 없이 오전오후 비다. 시간별 날씨는 오전이 구름. 오전에만 공주에 머물면 되니까 기상청 슈퍼컴퓨터를 믿어보기로 했다. 준비랄 것도 없다. 이번엔 차를 타고 공산성 주차장까지 이동하기로 했으니 물과 모카빵 정도이다. 계획은 공산성곽을 돌고 나서 근처 공산성시장에서 혼밥 하는 것 까지다.

공산성 산책 파트너로 두 남자가 대기 중이다. 조시 그로반 (레민작가님의 최근 업로드 된 편지글에 등장했고 앙티브작가님 남프랑스 여행기 속 노란 페인트를 뒤집어쓴 카페사진의 주인공 반 고흐 '빈센트'를 부른 가수)과 황테너(황현한테너).

먼저 조시 형님이  '빈센트' 노래로 선방한다. 8시 10분 출발.

라이더아자씨들에게는 양보가 최선입니다

현란한 옷차림과 소리로 시선을 강탈하는 오토바이 아저씨 부대도 라이딩을 나왔구나. 그분들을 먼저 보내드리는 게 상책이지. 안 그럼 시끄러워서 조시 형님의 밀어 같은 속삭임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아파트 바로 옆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면 끝지점이 연무 lC( 논산~천안 고속도로)다. 가을 들어 첫 고속도로 주행이다. 그만큼 시내만 제 자리 돌듯 도는 생활패턴이었다.  북쪽을 향해 110km/h로 쌩쌩 달린다. 마음이 뻥 뚫리듯 시원하다.

조시 형님 노래는 듣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취향이 같지 않으면 명곡도 소음이 될 수 있으니 운전하면서 혼자 듣기에 딱 좋다. 달리다 보니 삶은 무엇인지, 나는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슬슬 올라온다. 최근 힘든 일을 당하신 작가님의 소식을 들었기에 며칠째 내 마음이 그분에게 닿아있어서 자연스레 생각이 그쪽으로 흘러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깊어지다 보니 어느새 남공주 IC로 빠져나간다.

공산성 입구

어제 전국적으로 가을비가 와서 그런지 도시가 깨끗하고 고즈넉하다. 주차장에 주차를 마치고 매표소 입구에 서니 9시가 되었다. 공산성은 세 번째 방문이다. 지난주까지 2024 국가 유산 미디어아트의 일환으로 행 된 공산성 가을축제 '무령의 나라'가 진행되었다. 축제기간이 아닌 데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이른 시간의 공산성은 한적했다. 사진을 찍으면 프레임 안으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걸쳐 나오지는 않을 정도로 한산했다.


내 앞 길에 성곽을 관리하시는 분께서 예초기인지, 벌목기인지 모터소리가 요란하고 그을음이 장난 아닌 기계를 들고 풀과 나무를 정비하시면서 걸으셨다. 매연과 모터소음이 뒤따르는 탐방객에게 날아들었다. 새소리 물소리를 듣고 유유자적하게 걷고 싶었는데 이를 어쩌나. 에어팟을 꺼내 오늘의 파트너 황테너를 급히 호출했다. 황테너가 모터소리를 물리쳐 주었는데 매연이 문제였다. 마스크를 하필 차에 두고 내렸다. 그을음에 속이 울렁거렸다. 그분을 앞지르는 수밖에 없다. 한참 오르막 계단이 이어지는 지점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허벅지가 바들바들 떨리더라도 숨을 참고 뛰는 수밖에.

앞지르고 나서 뒤돌아보니 그분은 어느새 옆길로 빠져들고 계셨다. 허탈했다. 그렇지만 다행이다. 모터소리도 그을음 냄새도 멀어져 간다.


강 건너 천막을 여러 개 쳐 놓은 둔치에서 풍물소리가 들려온다. 모터소음이 계속 이어졌다면 듣지 못할 소리다. 무슨 행사가 진행되고 있나 보다. 바야흐로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 확실하다.

성벽 위를 단조롭지 않게 오르막과 내리막 길과 나무계단이 이어진다. 중간중간 쉴만한 누각도 있고 지름길도 있다. 지름길은 여기저기 통하게 되어 있어 시간 단축이 필요한 경우에 따라 얼마든지 코스를 다양하게 해서 걸을 수 있다. 중간지점에 뜻밖에 영은사라는 절이 나왔다.

은행나무

검색해 보니 조선 세조 4년에 세워진 사찰이란다. 절 입구에 은행나무가 있다. 절에 유독 은행나무가 많은 것 같은데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다.

성벽을 끝까지 걷더라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끝지점 쪽에서 공사를 하느라 성곽에서 내려와 안마당을 가로질러 가야 했다.

어제 온 비 때문인지 금강 물이 황톳빛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수읍에서 발원하여 충청남북도를 거쳐 강경에서부터 충청남도·전북특별자치도의 도계를 이루면서 군산만으로 흘러드는 강.
길이 394.79km, 유역면적 9,912.15㎢이다. 옥천 동쪽에서 보청천(報靑川), 조치원 남부에서 미호강(美湖江), 기타 초강(草江)·갑천(甲川) 등 크고 작은 20개의 지류가 합류한다. 상류부에서는 감입곡류하면서 무주에서 무주구천동, 영동에서 양산팔경(陽山八景) 등 계곡미를 이루며, 하류의 부여에서는 백마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면서 부소산(扶蘇山)을 침식하여 백제 멸망사에 일화를 남긴 낙화암을 만들었다.
강경 부근에서 하구까지의 구간은 익곡(溺谷)을 이루어 군산·강경 등 하항이 발달하였으며, 종래 부강(芙江)까지 작은 배가 소항 하여 내륙수로로 크게 이용되어 왔으나 호남선의 개통, 자동차교통의 발달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상류부에 대전분지·청주분지, 중류부에 호서평야(湖西平野:內浦平野), 하류부에 전북평야가 전개되어 전국 유수의 쌀생산지대를 이룬다.
그와 같은 해상교통의 발달과 농업 생산으로 일찍이 연안에 공주·부여·강경 등 고도와 옛 상업도시가 발달하였다. 1980년 신탄진 부근에 대청 다목적댐이 건설되었다. 기후는 한반도 중앙에 위치하여 온대 북한계에 가까워, 유역의 평균기온은 11.0~12.5℃, 연강수량은 1,100~1,300mm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강 [錦江]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은행나무가 조금 노래졌을 뿐 공산성에도 단풍이 절정을 이루려면 10월 말을 지나야 할 것 같다. 나무들이 여전히 푸릇푸릇하다.

출구로 나와 수문병 교대식이 몇 시에 있느냐 물으니 11시란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산성시장으로 직행하려다 비가 거세질까 봐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차를 타고 시장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블로그 검색해서 찾아두었던 식당으로 이동하면서 시장구경을 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활기가 넘친다.


식당은 시장 변두리 쪽 골목에 있었다. 아담하고 오래된 건물이지만 실내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소고기시래기국밥을 주문했다. 혼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속으로는 혼자 아니고 조시와 황테너랑 함께 왔다고 대답하고 혼자 큭큭 웃었다. 이번엔 어쩔 수 없다. 혼밥이다. 주인에게 조금 미안했다. 혼밥에다 술손님도 아니고. 매출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손님이다. 그래도 주인장은 친절하셨다.

보글보글 뚝배기와 공깃밥, 물병과 반찬이 나왔다. 반찬은 4가지 모두 오늘 아침에 만든 것이라는 게 눈으로도 보였다. 짠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내 입맛에 짜지 않고 딱 좋다. 향이 진한 나물은 비호감인데 머위나물의 향이 조금 진했지만 만든 분을 생각해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국밥을 숟가락이 아닌 젓가락으로 건더기만 건져서 먹는다. 그런 나를 보더니 주인이 들깨가루를 넣어서 국물을 먹어보란다. 들깨가루는 먹기 전에 처음부터 넣었다. 주인눈치를 보면서 숟가락으로 국물을 훌훌 떠먹었다. 손님이 나 혼자이니 시선이 내게 올 수밖에. 혼밥인데 황송하게도 관심을 많이 받아서 감사했다. ㅎㅎ

성곽을 돌다 나뭇잎 쪼가리가 머리카락에 붙어 있었나 보다. 주인이 와서 머리에 붙은 것도 떼어준다. 이렇게 다정할 수가. 걸어서 공산성이 얼마나 걸리냐 물으니 주인장 내외 의견이 엇갈린다. 여자사장님은 찾기 쉽게 골목 앞 길로 나가서 곧장 큰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된다 하시고 남자사장님은 골목 끝으로 가서 오른쪽으로 조금 걸으면 큰길이 나온다고 알려주신다. 목소리가 여자사장님이 더 크다. 식당에서 하시는 일이 남자사장님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중간에서 눈치를 보던 나는 얼른 여자사장님 의견에 응수했다. 그래야 게임이 끝날 것 같았다. 여자사장님이 이겼다. 남자사장님은 입을 다물었다. 괜히 민망해져서 가져갔던 커피 1병을 남자사장님께 드렸다. 돈은 현금으로 여자사장님께 건넸다. 그 식당은 여자사장님이 갑이란 걸 벌써 파악했으니까. 반찬도 맛있고 국밥도 너무 맛있다고 감사 인사를 건넸더니 우리 여사님이 반찬을 맛있게 만든다고 주방 매니저님을 칭찬하셨다. 칭찬이 돌고 돈다. 맛있게 먹었으니 이 식당을 소개하겠다고 공치사를 남기고 식당을 나왔다.

수문병 교대식이 7분밖에 안 남았다. 마구 걸었다. 빨리 걷기는 자신 있다. 10분 거리를 6분 만에 도착했다. 막 교대식이 시작되었다. 수문병들을 뒤따라 다시 성곽에 올랐다. 교대식은 10여분 정도 진행되었다. 아들 같은 상근예비역들이 토요일에 쉬지도 못하고 무거운 수문병옷을 입고 기를 들고, 칼을 들고, 북을 치고 애쓴다. 이 아들들은 오늘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을 텐데. 비가 왔으면 수문병교대식을 쉬어도 되는 건데. 날씨가 아들들을 도와주지 않는다. 그래도 더운 여름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니 아들들아. 그렇게 생각하자.

교대식을 마치고 내려올 땐 그들보다 앞서 빨리 내려왔다. 빗방울이 또 떨어진다.

오늘도 예행연습이다.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혼자 숙박도 가능하겠다. 한가하면 내려오는 길에 부여도 좀 들르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으니 이정표에 입맛만 다시고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

오늘의 파트너 조시와 황테너 감사해요. 다음 파트너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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