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리고 갑자기 기온이 크게 떨어졌다. 이대로 가을이 훅하고 지나가버릴까 조마조마했는데 날씨님께서 은덕을 베푸셔서 가없이 화창한 날을 선물해 주셨다. 생각해서 선물을 주었는데 받고 포장도 풀지 않는 것은 주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닌 법. 만사를 제쳐두고 선물을 풀어 즐기는 것이 그 보답이렸다.
10월 중으로 들어야 할 온라인 강의 1/4 정도와 최종평가시험이 남았다. 지역에서 한창인 국화축제도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동향출신인 작가님께 축제 사진을 올려보겠다고 설레발을 쳤다. 서울에서 작은 아이도 내려왔다. 11화 발행할 연재글도 손봐야 한다. 사면초가다. 상황으로 보자면 옴짝달싹 못해야 한다.
원래 성격상 계획 없는 지름신 같은 건 태평양 바다 건너다. 그런데 올 가을 들어 평소 페이스를 잃고 엉덩이에 뿔난 못된 송아지가 되었다. 소띠도 아닌데 말이다.
이 화창한 날씨를 즐기라는 계시를 받은 것처럼 사면을 둘러싼 저것들을 모두 물리쳤다.
너희들은 오후에 만나 주가쓰!!
오늘의 행선지(2024.10.26 토)는 은채가 나오는 소설의 배경이 된 김제다. 구체적으로 말해 호남평야의 주축이 되는 김제평야 한가운데 있는 오느른 책밭과 벽골제와 아리랑 문학관이다.
궁금하신 분들(단 한분일지라도)이 따로 찾아보시는 번거로움을 덜어드리고자 친절히 소개해 드린다.
브런치 작가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가 책방이 아닐까 한다. 이곳을 홍보하는 글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결국 홍보글 비슷하게 되었어요ㅠ 에휴)
이곳은 평야 한가운데 작은 마을에 위치한, MBC 최별 PD가 로컬청년 협동조합과 함께 운영하는 독립서점이다.( 유튜브 채널에 그간 4년 간의 과정이 소개되었다고 한다.)
4년 전, 최 PD가 연고도, 지인도 없는 이 시골마을 폐가를 사서 고쳐 살며 마을의 일원이 되었고 2023년 이 집이 책방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인구소멸 지역 중 한 곳인 김제가 한층 활력을 되찾았다. 올 초 2월에 MBC에서 설특집 프로그램으로 방영한 [오느른]을 본 전국 각지 구독자들은 십 센치 공연, 황보름작가, 권여선 작가 등 베스트셀러 저자들이 북토크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작은 시골 책방을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구독자들의 관심은 축제로까지 이어졌는데 MBC [오느른] 제작진과 현지 청년들, 김제시청, 사회적 협동조합 김제농촌활력센터가 힘을 모았다.
김제 죽산면을 지나는 중이다
책밭에 들어서니 물오른 때를 막 지난 꽃들이 먼저 반겼다. 책밭 전체 풍경이 예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있으니 주인장이 마당으로 나오셨다. 마당은 물 뿌린 자국이 채 마르지 않은 것이 청소를 하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목줄에 매여 시무룩한 강아지 한 마리도 있었는데 잠깐 손님접대 하느라 일어서서 여남은 밖에 꼬리를 흔들어 주지 않았다. 대신 순둥이라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몸을 만질 수 있는 서비스는 무료제공 해주었다. 고마운 댕댕이.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들어선 실내는 참으로 정갈했다. 통로를 제외하고는 모든 공간이 책으로 수납되어 있었다. 벽면에는 책밭에 다녀가신 분들의 메모가 다닥다닥 붙어 훌륭한 장식이 되었다. 지붕의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천정과 부뚜막으로 썼을 듯한 공간에 마감된 깍두기만 한 푸른 타일이 푸근하고 정겨웠다.
딱히 도서 분야를 세분화하지는 않았고 성인도서와 그림책이 함께 진열되어 있기도 하고 소설과 에세이, 자기계발서와 시집이 바로 옆에 배치되는 등 세로로 가로로 자연스럽게 놓여있다.
책이 놓인 공간 뒤편으로는 틈새틈새 이쁜 소품들이 눈길을 끌었는데 어디서 구해다 놓으셨는지 깜짝 반가워할 만한 소품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百聞不如一見이라고 아무리 세세히 입 아프게(? 입은 안 아프고 손가락 아프게) 설명해 봐도 지루하기만 하지 사진으로 보는 게 최고지. 하여 사진으로 쏟아놓았다.
단, 책 구입 시 방문객들의 손때는 덤으로 생각해야 한다.
내가 들여온 책. 한 권은 그림책. 마흔 넘은지가 언젠데ㅋ
덜 여문 콩밭
콩밭
만경강을 건너 김제 죽산면을 거쳐 부량면으로 진입했는데 그 황금물결이던 호남평야 지평선은 어디로 가고 보이는 곳마다 벼 대신에 논에 콩이 심어져 있었다. 이쁜 황금물결을 기대하고 갔건만 많이 아쉬웠다. 사실, 과감히 오전시간을 냈던 것은 벼 추수가 다 끝나는 시즌이기 때문에 그 날이 아니면 황금논을 볼 수 없겠다는 급한 마음에 나선 길이었다. 콩의 용도가 사람인지 소여물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머어마한 평야에 벼를 심은 논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콩 수확시기는 아직 남아있으니 그나마 쓸쓸하게 빈 논이 아니어서 다행으로 생각했다.
글이 자꾸 길어져 작가님, 독자님들의 눈의 피로감이 많다. 그래서 횟수를 늘리더라도 오늘은 [오느른 책밭] 이야기만 소개하고 벽골제 맞은편 아리랑 문학관(조정래 소설 아리랑)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고자 한다.
연재글 배경이 된 평야지역이라 유독 더 애착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독립서점이다. 이 지역을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강추한다.
덧) 바쁘신 분들을 위해 댓글창을 닫아 둘까도 고민해 봤습니다.
그래도 궁금하신 점이 있을지 몰라 열어두기는 합니다만 과감히 패스하시면 감사합니다.
독자님, 작가님들의 피로감을 위해 가급적 글 발행을 주 2회로 고수하려 하는데 계절감을 따라야 하는 경우 이 원칙을 깨뜨리고 추가 발행을 하는 점 양해 구합니다.
*[혼자 걷는 길] 매거진은 즉흥글로 가볍게 퇴고없이 막 쓰는 글이니 수준이 많이 떨어질 수 있음 주의. *^^*